[편집자주] 서울와이어는 비즈앤로(Biz&Law) 코너를 통해 글로벌 법정 분쟁 이슈를 심도 있는 취재로 독자들에게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생소한 해외 법적 용어와 재판 과정을 알기 쉽게 풀어내 국내 산업계가 마주한 글로벌 법적 리스크를 분석하고, 향후 전망까지 예측하고자 합니다.
SK하이닉스 이천 공장. 사진=천성윤 기자
[서울와이어=천성윤 기자] SK하이닉스가 미국 반도체 기술 라이선스 분쟁에서 완승을 거뒀지만, 상대방이 판정금 지급을 거부하면서 결국 미국 법원을 통한 강제집행 절차에 돌입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오레건주(州) 연방지방법원 포틀랜드지원에 따르면 원고 SK하이닉스는 피고 비상(BeSang Inc.)과의 국제중재 판정에 따라 약 645만달러(약 98억원)의 지급을 강제집행 해달라는 소장을 제출했다. 이번 소송은 국제상업회의소(ICC) 중재에서 내려진 최종 판정을 실제 집행 가능한 법원 판결로 전환하기 위한 절차로, 중재 승소 이후 이어지는 집행 단계로 분석된다.
양측 분쟁은 2013년 체결된 반도체 기술 라이선스 계약에서 비롯됐다. 당시 비상은 낸드 메모리의 3차원 적층 관련 기술을 SK하이닉스에 제공했다. 이에 비상은 해당 기술을 활용한 제품 판매 시 일정 비율의 로열티를 지급 받기로 했다. 계약에 따르면 로열티는 일정 기간 동안 계약상 정의된 ‘라이선스 제품’에 한해 발생하는 구조였다.
소송장 1면. 사진=미국 오레건주 연방지방법원 포틀랜드지원
분쟁의 불씨는 SK하이닉스가 2021년 인텔의 낸드 및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사업을 인수하면서 본격화됐다. 인수 이후 설립된 자회사 솔리다임(Solidigm Inc.)이 판매한 SSD 제품이 기존 라이선스 계약의 적용 대상인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비상은 해당 SSD 제품이 자사 기술을 기반으로 한 ‘라이선스 제품’에 해당한다며 로열티 지급 의무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해당 제품이 계약상 정의된 기술 범위를 벗어나 있어 로열티 지급 대상이 아니라고 맞섰다.
양측은 2023년 ICC 중재에 돌입해 약 2년에 걸친 공방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양측은 대규모 문서 제출과 증거개시(디스커버리) 절차를 거쳤고, 지난해 1월에는 미국 뉴욕에서 현장 심리까지 진행됐다. 이후 추가 서면 제출과 비용 관련 심리를 거쳐 중재판정부는 12월 19일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SK하이닉스의 전면 승소였다. 중재판정부는 비상이 제기한 모든 청구를 기각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비상이 SK하이닉스에 중재 비용과 변호사 비용 일부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지급 금액은 총 645만5657달러다.
하지만 비상은 해당 판정에 따른 지급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고 결국 SK하이닉스는 법원에 다시 소송장을 제출하게 됐다. SK하이닉스는 소장에서 “해당 중재판정이 적법하므로 집행이 보장된다”며 “법원은 특별한 거부 사유가 없는 한 이를 승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비상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출신 재미 한인 연구원들이 주축이 돼 미국 오레건주 포틀랜드에 설립한 팹리스 반도체 벤처 회사다. 3차원 플래시 메모리 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용어 설명
국제상업회의소(nternational Chamber of Commerce·ICC) :
글로벌 기업 분쟁을 해결하는 민간 국제중재 기관이다. 실제 재판하는 법원이 아닌 중재 절차를 관리한다.
디스커버리(Discovery·증거개시) 제도 :
재판 전에 서로 가진 자료를 전부 꺼내 놓는 절차로 사건 당사자들이 서로 증거를 확보하는 과정을 뜻한다. 디스커버리는 의무에 해당하기 때문에 고의로 숨기거나, 삭제하거나, 늦게 제출하면 재판부가 제재를 하거나 최악의 경우 패소 추정 또는 벌금 등의 패널티를 받는다. 회사 내부 문서, 이메일, 메신저·채팅 기록, 내부 의사결정 자료, 재무 자료 등이 공개되기 때문에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절차 중 하나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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