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예

[AI야! 나랑 놀자!] 존재하지 않는 가짜 가수, 진짜 그리움을 노래하다

파리의 호텔 앞 밤거리 작은 가게에서 마셨던 쌉쌀한 맥주 한 잔. 낯선 도시의 불빛 아래 홀로 마시던 그 맥주에는 이방인의 외로움과 여행자의 설렘이 함께 녹아 있었다.

파리의 호텔 앞 밤거리 작은 가게에서 마셨던 쌉쌀한 맥주 한 잔. 낯선 도시의 불빛 아래 홀로 마시던 그 맥주에는 이방인의 외로움과 여행자의 설렘이 함께 녹아 있었다. 생성형 AI 생성 이미지

◇아코디언 연주의 복고풍 샹송

며칠 전 유튜브에서 낯선 음악을 만났다. 감미로운 어쿠스틱 피아노와 짠하게 울리는 아코디언 선율. 그리고 그 위로 흐르는 어느 여인의 샹송. 프랑스어 특유의 부드러운 연음은 복고풍 정서를 한층 더 짙게 만든다. 첫사랑의 기억을 조용히 더듬는 듯한, 쓸쓸하면서도 따뜻한 노래였다.

오래된 샹송 음반인 줄 알았다. 1970년대 파리의 어느 골목에서 흘러나왔을 법한 노래였다. 멜로디는 지나간 시간을 가만히 쓰다듬는 듯했다. 눈을 감으면 노천카페와 비 내리는 밤거리가 떠올랐다. 마치 오래된 프랑스 영화 속으로 걸어 들어간 듯했다.

복고풍 선율을 듣고 있노라니 마음은 어느새 옛날로 돌아갔다. 이십여 년 전의 파리로. 그 시절 대학 일로 런던을 방문할 때면 시간을 쪼개어 꼭 파리를 들르곤 했다. 두 시간 거리였지만, 전혀 다른 세계였다. 낯선 도시의 공기를 마시고, 이국의 거리를 늦은 밤까지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기억의 저편에 묻어두었던 풍경들이 하나둘 되살아난다. 몽마르트르 언덕을 스치던 서늘한 바람, 고풍스러운 건물을 붉게 물들이던 센 강변의 저녁노을, 그리고 노천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 한 잔을 앞에 두고 오가는 사람들을 무심히 바라보던 어느 오후의 한가로운 정취까지.

아직도 나는 잊을 수 없다. 그날 밤 호텔 앞 알제리 상인의 작은 가게에서 마셨던 쌉쌀한 맥주 한 잔. 낯선 도시의 불빛 아래 홀로 마시던 그 맥주에는 이방인의 외로움과 여행자의 설렘이 함께 녹아 있었다. 까뮈의 에뜨랑제(이방인)처럼, 그 밤 나는 낯선 도시 속에서 혼자였다.

세월이 흐른 지금 그 알제리 가게가 아직 남아 있을까. 그날의 맥주 맛은 희미해졌지만, 노래를 듣는 순간 그날의 감정은 다시 살아났다. 그래서였을까. 이 노래들은 내 기억 속 파리의 밤과 낮, 그리고 그 도시의 공기와 너무도 잘 어울렸다.

◇「고엽(Les Feuilles Mortes)」

노래는 또 다른 기억 하나를 불러냈다. 그보다 또 이십 년 전 어느 가을날, 나는 동성로의 약속카페 창가에 앉아 있었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 카페의 앤틱한 스피커에서는 이브 몽탕의「고엽(Les Feuilles Mortes)」이 흘러나왔다. 맞은편에 누가 앉아 있었는지조차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이브 몽탕의 노래만은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다. 그때 나는 불어 발음을 한글로 공책에 꾹꾹 눌러 적고, 나지막이 따라 부르며 가사를 외우곤 했다.

Oh ! je voudrais tant que tu te souviennes

아 나는 당신이 기억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오

Des jours heureux ou nous etions amis.

우리가 함께 했던 행복한 날들을

En ce temps-la la vie etait plus belle,

그 시절 인생은 더없이 아름다웠고

Et le soleil plus brulant qu‘aujourd’hui.

태양도 오늘보다 더욱 불타올랐지요

어느날 유튜브서 만난 낯선 음악

어쿠스틱 피아노와 복고풍 선율

이십여년 전 파리로 날 데려가

놀랍게도 AI가 쓰고 부른 노래

사랑했던 그때를 기억해 달라는 남자의 당부로 노래는 시작된다. 그 시절의 행복과 찬란함을 담담히 되새기며, 원망이나 비난은 없다. 이미 떠난 사랑을 아직 잊지 못하고 있다는 조용한 고백이 흐른다. 사랑은 떠났지만, 그 흔적은 아직도 애절한 멜로디로 남아 있다.

내게 파리의 추억과 고엽까지 소환한 음악을 누가 만들었을까. 놀랍게도 작곡가도 가수도 사람이 아니었다. AI가 곡을 쓰고 AI가 노래를 불렀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노래를 듣기 전에 그걸 알았다면 어땠을까. 내가 받은 감동은 달라졌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첫 음이 흐르는 순간 이미 파리의 바람과 센 강의 노을, 그리고 오래된 그리움이 내 마음속에서 깨어나고 있었으므로.

기계가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섬세하게 어루만질 줄이야.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도대체 어떤 노래였기에 이제는 집착이 아닌 애틋한 기억을 깨워낸 것일까. 떠나는 사랑을 붙잡지 말라 했다. 하지만 세월이 그 일을 대신해 준다. 붙잡고 있던 손은 스스로 풀어지고, 상처는 그리움이 되고, 그리움은 마침내 추억이 된다.

◇존재하지 않는 가수의 목소리

나이가 들수록 귀는 부드러워지고, 눈길은 관대해진다. 나 역시 많은 것을 흘려보내는 법을 배웠다. 웬만한 일에는 쉽게 흥분하지 않고, 예전 같으면 목소리를 높였을 일도 웃으며 넘긴다. 그런데도 여전히 음악 한 곡 앞에서는 잠이 얕다. 새벽 두 시가 훌쩍 넘은 시간, 이어폰을 낀 채 천장을 바라보다가 문득 가슴 어딘가가 시큰해진다.

AI가 만든 그 플레이리스트에는《Notre Histoire d‘Amour d’Autrefois(옛사랑의 기억)》과 《La Romance de Mai(5월의 연가)》 그리고 몇 곡이 더 담겨 있었다.

플레이리스트 소개 글은 흥미로웠다. 따뜻한 피아노 선율과 부드러운 스트링, 그리고 아련한 프랑스어 보컬이 어우러져 마치 오래된 프랑스 영화 속으로 들어온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고 소개했다. 처음에는 흔한 홍보 문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몇 곡을 듣고 나자 그 말 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음악은 정말로 나를 오래전 파리의 거리로 데려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궁금해져 정보를 찾아보았다. 가수는 누구인지, 언제 발표된 곡인지. 그런데 뜻밖의 사실 앞에서 손이 잠시 멈췄다. 가수가 없었다. 작곡가도, 오래된 음반도 없었다. 내가 듣고 있던 것은 오래된 샹송이 아니라, 생성형 AI가 만들어 낸 ‘복고풍’ 음악이었다. 과거의 공기를 들이마신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미래의 기술을 듣고 있었던 셈이다.

연륜없이 맑은 공백같은 목소리

그 공백이 내 마음을 불러들여

AI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는 노래

그 역설이 노래를 특별하게 해

순간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인간이라면 목소리 안에 살아온 세월이 배어 있을 텐데, 이 목소리에는 삶의 연륜 대신 이상하리만치 맑은 공백이 있었다. 그런데 그 공백이 오히려 내 마음을 불러들였다. 마치 빈 의자에 내가 앉아 버리듯, 삶이 없는 자리로 내 기억이 스며들었다. 음악이 건네는 위안은 그렇게 생겨났다.

우리는 과거를 있는 그대로 기억하지 않는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며 닳고 다듬어지고, 때로는 더 아름답게 채색된다. 젊은 날의 고단함도 어느새 추억이 되고, 상처는 먼 그리움으로 바뀐다. 어쩌면 AI가 만든 차가운 멜로디는 내 안에서 이미 따뜻해져 있던 기억의 온도를 슬쩍 건드린 것인지도 모른다.

◇노래는 파리행 특급 열차였다.

AI가 만든 그 샹송은 20년 전으로 가는 파리행 특급 열차였다. 복고풍의 선율을 따라 나는 어느새 샹젤리제 거리로 돌아가 있었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마들렌 과자 한 조각을 홍차에 적셔 먹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통째로 길어 올렸듯이, 인간의 감각은 이토록 섬세하다. 인공지능은 감정을 느낄 줄 모르는 존재다. 사랑을 해 본 적도 없고, 이별을 경험한 적도 없으며, 그래서 아파해 본 적도 없다. 당연히 파리의 골목을 걸어본 적도, 센 강변의 석양을 바라본 적도 없다. 그것은 단지 인간이 남긴 수많은 노래와 시, 소설 속에서 반복되는 감정의 흔적을 학습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기계는 옛 파리의 향수와 복고풍의 감성을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게 불러왔다. 어쩌면 AI는 감정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흘리고 간 감정의 지도를 읽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날 밤만큼은 내 기억과 그리움의 지도를 읽어 낸 존재처럼 느껴졌다. 예전 같으면 나는 이런 음악을 만날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대형 음반사도 아니고, 유명 가수도 아니고, 방송국에서 소개하는 곡도 아니다. 어쩌면 세상 어디에도 실제 가수가 존재하지 않는 노래들이다. AI가 없었다면 만들어질 이유도, 세상에 나올 기회도 없었을 음악들이다. 그 역설이야말로 이 플레이리스트를 특별하게 만든 본질이었다.

예술의 본질은 어디 있을까

노래를 만드는 창작자일까

듣는 감상자의 마음 속일까

AI가 던지는 흥미로운 질문

◇창작은 인간의 전유물인가?

놀랍게도 이런 음악을 만드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 Suno나 Udio 같은 생성형 음악 AI는 복고풍 샹송부터 프렌치 팝, 재즈, 포크, 영화음악까지 다양한 장르의 곡을 만들어 낸다. “1970년대 프랑스 샹송”, “아코디언 연주”, “파리의 카페 분위기” 같은 몇 마디 문장을 입력하면 가사와 멜로디, 보컬까지 완성된다. 내가 들었던 그 샹송 역시 그렇게 태어났다.

우리는 예술을 이야기할 때 창작자를 먼저 떠올린다. 누가 썼는가. 누가 불렀는가. 어떤 삶을 살았는가.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창작자의 삶은 희미해지고 작품만 남는다. 사람들은 노래를 들으며 떠오르는 자신의 기억을 더 오래 간직한다. 예술의 본질은 창작자에게 있는 것일까. 아니면 감상자의 마음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감정에 있는 것일까. AI 음악이 우리 앞에 던진 가장 흥미로운 질문이다.

존재하지 않는 가수의 목소리가 20년 전 파리의 저녁을 다시 불러냈고, 존재하지 않는 노래가 잊고 지냈던 나를 다시 만나게 했다. 그것은 분명 인공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깨운 내 그리움은 진짜였다. 끝내 내려놓지 못한 기억들은 세월 속에서 추억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그리고 어느 날, 존재하지 않는 가수의 목소리를 타고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온다. 그날 밤 AI가 만든 것은 노래가 아니었다. 오래전 파리의 밤이었고,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젊은 날의 나였다.

글=김종갑 대신대학교 교양학과 특임교수·(인천)재능대학교 유통상품기획과 특임교수·출판사 ‘오후의 글방’ 대표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