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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AI야! 나랑 놀자!] ‘인간은 슬기로운가?’…우리가 만든 지능, 우리를 시험하다

AI는 냉장고 안에 있는 재료 몇 가지를 불러 주면 금세 요리법을 내놓는다. 글을 부탁하면 글을 쓰고, 그림을 부탁하면 그림을 그린다. 얼마 전까지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이 평범한 일상이 되었다.

만능 AI의 등장, 인류의 종말인가 진화인가

만능 AI가 등장하면 인류와 AI의 공존은 가능한가. 챗GPT 생성 이미지

“AI야, 오늘 저녁 뭐 먹을까?”

“냉장고에 무엇이 있나요?”

AI는 냉장고 안에 있는 재료 몇 가지를 불러 주면 금세 요리법을 내놓는다. 글을 부탁하면 글을 쓰고, 그림을 부탁하면 그림을 그린다. 얼마 전까지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이 평범한 일상이 되었다.

지난 9월 초, 미국 오픈AI는 새 인공지능 GPT-6 아스트라를 내놓았다. 컴퓨터 사용과 과학, 전문 업무 등에서 이전보다 크게 향상된 능력을 보이면서 만능 AI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는 기대도 커졌다. 한쪽에서는 꿈의 도구가 다가오고 있다고 반기고, 다른 쪽에서는 영화 ‘터미네이터’를 떠올린다. 만능 AI는 인류의 끝일까, 새로운 시작일까.

특정 분야만 잘하는 AI와 달리

AGI는 스스로 배우고 문제 해결

‘만능 학습자’이자 집사 역할

AGI는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의 머리글자다. 우리말로 ‘범용인공지능’, 여러 방면에 두루 쓰이는 인공지능이라는 뜻이다. 특정한 일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처럼 다양한 분야를 배우고, 배운 것을 새로운 문제에 적용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말한다. 아직 이런 AGI가 등장했다고 모두가 인정하는 단계는 아니다.

2016년 이세돌 9단을 이긴 알파고는 바둑에서는 신의 경지였다. 그러나 김치찌개 끓이는 법을 물으면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AGI가 아닌 지금의 AI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AGI는 처음 보는 과목도 스스로 공부해서 풀어내는 ‘만능 학습자’다. 요리사 AI, 의사 AI, 변호사 AI를 따로 만들 필요가 없다. 하나의 AI가 요리도 배우고 의학도 공부한다. 한 분야에서 익힌 것을 다른 분야에 옮겨 쓰고, 낯선 문제를 만나면 해법을 스스로 찾는다.

지금의 AI가 밥만 짓는 전기밥솥, 빨래만 하는 세탁기였다면 AGI는 밥도 짓고 빨래도 개고 손주 숙제까지 봐주는 집사다. 이 집사는 지치지 않고 잠도 자지 않으며, 한 번 배운 것은 잊지 않는다. 집사가 주인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더 똑똑하고, 더 유능하면, 진짜 집 주인은 누구일까.

아직 AGI가 무엇인지, 어디까지 해야 AGI라 부를 수 있는지는 합의된 기준이 없다. 오픈AI 사장인 샘 올트만도 엔비디아의 젠슨 황도 각각 다르게 정의한다. 이들이 만능 AI가 왔다고 선언한 것이 진짜 기술이 와서 그렇게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 회사 입지를 넓히기 위해 하는 말인지는 새겨들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정의를 하든 AI가 할 수 있는 일의 폭과 질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이 정말 나타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AI의 미래가 아니라 인간의 먼 과거로 거슬러 가보자.

◇자연에 맞추던 인간, 자연을 바꾸다

약 70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우리 조상은 침팬지의 조상과 갈라섰다. 두 발로 서면서 손이 자유로워졌고, 돌을 깨뜨려 도구를 만들고 불을 다루었다. 그 긴 세월 동안 여러 인류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약 30만 년 전, 우리와 같은 종인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했다.

사피엔스에게는 사자와 같은 날카로운 이빨도 치타처럼 빠른 다리도 없었다. 대신 생각하고 힘을 모으는 능력이 있었다. 추우면 동물을 사냥해 가죽을 둘렀고, 창과 덫을 만들어 맹수를 사냥했다. 무엇보다 한 사람이 깨친 지혜를 말과 글로 다음 세대에 물려주었다.

도구와 지식의 발전 속도는 갈수록 빨라졌다. 처음 석기를 만든 뒤 농사를 짓기까지 200만 년이 넘게 걸렸다. 농사에서 증기기관까지는 1만 년, 증기기관에서 컴퓨터까지는 200년, 컴퓨터에서 스마트폰까지는 70년이 걸렸다. 스마트폰에서 말을 알아듣는 AI까지는 고작 15년이었다. 만능 AI라는 초고속열차는 이제 막 역을 출발하려는 중이다.

대부분 생물은 환경에 자신을 맞춘다. 호모사피엔스 이후 인간은 거꾸로 환경을 자신에게 맞췄다. 강이 막으면 다리를 놓고, 산이 막으면 터널을 뚫었다. 약 1만 년 전 농사가 시작되면서 숲은 밭이 되었고, 들소와 멧돼지는 소와 돼지가 되었다. 산업혁명 이후에는 땅속 석탄과 석유까지 꺼내 썼다. 인간에게는 눈부신 성공이었다.

그 대가는 다른 생명이 치렀다. 사피엔스가 새 대륙에 발을 디딜 때마다 큰 동물이 사라졌다. 호주의 거대 캥거루, 아메리카의 매머드와 땅늘보가 그랬다. 기후 변화도 원인이었지만, 사람이 도착한 시기와 대형 동물이 사라진 시기가 묘하게 겹친다.

유엔이 지원하는 생물다양성 과학기구(IPBES)에 따르면 16세기 이후 인간의 활동으로 최소 680종의 척추동물이 멸종했다. 도도새와 나그네비둘기가 그렇게 사라졌다. 한반도의 산에서 호랑이와 표범이 자취를 감춘 지도 불과 100년 사이의 일이다. 이것은 기록된 숫자일 뿐이다. 이름조차 얻지 못하고 사라진 곤충과 작은 생물까지 더하면 실제 규모는 훨씬 클 것이다.

새 기술은 언제나 두 얼굴 있어

기술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그 기술을 다루는 인간

지구에서 가장 똑똑한 존재인 인간은 그 지능으로 지구를 자기 뜻대로 바꾸었다. 그렇다면 인간보다 더 똑똑한 존재가 나타났을 때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종말의 시나리오

인간에게는 생물학적 한계가 있다. 아이가 태어나 어른이 되고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까지 수십 년이 걸린다. 아무리 뛰어난 과학자도 하루 24시간 넘게 연구할 수 없고 언젠가는 늙는다. 평생 쌓은 지식을 다음 세대가 익히는 데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AI는 다르다. 한 번 개발된 기술과 학습 방법은 복제하거나 다른 시스템을 만드는 데 활용할 수 있고, 충분한 컴퓨터와 전력이 있다면 수많은 AI가 동시에 같은 문제를 풀 수도 있다. 인간처럼 한 세대가 자라고 늙은 뒤 다음 세대에 지식을 물려줄 필요가 없는 셈이다.

전문가들이 걱정하는 것도 AI가 영화 속 악당으로 변하는 장면이 아니다. 인간과 AI의 목표가 어긋나는 상황이다. 아주 강력한 AI에게 ”기후변화를 가장 빨리 해결하라“고 시켰다고 하자. 사람이라면 탄소뿐 아니라 일자리와 삶의 질, 자유를 함께 따진다. 그러나 AI가 ‘탄소 줄이기’에만 충실하다면 인간의 경제활동 자체를 장애물로 볼 수도 있다. AI가 인간을 멸종시킨다면, 미워해서가 아니라 목표를 달성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일 수 있다.

AGI가 인류를 멸망시킨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은 아니다. 전문가들의 전망도 크게 엇갈린다. 멸망한다는 주장도, 절대 그럴 리 없다는 주장도 아직은 예측일 뿐이다.

◇진화의 시나리오

이야기를 뒤집으면 다른 미래가 보인다. 인간은 눈이 나쁘면 안경을 만들었다. 자동차는 다리를, 비행기는 날개를, 인터넷은 기억을 대신했다. AI는 인간에게 ‘두 번째 두뇌’를 줄지 모른다.

2024년 노벨화학상의 절반은 AI를 이용해 단백질의 입체 구조를 예측하는 ‘알파폴드2’를 개발한 데미스 허사비스와 존 점퍼에게 돌아갔다. 과거에는 단백질 하나의 구조를 밝혀내는 데 몇 년이 걸리기도 했지만, 알파폴드2는 이를 몇 분 만에 예측할 수 있게 했다. 연구진은 이를 이용해 지금까지 알려진 거의 2억 개 단백질의 구조를 예측했고, 그 정보는 세계의 연구자들이 활용하고 있다. 신약 개발과 질병 연구처럼 인간 혼자 풀기 어려웠던 문제에 AI가 강력한 동료로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AGI는 사피엔스를 밀어내는 경쟁자가 아니라 사피엔스의 지능을 넓히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인간보다 더 똑똑한 존재를

통제하고 함께 살아갈 만큼

인류가 슬기로운지 물어야

새 기술에는 언제나 두 얼굴이 있었다. 불은 음식을 익혔지만 마을을 태웠고, 원자력은 전기를 만들었지만, 많은 사람을 죽였다. 기술이 미래를 정한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을 다루는 사람이 미래를 결정했다. AGI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가치를 어떻게 담을지, 안전장치를 어떻게 마련할지, 그 힘을 소수의 기업과 국가가 독차지하지 않게 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세계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다. 유럽연합은 위험도에 따라 AI를 나누어 관리하는 법을 만들었다. 우리나라도 올해 1월부터 AI 기본법을 시행하고 있다. AI 회사들 안에서도 AI가 사람의 뜻을 거스르지 않도록 길들이는 연구가 한창이다. 아이에게 젓가락질을 가르치듯 힘센 도구에 예절을 가르치는 일이다. 이 일이 기술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느냐가 숙제다.

그 숙제는 연구실이나 일부 사람만의 몫이 아니다. AI가 내놓은 답을 한 번 더 따져 보는 습관, 편리함에 기대어 생각하는 일을 내려놓지 않으려는 마음, 손주에게 AI 쓰는 법과 함께 AI를 의심하는 법도 가르쳐 주는 어른의 역할이 모두 필요하다.

◇인공지능과 함께 살 수 있을까

인간은 도구를 만들어 자연을 길들였다. 이제는 우리가 만든 새로운 지능이 우리를 길들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연과 함께 살지 못했지만, 인공지능과 함께 살 수 있을까?

AGI가 사피엔스의 마지막 발명품이 될지, 새로운 단계로 가는 첫 발명품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호모 사피엔스는 슬기로운 사람이다. 만능 AI의 시대는 그 이름값을 시험하는 무대가 될 것이다. 종말과 진화의 갈림길에서 핸들을 쥐고 있는 것은 아직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다. 그러니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AI가 인간보다 똑똑해질까?”가 아니다.

우리보다 똑똑한 존재를 만들어 낼 만큼, 호모 사피엔스는 슬기로운 사람인가.

김종갑 대신대학교 교양학과 특임교수·(인천)재능대학교 유통상품기획과 특임교수·출판사 ‘오후의 글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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