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가직 9급 경쟁률 41대 1
지난달 4일 2026년 국가공무원 9급 공개경쟁채용 필기시험이 치러진 서울 종로구 경복고등학교로 응시생들이 들어가고 있다. / 뉴스1
8년간 다니던 IT(정보기술) 회사를 그만둔 A씨(35)는 올해부터 노량진 공무원 학원에서 9급 전산직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그가 맡아온 시스템 및 소프트웨어 품질 관리 업무가 AI(인공지능) 도입과 함께 자동화된 게 계기였다. 처음엔 다른 IT 회사나 게임업체 재취업을 고려했지만, 고민 끝에 계획을 바꿨다고 한다. A씨는 “IT 회사에 들어가더라도 계속 발전하는 AI 때문에 또다시 구조조정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전산직 공무원은 내가 그동안 맡아왔던 IT 계통 업무와 비슷한 일을 계속하면서도 정년 때까지 일자리를 잃을 걱정이 없지 않으냐”고 했다.
최근 생성형 AI가 인간 개발자를 대체할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면서 신분이 안정적인 전산직 공무원이 주목받고 있다. 전산직 공무원은 불과 2020년대 초반만 해도 IT 분야 개발자들이 크게 관심을 두지 않던 자리였다. 그 당시 플랫폼·게임·이커머스 등 민간 IT 계열 기업들이 앞다퉈 개발자 모집에 나서면서 개발자 수요가 공급보다 더 많아 초봉도 5000만원 이상이었다. 하지만 최근 1~2년 사이 IT 업계에 불어닥친 AI발 ‘고용 불안’으로 상황이 180도 달라진 것이다.
12일 오전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공단기 본관학원에서 수험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최근 개발자 취업난에 늘어나는 전산직 공무원이 인기다. /박성원 기자
최근 공무원 시험 학원을 찾는 예비 수험생들 중엔 ‘억대 연봉’을 받는 직장인들도 있다고 한다. 판교 게임 회사에 다니는 40대 후반 직장인 B씨는 지난 3월부터 낮에는 회사를 다니고 밤에는 온라인 강의를 들으며 전산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다. 현재 1억원이 넘는 연봉을 받지만 몇 년 안에 자신의 업무 상당 부분이 AI에 대체될 거라는 판단에 다른 진로를 찾아 나선 것이다. 그는 “특히 게임 업계에선 몇 년 내 업무의 상당 부분이 대체된다는 게 정설처럼 여겨지는 분위기”라고 했다. 실제로 지난달 민주노총이 국내 8개 게임사 직원 107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77.3%가 ‘AI 도입으로 고용 불안을 느낀다’고 답했다.
이 때문에 노량진 공무원 학원가에선 최근 직장인 수험생 유입이 크게 늘었다. 공무원 학원 ‘공단기’ 관계자는 “AI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작년부터 전산직 공무원을 준비하겠다며 찾아오는 상담 건수가 3~4배 늘었는데, ‘일단 직장 생활과 공무원 공부를 병행해 보겠다’는 사례가 대다수”라고 말했다.
그래픽=이진영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9급 전산직 경쟁률은 2024년까지만 해도 20대1 수준이었지만 지난해 25.6대1로 오른 데 이어 올해 41.4대1로 급증했다. 1년 사이 9급 전체 경쟁률 상승 폭(24.3대1→28.6대1)보다 유독 더 크게 뛰었다. 7급 전산직 공무원 경쟁률 역시 올해 49.9대1을 기록해 전년(38.7대1)보다 크게 올랐고, 2024년(26.2대1)과 비교했을 땐 두 배 가까이가 됐다.
신분이 안정적인 공기업 전산직 역시 경쟁률이 오르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지난해 신입 전산직 직원 3명을 뽑는데 546명이 몰려 경쟁률 182대1을 기록했다고 한다. 2020년(53대1) 대비 경쟁률이 3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한국도로공사는 올해 전산직 직원 2명을 뽑는데 1015명이 지원(경쟁률 507.5대1)했다. 599명이 지원했던 2021년 대비 응시자 수가 약 70% 늘어났다. 한국도로공사 관계자는 “공기업은 채용 때 나이 제한이 없어 40대 중반도 신입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며 “최근 회사를 다니다가 지원하는 재직자가 늘어난 영향으로 보인다”고 했다.
개발 직군 취업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대학가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다. 컴퓨터공학이나 소프트웨어 관련 학과 학생들 사이에서는 최근 로스쿨 등 다른 진로를 찾거나, 취업 대신 대학원에 진학하는 일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원준 가천대 인공지능학과 교수는 “2년 전만 해도 학부를 졸업하고 자대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학생이 6~7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50명 수준”이라며 “앞으론 실력 있는 개발자는 좋은 처우를 받고, 저숙련 개발자는 AI에 대체되는 ‘양극화’가 더 심해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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