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이천시 에스케이(SK)하이닉스 본사 모습. 연합뉴스
안선희
지난 7일 삼성전자가 57조2천억원, 지난 23일 에스케이(SK)하이닉스가 37조6천억원이라는 입이 떡 벌어지는 수준의 1분기 영업이익을 발표했다. 덕분에 미국-이란 전쟁으로 잠시 주춤했던 코스피는 다시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고, 1분기 국내총생산(GDP)도 1.7%라는 깜짝 성장률을 보였다. 두 회사는 인공지능(AI) 기업은 아니지만, 19세기 미국 골드러시 시대, 금을 캐던 사람들에게 곡괭이와 청바지를 팔던 장수들처럼, 인공지능 기업들에 반도체를 팔아 떼돈을 벌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이 거대한 호황의 사이클이 언제까지 갈 것인지에 쏠려 있는 사이, 인공지능은 인류를 이끌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다.
지난 1월 ‘클로드 코워크’ 출시로 파란을 일으켰던 앤트로픽은 지난 7일 운영체제, 금융망 등의 취약점을 찾아 해킹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클로드 미토스 프리뷰’(미토스)를 내놓아 다시 한번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미토스의 파괴력을 이유로 앤트로픽은 이를 대중에 공개하지 않고 구글, 엔비디아 등 40여곳의 기업과 기관에만 제공했다.
일종의 업무용 인공지능 비서인 ‘클로드 코워크’가 나왔을 때는 이른바 ‘사스포칼립스’, 즉 인공지능이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완전히 대체할 것이라는 공포가 확산되면서 오라클·어도비 등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급락했다. 소프트웨어뿐 아니라 금융·부동산·물류·보안·여행 서비스 등 많은 분야를 닥치는 대로 먹어치울 것이라는 ‘인공지능 파괴론’까지 등장했다. ‘인공지능 에이전트 확산→관련 기업들 파산→대량 해고→소비 급락→경기 침체→주택담보대출 연체율 급등→금융위기 발생’이라는 시나리오를 제시한 시트리니 리서치의 ‘2028년 글로벌 지능 위기’ 보고서(2월23일)가 그 정점을 찍었다.
미국-이란 전쟁에서는 정보 수집, 표적 식별, 타격 순위 결정 등을 주도하는 전쟁무기로서의 인공지능의 면모가 본격적으로 드러났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우리나라 서학개미들의 인기 투자 종목이기도 한 인공지능 방산업체 팔란티어는 지난 18일 소셜미디어 엑스(X)에 “핵의 억지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인공지능에 기반한 새로운 억지의 시대가 시작될 것이다”라고 적었다.
해킹, 전쟁무기 같은 일이 ‘먼 나라 이야기’ 같다면 이런 글은 어떤가. “제미나이 생기고 회사에서 할 일이 없다. 공문도 알아서 다 작성해주고, 인사 회계 업무도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보면 어떻게 해라 말해주고, 이러다 짐 싸서 내보내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직장인 익명게시판 블라인드의 글) ‘쓸모없어질 것 같은 두려움’(FOBO)이 직종을 가리지 않고 덮치고 있다.
“밀려오는 거대한 수레를 피할 수는 없다”는 이재명 대통령(1월29일)의 말처럼, 인류의 역사에서 한번 시작된 기술의 변화는 모두 비가역적이었다. 더구나 막대한 이윤을 노리는 거대 테크 기업들, (우리나라를 비롯해) 경제 성장의 새로운 동력을 얻으려는 각국 정부들,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다툼 등이 결합되며 인공지능 개발 경쟁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하지만 수레의 방향을 조정하거나 수레바퀴에 약간의 모래를 뿌려 지나친 속도를 늦추는 것이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오픈에이아이가 지난 6일 내놓은 ‘지능시대를 위한 산업정책’이라는 보고서는 이런 노력의 한 예시라 할 만하다. 챗지피티의 개발업체답게 인공지능에 대한 낙관론을 유지하면서도 그 위험 요소를 함께 제시한다. 일자리와 산업 전반이 혼란에 빠질 위험, 악의적인 행위자들이 기술을 오용할 위험, 권력과 부가 더욱 집중될 위험 등이 그것이다. 보고서는 이를 막기 위한 다양한 정책 제언을 하는데, 자본이득세와 법인세 인상, 인공지능으로 인한 수익에 대한 과세, 인공지능 기업에 투자하고 그 수익을 모든 시민이 나눠 갖는 공공펀드 조성, 주 4일제 도입 등이 그 일부다. 구체적인 정책보다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은 보고서가 강조하는 다음과 같은 원칙들이다. ‘지금은 노동과 지식, 생산의 본질이 근본적으로 재편되는 새로운 단계다. 인공지능이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도록 보장하는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지금의 선택이 향후 수십년간 그 혜택과 위험이 어떻게 분배될지 결정할 것이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인공지능 3대 강국이 될 것인가’, ‘어떻게 인공지능 전환으로 잠재성장률 3%를 달성할 것인가’, ‘어떻게 반도체 기업을 지원할 것인가’ 같은 질문들 못지않게 ‘어떻게 인공지능의 혜택을 더 많은 사람이 공유할 것인가’, ‘인공지능의 위험을 막기 위한 시스템은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반도체 기업의 천문학적 수익에, 인공지능에 밀려 일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는 청년들의 몫은 없는 것인가’ 하는 질문들을 던져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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