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사진= 연합뉴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인공지능(AI) 투자 경쟁이 폭발적으로 확대되면서 반도체 산업이 초호황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엔비디아를 비롯한 미국 반도체 기업들의 시가총액이 천문학적으로 치솟고, 세계 각국이 데이터센터와 AI 인프라 구축에 사활을 거는 가운데 정작 시장이 놓치고 있는 자원이 있다. 바로 ‘물’이다.
AI 시대의 핵심 자원으로 여겨졌던 전기보다 더 치명적인 병목 요소가 물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국제사회에서 잇따르고 있다. 생성형 AI의 폭발적인 성장 뒤에는 막대한 냉각수와 초순수 소비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가 늘어날수록 물 부족 위기는 더욱 심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4일 한국수자원공사 케이워터(K-water) 연구원이 세계은행과 국제 물 전문기관 보고서를 분석해 발간한 ‘워터 앤 월드 포커스’ 창간호에 따르면 AI 산업 성장으로 전 세계 물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AI 산업이 직접·간접적으로 사용하는 물의 총량을 ‘AI 물 발자국(AI Water Footprint)’이라고 규정했다. 여기에는 데이터센터 냉각수, 반도체 제조용 초순수, 전력 생산을 위한 냉각수 등이 포함된다.
전체 AI 물 사용량 가운데 약 80%는 전력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냉각수인 것으로 조사됐다. AI 산업은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데, 발전소 역시 냉각을 위해 엄청난 양의 물을 필요로 한다. AI가 늘어날수록 전력 수요가 커지고, 결국 물 소비도 동시에 폭증하는 구조다.
반도체 제조 공정 역시 대표적인 물 먹는 산업으로 꼽힌다. AI 반도체 생산에는 극도로 깨끗한 초순수가 필수인데, 초순수 1㎥를 생산하기 위해 최대 4㎥의 원수가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사실상 반도체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물 사용량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셈이다.
세계적인 물 전문 조사기관인 GWI는 생성형 AI를 30분 사용하는 데 생수병 한 병이 넘는 약 616㎖의 물이 사용된다고 추산했다. 사용자가 챗봇에 질문을 던지고 이미지를 생성하는 과정 뒤에서는 서버 냉각과 전력 생산을 위해 대규모 물 소비가 이뤄지고 있다는 의미다.
시장에서는 AI를 미래 산업혁명의 핵심으로 평가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보이지 않는 물 소비’가 새로운 글로벌 위협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전망치는 충격적이다. 2027년 글로벌 AI 산업 물 수요는 연간 42억~66억㎥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다. 이는 덴마크 전체 취수량의 최대 6배에 달하는 규모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반도체 산업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반도체 분야 물 수요는 오는 2050년까지 현재 대비 600% 이상 증가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AI 서버용 고성능 반도체 생산이 폭증하면서 초순수 수요가 급격히 확대될 것이란 분석이다.
미국의 상황은 더욱 극단적이다. 2050년 미국 내 AI 관련 물 수요는 연간 540억㎥를 초과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전체 지표수 용량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세계 최대 AI 시장인 미국이 AI 경쟁을 지속할수록 물 부족 위기가 국가 경제 리스크로 번질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현재 글로벌 산업계는 물의 가치를 지나치게 저평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은행은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약 34%가 이미 물 부족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물 공급이 불안정한 지역에서 AI 인프라 확장이 지속될 경우 산업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여기에 기후 위기까지 겹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가뭄과 이상고온이 심화되면서 안정적인 수자원 확보 자체가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 역시 전 세계가 ‘물 파산’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만성적인 초과 취수와 환경 훼손으로 인해 기존 물관리 체계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제 AI 시대의 경쟁력이 단순한 반도체 기술이나 전력 확보를 넘어 안정적인 물 공급 능력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최근 데이터센터 입지를 선정할 때 전력뿐 아니라 수자원 접근성과 기후 취약성까지 핵심 평가 요소로 검토하고 있다.
향후에는 물 재이용 기술과 누수 저감 산업도 새로운 성장 시장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추가 취수 없이 기존 물을 재활용하는 기술이 AI 시대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전망이다.
AI 혁명이 가져온 새로운 경제 질서는 물의 가치를 다시 계산하기 시작했다. 과거 석유가 산업혁명의 패권을 좌우했다면, 앞으로는 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한 국가와 기업이 AI 시대 승자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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