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효율 높아졌지만 보상·고용 기준 불확실성
“노사정 협의체 필요”···법·정책에 현장 반영 요구
[시사저널e=장민영 기자] 국내 게임업계가 인공지능(AI) 전환 국면에서 생산성 향상과 고용 불안이 동시에 확대되는 가운데, 제도적 공백을 보완해야 한단 요구가 정치권과 현장에서 동시에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게임특별위원회(게임특위)는 14일 간담회를 통해 산업 경쟁력과 노동 안정 간 균형을 핵심 의제로 다뤘다. 김현규 한국모바일게임협회 수석부회장이 좌장을 맡고, 김상호 화섬식품노조 넥슨 지회장과 노영호 게임특위 산업육성 분과위원이 발제를 진행했다.
개회사에서는 AI 전환을 둘러싼 산업·노동 간 변화가 주요 화두로 제시됐다.
김성회 게임특위 위원장(더불어민주당 의원)은 “AI 전환이 프로그래머 등 개발 직군에 위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기회와 위기가 공존하는 만큼 공정한 경쟁 규칙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다. 법과 제도 설계 과정에서 현장 목소리를 반영하겠다”고 강조했다.
김정태 게임특위 부위원장(동양대 교수)은 “AI로 1~2주 걸리던 작업이 1~2시간으로 단축되는 상황이다. 노동자들이 단순 생산자가 아닌 창작자로 전환될 수 있는 해법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게임업계 노동자 설문조사. / 자료=민주노총 IT화섬노조
간담회 발제에서는 AI가 이미 개발 현장에 깊숙이 들어왔지만, 이를 뒷받침할 제도와 합의는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화섬식품노조 넥슨지회는 'K게임의 미래를 위한 현장의 목소리'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조사는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10일까지 IT연대 내 게임사 8곳에서 진행됐다. 응답자는 총 1078명이다. 이 가운데 개발 직군 비중은 65.9%였다.
AI 도입이 생산성 향상 효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과 배분과 고용 안정에 대한 기준이 부재한 것이 핵심 문제로 지적된다. 실제로 회사와 노조 차원의 공식 논의가 이뤄지고 있단 응답은 26.7%에 그쳤다.
현장 노동자들은 AI 활용 자체보다 보상 기준과 평가 체계가 더 중요한 문제란 인식이 강하다. 응답자의 82.3%가 AI 도입에 따른 수익 배분 가이드라인 필요성을 제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한 AI 관련 정책과 산업 방향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있다’는 응답 비율이 10~16% 수준에 머물면서 정책과 현장 노동자 간 정보 격차도 드러났다.
◇구조조정 현실화···AI 전환과 맞물린 인력 재편
AI 전환은 실제 고용 구조 변화로도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고성장기에 대규모 채용을 단행했던 게임사들은 최근 수익성 둔화와 함께 인력 효율화에 나섰다. 넥슨과 크래프톤 등 주요 기업들도 각각 프로젝트 단위 구조조정과 자발적 퇴사 프로그램을 병행했다.
크래프톤은 지난 1월 기준 약 271명 규모의 인력 이탈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최대 36개월치 급여를 지급하는 자발적 퇴사 프로그램이 시행됐고, 관련 비용 약 400억원이 반영됐다.
넥슨 자회사 네오플의 경우 ‘퍼스트 버서커: 카잔’ 흥행 부진 이후 약 100명 규모 개발 조직이 재배치됐다. 던전앤파이터 모바일 중국 서비스 권한은 텐센트 단독 퍼블리싱으로 이관되는 방향으로 조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인력은 신규 프로젝트로 이동했지만, 후속 콘텐츠 계획은 불투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례는 AI 도입과 맞물려 인력 구조가 상시 재편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개발 효율이 높아지는 만큼, 동일 인력 규모를 유지할 필요성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노영호 게임특위 산업육성 분과위원, 웹젠 노조 지회장. / 사진=장민영 기자
◇산업 성장하지만, 현장은 불안···제도 신뢰 회복 과제
발제에서는 게임 산업이 외형 성장과 달리 내부적으로는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는 진단도 나왔다.
노영호 웹젠 노조 지회장은 “산업은 성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프로젝트 종료와 구조조정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며 “AI 활용이 확산되고 있음에도 고용 안정과 연결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게임산업법 전부개정안 등 주요 정책에 AI 관련 내용이 반영되지 않았단 점도 문제로 제기됐다. 정책 방향과 현장 체감 사이의 괴리가 신뢰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현장 중심 법·제도 설계 ▲AI와 고용 안정의 병행 모델 구축 ▲정기적 노사정 협의체 운영 등이 주요 과제로 제시됐다.
노사정 협의체 필요성에 대해서는 현장 공감대가 높았다. 산업 변화 속도가 빠른 만큼, 정부·기업·노동자가 동시에 참여하는 상설 논의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AI 시대 ‘분배와 기준’ 확립 쟁점
이번 간담회는 AI 도입 이후 생긴 결과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가 핵심 쟁점임을 드러냈다.
AI는 이미 개발 생산성을 높이고 있지만, 그 성과가 기업 실적에만 반영될 경우 노동자 불안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명확한 보상 기준과 고용 안정 장치가 마련될 경우, 산업 경쟁력과 노동 만족도를 동시에 끌어올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성회 의원은 “AI 전환으로 발생하는 결과물이 산업과 노동자 모두에게 기회가 되도록 설계하는 것이 정책의 역할”이라며 “게임업계 현장 의견을 바탕으로 제도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AI 시대 K-게임 산업의 경쟁력은 본격적 기술 도입에 앞서 신뢰 가능한 규칙과 공정한 분배 구조 구축 기반을 먼저 형성해야 한단 평가다.
15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된 'AI시대의 K게임, 노동자에게 길을 묻다' 토론회. / 사진=장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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