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성, 놀이, 그리고 기술 시대를 살아가는 태도에 대하여
AI를 처음 써본 날을 기억하는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내가 기대한 수준으로, 때로는 내가 미처 정리하지 못한 생각까지 말끔히 정리해 주던 그 순간. 그때 많은 사람들이 같은 감정을 느꼈다고 말한다. 놀라움, 그리고 묘한 안도감.
그런데 나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 질문을 하고 싶다. AI가 틀리는 경우보다 무서운 경우가 있다. AI가 완벽하게 맞는 경우다. 그 순간 우리는 만족한다. 그리고 그 만족이 습관이 될 때, 우리는 묻는 법을 조금씩 잊는다.
이것이 AI가 만들어 내는 가장 조용하고 가장 깊은 위험이다. 오답이 아니라 과도한 정답. 불편함이 아니라 지나친 편안함. AI는 우리를 멍청하게 만들지 않는다. 우리를 게으르게 만들지도 않는다. 다만 묻지 않아도 되는 세계를 조금씩 완성해 가면서, 우리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근육을 조용히 약화시킨다. 그 근육의 이름이 주체성이다.
주체성은 철학 교과서의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지극히 일상적인 감각이다. 내가 이것을 골랐다는 느낌.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이것을 택했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것들을 포기했다는 자각. 그 감각이 있을 때 우리는 결과에 책임을 느끼고, 실패에서 배우고, 성공을 자신의 것으로 여긴다.
흥미로운 것은, 이 감각이 결과의 질과 무관하다는 점이다. AI가 골라준 답이 내가 고른 답보다 객관적으로 더 나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더 나은 답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종종 만족이 아니라 이물감이다. “더 잘됐는데 내 것 같지 않다”는 감각. 이 역설 속에 인간 존재의 핵심이 숨어 있다. 우리는 최선의 결과보다, 나의 결과를 더 깊이 원한다. 선택 자체가 목적인 것이다.
AI는 더 나은 결과를 줄 수 있다. 하지만 ‘더 나은 나’는 줄 수 없다. 그 둘을 혼동하는 순간, 우리는 편리한 소비자가 되지만 성장하는 존재이기를 멈춘다.
내가 연구 현장에서 본 데이터도 이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AI 추천을 활용한 집단은 더 빠른 결정과 높은 만족을 보고했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이 선택의 주인이라는 감각은 뚜렷이 낮아졌다. 이 수치가 불편한 이유는, 우리가 지금 이 순간도 그 방향으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써야 하는가. 이 질문에 가장 정직한 답은 ‘놀이’라는 단어 안에 있다. 놀이는 인류가 오랫동안 배움을 위해 써온 가장 오래된 방법이다. 놀이가 학습보다 효과적인 이유는 단순하다. 놀이 안에서는 틀려도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블록이 무너지면 다시 쌓는다. 게임에서 지면 다시 시작한다. 그 반복 속에서 판단력이 자라고, 감각이 쌓이고, 규칙 너머의 전략이 형성된다.
AI를 놀이로 대하는 사람의 행동 방식은 다르다. 그들은 AI의 첫 번째 답을 정답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렇게 나왔군. 그럼 반대 방향으로 물어보면 어떻게 달라질까”, “이번엔 전제를 바꿔보자”, “같은 질문을 다르게 표현하면?” 등 이 과정에서 AI는 도구이기를 멈추고 대화 상대가 된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사용자가 소비자이기를 멈추고 탐색자가 된다는 점이다.
효율을 위해 AI를 쓰는 사람은 점점 더 많은 것을 AI에게 위임한다. 놀이로 AI를 쓰는 사람은 점점 더 많은 것을 자신에게 돌려받는다. 같은 도구가, 반대 방향으로 작동한다.
그리고 전자의 길이 훨씬 편하다는 것이 문제다. 주체성의 침식은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 “AI가 해줬지만 내 생각도 들어갔어”라는 말이 언제부터인가 “AI가 해줬는데 결과가 좋더라”로 바뀌고, 나중에는 “AI한테 맡기는 게 낫겠어”가 된다. 그 세 문장 사이의 거리는 멀지 않다. 다만 이동이 느리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이 어느새 어디까지 왔는지 눈치채지 못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상한 긴장이 찾아온다. AI 앞에서 갑자기 불안해지는 그 감각.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잘못 쓸까봐’라고 설명하지만, 사실 더 깊은 곳에 있다. AI가 완벽한 답을 내놓는 순간, 자신이 불필요해지는 것 같은 느낌. 그것은 직업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다.
내가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세계에서, 나는 무엇인가.
그런데 이 불안을 뒤집어 보면, 오히려 안도의 근거가 나온다. AI는 당신이 묻지 않은 것에 대답하지 않는다. 질문의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무엇이 중요한지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 무엇을 알고 싶은지, 왜 알고 싶은지, 이 답이 내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하는지 — 이것들은 여전히 전적으로 인간의 영역이다. AI는 대답의 기술을 갖고 있지만, 질문의 이유를 갖고 있지 않다. 그리고 이유가 있는 쪽이 언제나 주인이다.
그러므로 진짜 능력은 좋은 답을 받아내는 것이 아니라, 좋은 질문을 계속 던지는 것이다. 좋은 질문은 정답을 향해 곧장 가는 질문이 아니라, 다음 질문을 낳는 질문이다. 그리고 질문을 멈추지 않는 사람은, 어떤 기술이 등장해도 중심을 잃지 않는다.
그 질문하는 힘은 AI를 멀리해서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AI와 자주, 깊이 부딪혀야 자란다. 주체성은 기술을 쓰지 않음으로써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쓰면서도 판단을 멈추지 않음으로써 유지된다. 중요한 것은 선택의 횟수가 아니라 밀도다. 사소한 백 가지를 혼자 결정하는 것보다, 하나의 결정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더 주체적인 삶이다.
그래서 AI와 놀자. 결과보다 과정을, 완성보다 탐색을 즐기는 방식으로. 그리고 놀이가 끝날 때마다 한 번은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이것은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인가. 이 방향은 내가 선택한 것인가. 그 질문을 멈추지 않는 한, AI는 나를 흉내낼 수 있어도 나를 대신할 수는 없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질문하는 존재는 여전히 인간이어야 한다.
AI 시대에 이것이 우리가 끝내 놓쳐서는 안 될 마지막 한 가지가 아닐까.
배정은 부산대학교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필자 소개
부산대학교 경영대학원 겸임교수이자 가온 컨설팅 대표이다.부산대학교에서 경영컨설팅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AI, 관광, 의료·웰니스 분야를 중심으로 소비자 경험과 체험마케팅, 팝업스토어, AI 기반 추천 메커니즘을 연구하고 있다. 학문적 탐구와 함께 대통령 직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간사이자 청년정책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지방시대위원회와 고향사랑기금 심의위원회 위원으로서 지역 발전과 청년 정책, 공공 영역의 의사결정 과정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처럼 이론과 실천, 학계와 현장을 넘나들며 기술 시대 인간 경험의 변화를 탐구한다. 주요 저서로 『브랜드를 기억하게 만드는 체험마케팅』(2025)이 있으며, KCI 및 SCOPUS 등재 학술지와 국제학술대회에 다수의 논문을 게재하고 발표했다. 최근에는 커뮤니케이션북스 ‘인공지능총서’의 집필진으로 활동하며 『AI 기반 여행 의사 결정』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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