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AI 시대 '한글'이 가진 의미···글로벌 AI가 'HWP'를 읽다

AI 시대의 경쟁력이 알고리즘이나 반도체를 넘어 데이터로 이동하면서, 한글 문서는 문서 형식을 넘어 국가 디지털 자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수십 년간 축적된 공공·산업 지식이 담긴 HWP 데이터는 한국형 소버린 AI...

AI 시대 '한글'이 가진 의미···글로벌 AI가 'HWP'를 읽다

구글 제미나이·챗GPT 한컴 '한글' 문서 본격 지원

한컴 2010년부터 오픈소스 공개···"기술장벽 없어 쉽게 지원 가능"

데이터 주권·소버린 AI 문제 '화두'

제미나이 이어 챗GPT도 한글문서를 지원하기 시작했다./이미지=챗GPT 생성

| 스마트비즈 = 양대규 기자 | 글로벌 생성형 인공지능(AI)이 한국 업무 환경에 맞춰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영어 중심으로 설계됐던 AI 서비스들이 이제 국내 표준 문서인 한글(HWP·HWPX)을 별도 변환 없이 직접 읽기 시작하면서, 단순한 기능 업데이트를 넘어 디지털 문서의 위상 자체가 재평가되고 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구글의 제미나이와 오픈AI의 챗GPT가 잇따라 한글 문서 지원을 확대하며 변화가 본격화됐다.

구글은 지난해 말 공개한 '제미나이 3'부터 HWP와 HWPX 파일을 별도 변환 없이 읽고 분석하는 기능을 공식 지원했다. 오픈AI는 이달부터 챗GPT가 한글 문서 형식을 직접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과거에는 한글 문서를 PDF로 변환하거나 내용을 복사해야 했지만, 이제는 행정 보고서·연구자료·회의 문서를 그대로 AI에 입력해 분석할 수 있게 됐다. 문서 중심 업무 비중이 높은 한국 환경에서는 업무 방식 자체가 AI에 맞춰 바뀌는 것이 아니라, AI가 기존 업무 생태계에 적응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번 변화는 특정 기업 간 기술 제휴의 결과라기보다 글로벌 AI 전략의 전환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한글과컴퓨터(한컴) 관계자는 "저희가 따로 기술 제휴를 맺거나 직접 지원한 것은 아니다"며 "기술 장벽 때문이 아니라 거대언어모델 기업들의 정책 변화로 이제 지원이 시작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한글 문서가 지원되지 않았던 이유는 기술적 문제가 아니었다. 한컴은 이미 2010년부터 문서 규격을 공개하고 오픈소스 전략을 추진해 외부 개발사가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 왔다.

즉 '닫힌 포맷'이라는 인식과 달리 생태계는 오래전부터 개방되어 있었다. 글로벌 기업들이 시장 우선순위를 뒤로 미뤄왔을 뿐인 셈이다.

한컴의 개방 전략과 AI 인프라로의 진화

한글 문서가 AI 시대에 다시 주목받는 배경에는 기술 구조의 변화가 자리한다. HWP 포맷은 워드(DOC)나 PDF와 마찬가지로 바이너리 기반 레거시 문서 형식이며, 특정 국가에서 독자적으로 살아남은 거의 유일한 워드프로세서 생태계다.

한컴은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넘어가기 위해 XML 기반 개방형 포맷인 HWPX를 도입하고 문서 내부 데이터를 기계가 읽기 쉬운 형태로 전환해 왔다. 이는 파일 형식 개선이 아니라 문서를 '작성 도구'에서 '데이터 자산'으로 재정의하려는 시도였다.

한글 문서는 수십 년간 공공 행정, 법률, 연구, 교육 영역에서 축적된 구조화된 지식 데이터의 집합이다. 인터넷의 비정형 텍스트와 달리 표·수식·보고 체계를 포함하고 있어 AI 학습 데이터로서 가치가 높다. 글로벌 AI 기업들이 한글 문서 지원을 확대한 배경 역시 한국어 시장 규모뿐 아니라 이런 데이터의 질적 가치가 반영된 결과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결국 한국 시장의 중요성과 한글 문서로 축적된 방대한 데이터의 가치를 글로벌 기업들도 이제 인정한 결과로 본다"고 설명했다.

최근 AI 경쟁은 언어 이해 능력보다 각 국가의 실제 업무 문서 생태계를 얼마나 깊게 반영하느냐로 이동하고 있다. 영어 번역 수준의 '한국어 지원'에서 벗어나 한국식 행정·업무 프로세스까지 이해하는 단계로 진입한 셈이다.

한컴 변성준·김연수 각자 대표이사 /사진:한글과컴퓨터

데이터 주권과 '한글'의 미래 비전

편의성 확대와 함께 과제도 제기된다. 한글 문서가 글로벌 AI 플랫폼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될수록 국내 데이터가 해외 모델에 종속될 가능성이 커져서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문서 데이터가 외부 모델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는 문제는 앞으로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AI 시대의 경쟁력이 알고리즘이나 반도체를 넘어 데이터로 이동하면서, 한글 문서는 문서 형식을 넘어 국가 디지털 자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수십 년간 축적된 공공·산업 지식이 담긴 HWP 데이터는 한국형 소버린 AI 구축의 핵심 기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컴의 전략 역시 워드프로세서 기업을 넘어 'AI 데이터 인프라 기업'으로 확장되는 흐름이다. 기존 HWP 파일에서 텍스트와 구조 정보를 직접 추출해 AI가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이터 로딩 기술, 개방형 표준 확대, 외부 개발 생태계 지원 등이 그 방향성이다.

지난 2월 변성준·김연수 각자대표는 주주서한을 통해 AI·클라우드 기반 사업 구조 전환 성과와 글로벌 확장 전략을 공식화하며 "소프트웨어를 넘어 글로벌 ‘AI 오케스트레이션’ 기업으로 비상"이라고 비전을 강조했다.

글로벌 AI가 한글을 읽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기능 추가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는 영어 중심 디지털 질서 속에서 지역 언어와 문서 체계가 다시 기술 경쟁의 중심으로 들어왔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AI 시대의 한글은 더 이상 로컬 소프트웨어의 산물이 아니다. 국가 지식 자산이자 데이터 주권의 핵심 기반, 그리고 글로벌 AI 경쟁 속에서 한국이 가진 드문 디지털 인프라로 재정의되고 있다.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