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며] 한현우 보건학 박사·전 이화여자대학교 외래교수
인공지능(AI)이 보건의료의 미래를 바꾸고 있다. 진단과 치료를 넘어 예방, 건강관리, 만성질환 관리, 의료행정과 보건정책에 이르기까지 AI의 활용 영역은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그러나 AI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서 곧바로 국민의 건강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AI를 활용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데이터와 이를 연결하는 표준, 그리고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정책과 제도다. 최근 열린 2026년 한국보건의료정보원 연례 심포지엄은 ‘연결에서 혁신으로, 보건의료 AI 디지털 전환의 미래’를 주제로 이러한 변화의 방향을 보여주었다. 특히 AI 시대의 보건의료데이터 활용, 보건의료데이터의 상호운용성, 디지털헬스 정책은 앞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세 가지 핵심 과제다.
첫째, 신뢰할 수 있는 보건의료데이터의 확보다. AI는 데이터를 학습하고 분석해 질병을 예측하거나 진단을 지원한다. 따라서 데이터가 부정확하거나 편향되어 있다면 AI의 결과도 신뢰하기 어렵다. 의료기관에서 생산되는 진료기록, 검사결과, 영상정보뿐 아니라 건강검진과 공공보건자료 등 다양한 데이터의 품질을 높이고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한국보건의료정보원은 의료기관과 의료AI 기업의 데이터 활용을 지원하는 사업을 추진하며 의료데이터 활용의 기반을 넓혀가고 있다.
둘째, 데이터의 표준화와 상호운용성이다. 현재 의료기관과 기관별 정보시스템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데이터를 저장하고 관리하는 경우가 많다. 데이터가 존재해도 서로 연결되지 않으면 환자의 전체 건강정보를 종합적으로 활용하기 어렵다. 이를 해결하려면 공통된 표준과 용어, 데이터 구조가 필요하다. 특히 국제적으로 활용되는 표준을 기반으로 의료정보를 교환할 수 있다면 병원과 공공기관, 건강보험, 연구기관 사이의 데이터 연계가 한층 쉬워진다. 상호운용성은 단순히 시스템을 연결하는 기술이 아니라 환자 중심의 지속적인 의료서비스와 AI 활용을 가능하게 하는 디지털헬스의 핵심 인프라다.
셋째, 기술을 현장에 연결하는 정책과 제도다. AI가 의료현장에서 활용되려면 개인정보 보호와 보안, 데이터 활용 기준, 의료진의 책임과 윤리, 건강보험과 보상체계, 의료기관의 수용성 등 다양한 문제가 함께 해결되어야 한다. 아무리 우수한 기술이라도 의료현장에서 신뢰받지 못하거나 국민이 안심하고 사용하지 못한다면 지속적인 확산은 어렵다. 따라서 정부와 의료기관, 산업계, 학계가 함께 참여해 기술개발과 제도개선을 병행해야 한다. 특히 고령사회에서는 디지털헬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고혈압, 당뇨병, 심뇌혈관질환과 같은 만성질환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건강위험을 조기에 발견하며, 의료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에게 적절한 시기에 연결하는 데 디지털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
AI가 개인의 건강데이터를 분석해 위험신호를 알려주고, 의료진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며, 보건기관의 예방사업을 정교하게 만든다면 치료 중심의 의료에서 예방과 건강관리 중심의 보건의료체계로 전환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디지털 전환이 빠르게 진행될수록 디지털 격차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고령자와 장애인, 취약계층이 새로운 기술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한다면 디지털헬스가 오히려 건강불평등을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기술의 편리성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는 서비스와 교육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데이터 활용에는 국민의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 국민은 자신의 건강정보가 어디에서 수집되고 어떻게 활용되는지 알 권리가 있다. 데이터를 활용하는 기관은 목적과 범위를 명확히 하고 보안과 책임성을 확보해야 한다. 국민의 신뢰 없는 디지털 전환은 지속될 수 없다. 의료AI 역시 인간의 판단을 대체하기보다 지원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의료진의 경험과 환자의 가치, AI의 분석능력이 조화를 이룰 때 더 안전하고 효율적인 의료가 가능하다. 이번 심포지엄이 주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분명하다. 보건의료 AI의 경쟁력은 AI 자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확보하고, 데이터를 표준화하며, 기관 간 정보를 연결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결국 ‘데이터→표준화→상호운용성→AI→현장 적용→국민건강 향상’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디지털헬스의 목표다.
보건의료의 디지털 전환은 기술 전문가만의 과제가 아니다. 보건학자는 국민건강의 관점에서 기술의 효과와 위험을 평가하고, 정책가는 공공성과 형평성을 확보하며, 의료현장은 환자에게 실질적인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 AI 시대의 보건의료 혁신은 기술과 사람, 데이터와 정책을 연결할 때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AI를 활용해 국민의 건강을 어떻게 더 잘 지킬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그것이 보건의료 디지털 전환이 지향해야 할 궁극적인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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