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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AI 대 인간, 좋은 글쓰기란 무엇인가

이날 예정된 '김영민 vs AI 에세이 첨삭 공개 토크쇼'를 보기 위해서다. 행사가 진행된 5층 강당에는 학과... 그는 이번 첨삭 대결에서 "AI와 교수님이 어떤 지점에서 평이 갈릴지 가장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날 AI와 첨삭...

AI 대 인간, 좋은 글쓰기란 무엇인가

[단비 현장] ‘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교수 토크쇼

지난 3일 금요일 저녁, 서울시 마포구 2호선 홍대입구역 인근은 ‘불금’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사람들이 번화가로 향하는 길 위에서 발걸음을 바쁘게 옮길 때, 홍대입구역 2번 출구와 인접한 한 골목은 유독 적막했다. 오후 7시가 지날 무렵 책을 든 사람들과 가방을 멘 사람들이 이 골목 초입의 5층짜리 건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날 예정된 ‘김영민 vs AI 에세이 첨삭 공개 토크쇼’를 보기 위해서다.

행사가 진행된 5층 강당에는 학과 로고가 새겨진 점퍼를 입고 온 대학생부터 희끗한 머리에 밤색 코트를 걸쳐입은 중년까지 2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서울시 강남구에서 직장 일을 마치고 온 김민재(32) 씨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김영민 교수의 칼럼 ‘추석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김 교수의 글을 좋아하게 됐다는 그는 메일링을 통해 토크쇼 소식을 듣고 이 곳을 찾았다. 그는 이번 첨삭 대결에서 “AI와 교수님이 어떤 지점에서 평이 갈릴지 가장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날 AI와 첨삭 대결을 펼친 김영민 교수는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김 교수는 연구 분야인 동아시아 정치사상사를 넘어 한국과 한국인의 정체성부터 미술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에 대해 글을 써 온 작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지난달 12일 개정증보판이 나온 그의 대표 저서, ‘공부란 무엇인가’는 2020년 초판 발행 이후 현재까지 10만 부가 넘게 팔렸다.

지난 3일 서울시 마포구 청년문화공간JU에서 ‘공부란 무엇인가’를 펴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김영민 교수가 “AI 시대에 왜 쓰고,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AI vs 김영민 교수, 승자는 누구?

토크쇼는 첨삭 대결, AI 글쓰기를 주제로 한 강연, 질의응답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AI와 김영민 교수 간 펼쳐진 첨삭 대결이었다.

AI와 김 교수가 첨삭한 글은 모두 3편이었다. 사전에 공모된 글 30여 편 가운데, 김 교수와 행사를 기획한 출판사 어크로스가 함께 상의하여 첨삭할 글 3편을 골랐다. 선정 이후의 첨삭과정은 ‘깜깜이’로 진행됐다. 김 교수는 선정한 글을 AI가어떻게 첨삭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첨삭에 임했다. 대결은 한 편씩 AI의 첨삭을 먼저 보고, 김 교수의 첨삭을 이어 보는 식으로 진행됐다. AI 측의 대표로는 엔트로픽의 ‘클로드 오퍼스’가 나섰다.

첫 번째 글의 제목은 ‘아주 사적인 애도’였다. 무심코 본 떫은감협회의 현수막을 본 뒤 단맛이 아닌 떫음을 옹호하게 된 글쓴이가 떫은감협회가 (그냥)감협회로 이름을 바꾸는 것에 대해 개인적인 애도를 전하는 글이었다.

AI는 시작부터 매서운 한 방을 먹였다. “글 도입부에 불필요한 부분이 많다”며 단락 삭제를 권유했다. 김 교수 역시 “핵심 내용이 늦게 출발한다”며 AI의 첨삭에 동의했다. AI는 직설적인 화법을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 글쓴이를 아웃사이더라고 칭하기도 했다. AI가 뻔뻔한 돌직구를 날릴 때마다 현장에선 감탄과 실소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AI는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좋다고 생각한 문장에 대해선 “탁월하다” “가장 날카로운 표현이다” “흉내 낼 수 없는 표현이다”라고 하기도 했다. 이에 김 교수가 “AI 코멘트가 다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스스로 반성하게 됐다”고 말하자 청중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김영민 교수가 첫 번째 글 ‘아주 사적인 애도’의 제목에 대한 코멘트를 하고 있다. 김 교수는 “왜, 떫냐”라는 더 도발적인 제목도 가능하다고 했다. 어크로스 제공

AI와 김 교수의 의견이 갈린 지점도 있었다. 떫은감협회를 두고 ‘한국무단승차협회라든지, 휴지통옆에쓰레기쌓기협회 같은 느낌으로 존재해선 안 될 어떤 것들의 협회라는 느낌’이라고 쓴 구절에 대해 AI는 “독자는 글쓴이의 발견을 다른 사례로 일반화하는 데 관심이 없다”며 냉소적인 코멘트를 날렸다. 반면 김 교수는 “개드립을 시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며, “충분히 재밌었다. 더 거침없이 질주해도 좋다”고 말했다.

두 번째 첨삭 대상은 ‘집안일의 (눈)높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글쓴이가 보통 여성의 신장에 맞게 시공된 싱크대와 달리 자신에게 맞게 시공된 싱크대 앞에서 설거지를 포함한 모든 세상일의 높이가 다름을 사유한 글이었다.

AI는 이 글의 ‘가사 노동의 중요도와 완성도 평가는 정성적이기보다 정량적이다’라는 대목을 두고 “측정할 수 없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처리하는 인식론에 대한 조용한 반론”이라며 날카로운 문장이라고 칭찬했다. 반면 김 교수는 “정성과 정량이 꼭 필요할까요?”라며 해당 부분을 “‘그 (중요도 평가)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라고 고쳐 질문하면 어떨까요?”라고 말했다.

마지막 글의 제목은 ‘무엇인가란 무엇인가’였다. 추석이란 무엇인가, 논어란 무엇인가, 한국이란 무엇인가 등의 글과 저서를 통해 이제는 김 교수를 대표하는 질문이 된 ‘~란 무엇인가’에서 시작한 사유 끝에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답을 향한 도약이 아니라 질문 자체에 안착하려는 몸짓이 아닐까’ 하는 또 다른 질문에 도달한 글이었다.

마지막 첨삭에 앞서, 어떤 코멘트가 AI의 것인지 맞히는 시간을 가졌다. 투표 결과, 참석자의 85%가 AI의 첨삭을 정확히 가려냈다. 김정현 기자

AI는 글의 ‘이 질문 앞에서는 잠시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는 대목을 두고 “이중부정이 속도감을 죽인다”고 했다. AI의 첨삭을 보던 김 교수는 “글의 속도감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오늘 AI 코멘트의 특징같다”고 평했다. 김 교수는 이 글을 앞선 글과는 달리 논술문이라고 전제했다. “추석은 지식의 대상이 아니라 고정관념에 가깝지 않을까요?” “해체와 균열이 잘 대구를 이루나요?” “서두의 문제 제기 후에 논리적 과정을 거치는 안정된 흐름을 갖고 있습니다” 라고 김 교수는 주로 글의 논리적인 부분에 대한 코멘트를 이어갔다.

글쓰기 방식은 인간을 바꾼다

첨삭 대결이 끝난 직후엔 ’AI시대에 글쓰기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한 김 교수의 강연이 이어졌다. 김 교수는 2부 시작과 함께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춘향뎐’에서 춘향과 이몽룡이 방자를 통해 서로 시를 주고 받으며 상대의 마음을 떠보는 장면과 암행어사 이몽룡이 걸인 행색으로 사또의 생일연에서 술을 얻어 먹으며 시를 짓는 장면을 보여줬다.

영상을 다 함께 본 뒤, 김 교수는 영화 속 양반들이 이몽룡에게 ‘시를 한 수 써보게’라고 말한 이유에 대해 “과거에는 시의 수준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가늠케 했다”고 설명했다. 이때 좋은 시의 기준은 “고전적인 표현을 얼마나 장악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과거와 달리 관용구의 활용이 좋은 글쓰기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어떤 글쓰기에서 좋은 글은 독창적일 수밖에 없다”며 자신만의 표현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게 좋은 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김 교수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좋은 글쓰기를 논한 이유는 따로 있다. 김 교수는 “(좋은 글)의 모든 기준이 밖에서 올 때, 사람은 수동적이거나 보수적인 캐릭터가 될 가능성이 높을 수 있지만, 자기만의 표현을 일삼는 사람의 내면은 다를 것이다”라며 “글쓰기 방식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바꾸게 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AI를 활용한 글쓰기의 등장도 인간을 바꿀 것이라고 봤다. “(글쓰기를 포함한) 모든 지점에서 AI를 논할 때, 우리가 어떤 인간이 될지 논하지 않으면, 어느덧 우리는 예상했던 것과는 훨씬 다른 인간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게 김 교수가 강조한 것이었다.

질의응답 시간에도 AI 사용법에 대한 얘기가 뜨겁게 오고 갔다. 한 청중은 중고등학교 글쓰기 수업에서 AI가 학생들의 글에 피드백을 하는 것에 대한 김 교수의 견해를 물었다. 김 교수는 “학생들만 보자면 AI로 피드백을 받는 것이 좋겠지만, 문제는 선생이다”라며 “그 문제의 저변에는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이 깔려 있다”고 답했다. AI는 나름 양질의 피드백과 효율성을 제공하겠지만, 교사가 AI에게 피드백을 맡기고 가르침을 포기하는 것은 교육자로서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일과 직결된다는 것이다.

김영민 교수가 강연 마지막 순서로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고 있다. 어크로스 제공

또 다른 청중은 “AI가 자신의 문체를 학습한 상태에서 AI와 협업을 하는 것이 새로운 글쓰기 방식이 되지 않을까”라고 물었다. 김 교수는 “인간의 문체를 학습한 AI가 가까운 미래에는 인간과 비슷한 글을 쓸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관건은 역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냐’는 물음이었다. 김 교수는 “AI에게 글을 모두 맡기면, 글쓰기 능력은 퇴화할 것”이라며 초고만큼은 AI의 어떤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 쓴다는 자신의 가이드라인을 공유했다.

AI 시대, 그래도 펜을 드는 이유

이날 토크쇼의 캐치프레이즈는 ‘김영민 대 AI, 글쓰기 첨삭 대결’이었다. 하지만 승자는 없었다. 대결 중간에 가진 어떤 코멘트가 AI가 해낸 것인지를 투표하는 시간 역시 둘 중 누구의 글이 더 잘났는지 판가름하는 게 목적은 아니었다.

사실 처음부터 강연은 ‘AI는 아직 인간의 상대가 못돼’ 혹은 ‘AI가 어느덧 인간을 뛰어넘었군’과 같은 결론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첨삭대결에 앞서 김영민 교수가 “바둑과 달리 글쓰기란 게 승패를 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제가 AI에게 깨짐으로써 AI로 인한 교육과 글쓰기의 위기를 상기할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이유기도 하다.

강연이 끝난 뒤 이어진 저자 사인회에도 줄이 길었다.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중 몇 사람에게 다가가 “AI를 글쓰기에 어떻게 활용하고 있나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각자 구체적인 실천법은 달랐지만, 자기만의 원칙을 세워 글쓰기를 이어간다는 점은 공통분모였다.

리서치 회사에 다닌다는 김민재(32) 씨는 “업무에서 주로 보고서를 쓸 일이 많아 AI를 적극 활용하지만, 개인적인 글에는 안 쓰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 방법을 지속해 온 그는 “정기적으로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기고하며 나름의 애독층도 확보해 가고 있다”고 말했다.

요리를 업으로 하다가 김 교수의 ‘공부란 무엇인가’를 읽고 또래보다 조금 늦게 대학에 진학해 국어국문학을 공부 중이라는 김하늘(28) 씨는 “글쓰기에 AI의 도움을 받는 것은 편리하지만, AI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고민하게 됐다”며 “지금은 스스로 글 쓰는 습관을 들이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는 최윤호(22) 씨도 AI가 뭐든지 써주는 시대에 좋은 글쓰기를 갈망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는 “아직 구별은 가능하지만, AI에 몇 번의 클릭만으로 글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위화감을 느껴왔다”고 말했다.

그는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적어도 글의 뼈대가 되는 초고만큼은 절대 AI에게 양보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강연을 통해 인간다운 글쓰기를 끊임없이 추구해 나가야겠다는 희망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중학생 때부터 김 교수 글의 팬이었다고 소개한 그는 이날 첨삭된 글 중 하나인 ‘무엇인가란 무엇인가’의 주인공이었다.

단비뉴스 환경부, 후원팀장 김정현입니다.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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