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치초등학교 전경
며칠째 낮 최고 기온이 섭씨 37°를 웃돌았다. 계곡이 마른침을 삼키고, 콩잎과 들깻잎이 절망하고, 여름 열매가 타들어 가고 있었다. 항온동물인 사람의 체온과 혈온을 넘나들었으니 가끔 제정신이 아닐 때도 있겠다 싶다. 지나친 섭생이나 과도한 활동을 삼가고, 청아증이 걸린 것처럼 쪼그려 앉아, 들숨과 날숨만으로 연명하며, 생존 활동을 최소한으로 제한해야 할 판이다. 이러다 어쩌다 문명이 바뀌고, 지구의 주인 운명조차 바뀌는 게 아닐까, 괜한 우화적 가정을 했다.
회문산 자락을 찾았다. 이름만 들어도 순풍이 불어올 것 같은 순창을 거쳐, 전주로 뻗은 4차선 27호선 국도로 행로를 변경하였다. 임실군 경계인 덕치재 너머에서 빠져나와 섬진강 상류로 접어들었다. 회문리 일대 이곳 덕고개 옛 지명은 덕점(德岾) 또는 고덕치(高德峙)라고 하였다. 덕(德)은 ‘크고 높다’는 의미가 있는지라, 교통로로서는 제법 고지대이며, 주변의 높은 산지에서 흘러든 강줄기가 유려하게 돌아가는 곳이다.
한국전쟁 이후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되면서 남쪽에 고립된 남부군의 전라북도 도당(총사령부)이 덕치면 일대 이곳 회문산에 자리 잡기도 하였다. 지리산은 이현상, 회문산은 방준표, 하지만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경성사범을 졸업한 교사 출신 방준표(方俊杓, 1906~1954)를 비롯한 700~1,000명의 빨치산들은 전쟁이 끝난 후인 1955년까지 토벌의 대상이 되었다. 거기에 특별한 이념적 연고가 없었던 지역 주민의 목숨까지 앗아갔던, 서늘하고 오싹한 이야기가 전개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말이 좋아 탐방이지, 체온을 웃도는, ‘한낮의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 수밖에 없었다. 나무 그늘 바위에 앉아 기소풍월(棋嘯風月)하거나 청산의 벽계수에 탁족하며 흐르는 땀 식히는 호사는 신선이 되어서나 가능하려나. 하지만 떠돌이 한량의 땀범벅에도 일말의 자조적 쾌감이 있는 법이다. 해발 고도 600m, 이 지점 어디에서 서늘한 바람 한 모금을 마셔보려나 싶었다.
덕치초등학교 전경 및 교육 목표(덕치초 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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