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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365-7월 12일] 기도, 은혜로만(3)
입력:
2026-07-12 03:00
찬송 : ‘나 같은 죄인 살리신’ 305장(통405)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누가복음 18장 9~14절, 23장 39~43절
말씀 : 우리는 기도할 때 종종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 같은 사람이 기도해도 될까’ ‘내가 부족한데 하나님이 들어주실까.’ 그러나 예수님은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간 두 사람의 비유를 통해 우리가 붙들어야 할 진짜 기도의 자격이 무엇인지 보여 주십니다.
성전에 두 사람이 올라갔습니다.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세리였습니다. 당시 바리새인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경건한 사람으로 여겨졌고 세리는 동족의 미움을 받던 죄인의 대명사였습니다. 겉으로 보면 바리새인은 하나님께 가까운 사람 같았고, 세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자격이 없어 보였습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11절)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금식과 십일조는 귀한 신앙의 행위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 의가 되는 순간 기도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아니라 자신을 높이는 수단이 됩니다.
우리도 조심해야 합니다. ‘내가 이만큼 헌신했으니 하나님이 들어주셔야 한다’ ‘나는 저 사람보다 낫다’는 식의 생각이 들어올 때 기도는 은혜가 아니라 거래가 됩니다. 내 열심과 공로를 내세우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 대신 자기 의에 기대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자기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세리의 기도는 달랐습니다. 그는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보지도 못했습니다. 다만 가슴을 치며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13절) 그는 자신을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남과 비교하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자비만 구했습니다.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으로 내려간 사람은 바리새인이 아니라 세리였습니다. 기도의 자격은 나의 어떠함에 있지 않습니다. 내가 얼마나 잘했는지 얼마나 많이 드렸는지, 얼마나 오래 신앙생활을 했는지가 기도의 문을 여는 근거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누가복음 23장에는 십자가 옆의 한 강도가 등장합니다. 그는 평생 내세울 공로가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자리에서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그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이것이 복음입니다. 아무 공로 없는 죄인도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긍휼을 구하면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자리에서 스스로 자격을 검열하지 마십시오. 연약해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실패하고 넘어졌어도 주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붙들 것은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오늘도 있는 모습 그대로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라고 고백하기 원합니다. 그 고백을 통해 닫혔던 기도의 문이 다시 열리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의와 공로를 의지하지 않고 주님의 긍휼을 의지하여 기도하게 하옵소서. 바리새인의 교만을 버리고 세리처럼 겸손히 엎드리게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붙들고 담대히 주님께 나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이사무엘 목사(창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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