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에게는 2010년 가을부터 2011년 초까지 일본에서 로펌 연수의 기회가 있었고, 1월 말 짧은 경험을 뒤로 하고 새로운 출발을 위해 귀국길에 올랐다. 그리고 일본 열도를 뒤흔든 거대한 지진과 쓰나미의 소식을 들은 것은 며칠 지나지 않은 2011년 3월 11일의 일이었다.
동일본대지진이 남긴 상흔은 거대했다. 20미터에 달하는 쓰나미가 마을 전체를 집어삼키고 원전 사고라는 유례없는 복합 재난이 열도를 뒤덮었을 때, 세계는 일본의 침몰을 우려했다. 그러나 절망의 폐허 속에서 일본인들이 보여준 모습은 질서와 인내, 그리고 치밀한 재건이었다.
단순히 무너진 건물을 다시 세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빌드 백 베터(Build Back Better)’의 원칙 아래 더 높은 방조제와 다중 방어 체계를 구축했다. 피해 지역의 변호사들과 전문가들은 복잡한 권리관계를 정리하며 부흥의 법적 토대를 닦았고, 이는 재난이 발생한 후 어떻게 사회 시스템이 작동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국제적 이정표가 되었다.
일본에게 재난은 ‘어쩌다 일어나는 사고’가 아닌 ‘언제든 찾아올 일상’이다. 이미 에도시대 이전부터도 큰 규모의 지진이나 화산폭발 등 주기적인 재해의 사실이 역사에 기록되어 있으며, 일본 정부와 학계는 난카이 트로프(Nankai Trough) 거대 지진의 발생 가능성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피해 규모를 32만 명으로 추산하는 등 공포스러울 만큼 솔직한 경고를 매년 업데이트한다.
이러한 경고는 단순한 엄포가 아니다. 건축물의 내진 설계를 강화하고, 지각 변동을 실시간 감시하며, 지자체마다 구체적인 피난 시뮬레이션을 가동하는 법적·제도적 근거가 된다. 재난을 전제로 한 국가 운영 철학은 일본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면역 체계와 같다.
반면, 일본의 이러한 처절한 대비와 과학적 분석을 바라보는 한국 일부 언론의 시각은 우려스럽다. 지난해의 ‘7월 대지진설’, 그리고 난카이트로프 분석결과 공표 당시, 국내 공중파를 포함한 주요 매체들은 과학적 근거보다는 자극적인 썸네일과 ‘일본 침몰’ 식의 반일 정서를 자극하는 데 열을 올렸다.
철저한 재해 대비의 관점에서 약간의 호들갑이 섞인 일본 매체의 보도가 늘 한국 언론에 의하여 희화화, 확대 재생산되며, 직후 한국에서는 일본에 여행가도 되는지를 묻는 전화나 카톡이 온다. 아니 내가 그걸 알면 여기서 이러고 있겠는가.
한국의 현실로 눈을 돌리면 대조는 더욱 명확해진다. 기후 변화로 인한 국지성 폭우가 매년 반복되며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정보의 투명성’ 앞에서 주춤한다. 수해 위험 지도를 제작하고도 부동산 가격 하락을 우려하는 지역 여론의 반발에 부딪혀 공표하지 못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는 일본의 각 구약소(区役所)마다 누구나 볼 수 있게 비치되고 홈페이지에 업로드되어 있는 ‘해저드 맵(Hazard Map)’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제도적 한계는 기술적 진보마저 가로막고 있다. 구글은 AI 기반 홍수 예측 서비스인 ‘구글 플러드 허브(Google Flood Hub)’를 통해 전 세계에 실시간 재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기상법 제17조 등 관련 조항에 묶여 기상청이나 허가받은 기관 외에는 과학적 관측 기반의 홍수 예보를 일반 대중에게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기술은 이미 지진과 재해 정보를 초 단위로 전달할 준비가 되어 있으나, 낡은 규제가 실시간 재난 대비의 허들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얼마 전은 동일본대지진 15주기였다. 일본인들은 다시금 당시의 기억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희생자의 추모, 보다 안전한 재난대응 태세, 아직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동일본 해안 지역에 대한 계속적인 지원을 이야기한다. 올 여름 서울에 찾아올지도 모르는 폭우와 침수사태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투명한 정보와 시스템을 통하여 준비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웃 국가의 사례를 벤치마킹한 좀 더 진지한 사회적인 고민과 논의가 필요한 시점은 아닐까.
이준희 변호사(도쿄 TMI종합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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