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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2026 경상북도 문화마을이야기] 경주 건천읍 체리마을- 90년 뿌리내린 ‘체리의 고향’…천년고도 붉게 물들인다

경주역 뒤편에 자리한 경주시 건천읍 화천2리 체리마을. 이곳은 20가구, 30여 명의 주민이 살아가는 작은 농촌마을이다. 마을을 중심으로 체리과수원이 자리하고 있으며, 1936년 이곳에서 시작된 체리 재배는 약 90년의 세월을 거쳐 오늘날 전국 최대 체리 산지인 경주의 출발점이 됐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첫 묘목 심어

주민들이 현재까지 명맥 이어와

경주 대표 특산물로 자리매김

경주역 뒤편에 자리한 경주시 건천읍 화천2리 체리마을. 이곳은 20가구, 30여 명의 주민이 살아가는 작은 농촌마을이다. 마을을 중심으로 체리과수원이 자리하고 있으며, 1936년 이곳에서 시작된 체리 재배는 약 90년의 세월을 거쳐 오늘날 전국 최대 체리 산지인 경주의 출발점이 됐다. 김선국 사진작가

경주라는 이름 앞에는 흔히 ‘천년고도’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신라 천년의 역사를 품은 첨성대와 불국사, 석굴암, 대릉원 등 유적이 도시 곳곳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황리단길 같이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카페와 상점이 들어선 거리가 관광객들을 불러모은다. 역사 도시이자 사계절 관광도시로 여겨지는 경주에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모습도 있다. 바로 경주가 우리나라 체리의 최대 산지라는 것이다.

복진·브룩스·블랙펄 조생종부터

라핀·나폴레옹 등 만생종까지

수백여 종 중 20여종 체리 재배

라핀, 레이니어, 타이톤, 레지나, 자브레, 스위트하트…. 낯선 이름은 체리의 품종이다. 초여름이면 경주 곳곳에서 체리가 탐스럽게 익어간다. 복진과 브룩스, 블랙펄 같은 조생종부터 좌등금과 애보니펄 등의 중생종, 라핀과 나폴레옹 같은 만생종까지 수확 시기도 다르고 색깔, 맛이 모두 다르다. 우리가 흔히 아는 검붉게 익는 품종도 있고 노란 바탕에 붉은기가 도는 품종도 있다. 수백 여종의 체리 중에 경주에서는 주로 20여종의 체리를 재배한다. 경주 체리는 경주역 뒤편의 작은 농촌마을에서 시작됐다.

마을 입구에 서있는 체리마을 조형물. 뒷편으로 보이는 산이 우리나라 체리의 시배지이다.

경주역에서 차로 3분, 걸어서도 10분 남짓이면 닿는 경주 건천읍 화천2리 옥수마을 입구에는 ‘체리마을’이라고 적힌 대형 조형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초록색 나무줄기를 형상화한 조형물에는 빨갛게 익은 체리 여섯 알이 달려있다. 조형물 뒤쪽으로 병풍처럼 둘러선 야트막한 산자락이 국내 체리 재배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일제 강점기였던 1936년 일본인들이 이곳 옥수마을에 처음 체리 묘목을 심었다. 우리나라 여러 지역을 살펴본 끝에 이곳의 기후와 토양이 체리 재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던 까닭이다. 이후 1944년 마을주민 홍순원 씨가 이를 매입해 현재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의 후손들을 비롯한 마을 주민들이 체리 농사를 이어가면서 재배면적이 점차 주변지역으로 확산됐고 이제는 경주를 대표하는 특산물로 성장했다.

화천 2리는 지형이 곶으로 되어 곶내, 고내, 고천이라 불렀다고도 하고 골짜기에 꽃이 만발하여 꽃내라 부르다가 뒤에 화천(花川)으로 고쳐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다. 현재 마을에 남아있는 주민은 20여 가구, 30여 명 남짓으로 고령화와 인구 감소는 다른 농촌과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체리가 이 작은 마을의 계절을 바꾸고 사람을 불러들이는 힘이 되고 있다.

체리라고 하면 검붉은 색의 체리만을 떠올리지만 다양한 컬러의 체리가 있다.

지금은 화천2리 옥수마을이라는 이름보다 ‘체리마을’로 불린다. 2017년부터 추진한 체리마을 조성사업을 통해 마을의 역사와 체리 문화를 담은 공간을 조성하고 체리를 테마로 한 경관을 정비하면서, 단순한 체리 생산지를 넘어 우리나라 체리 재배의 역사를 품은 마을로 새롭게 자리매김했다.

오렌지색 외관에 체리모양 창문이 인상적인 알콩달콩 체리관.

체리 테마로 마을경관 재정비

체리잼 등 부가가치도 창출

작은 체리가 마을 살리는 힘

느린 걸음으로 골목을 걷다 보면 마을의 상징이자 주민들의 일상이 된 체리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마을 입구 조형물부터 체리를 주제로 한 벽화와 안내판, 오렌지색 외관에 체리모양 창문이 있는 ‘알콩달콩 체리관’이 눈길을 끈다. 주변으로 비가림 시설을 갖춘 과수원이 펼쳐진다. 세월의 흔적으로 빛바랜 벽화 하나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SINCE 1936’이라는 문구와 홍순원 씨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우리나라 체리 재배의 역사가 이곳에서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경주 체리마을 곳곳에서 체리를 주제로 한 벽화를 만날 수 있다.

옥수마을이 체리의 고향이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체리는 과수 가운데 비교적 빨리 꽃을 피우는 만큼 서리와 냉해에 약하다. 수확기에는 비를 맞으면 열매가 갈라지는 ‘열과’가 생겨 상품성을 잃는다. 해발 약 200…300m 벽도산 자락에 자리한 옥수마을은 수확철에 강수량이 많지 않고, 돌이 많은 사질양토여서 배수가 뛰어나 체리 재배에 최적의 환경을 갖췄다. 여기에 90여 년 동안 축적된 재배 경험과 기술이 더해지면서 화천리 작은 과수원에서 시작된 체리는 경주를 대표하는 특산물로 성장했다.

경주 체리마을 곳곳에서 체리를 주제로 한 벽화를 만날 수 있다.

평소에는 한적한 마을이지만 초여름이면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5월 말부터 6월 하순까지 이어지는 체리 수확철이 되면 마을은 일 년 중 가장 바쁜 시기를 맞는다. 체리 따기 체험을 하려는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마을에는 직판장이 들어선다. 주민들은 새벽부터 수확한 체리를 손질해 손님을 맞고, 과수원에서는 빨갛게 익은 체리를 직접 따는 체험이 이어진다. 조용했던 마을에 체험객의 차량이 드나들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들린다. 일손이 바빠지면서 타지에 나가 있던 가족들도 이때만큼은 열 일을 제쳐두고 고향을 찾아 일손을 보탠다.

경주 체리마을 곳곳에서 체리를 주제로 한 벽화를 만날 수 있다.

사실 체리가 우리에게 익숙해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금은 모두 ‘체리’라고 부르지만 예전에는 ‘버찌’ 혹은 ‘양앵두’라는 이름이 더 익숙했다. 한때 체리는 백화점에서나 볼 수 있는 귀한 과일이었고 대부분 수입에 의존했다. 2012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서 24%의 관세가 철폐돼 미국산 체리가 무관세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체리 수입이 늘어나면서 대형마트 등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과일이 됐다. 소비가 늘어나면서 국산 체리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졌다. ‘신토불이’, 우리 땅에서 재배한 농산물을 선호하는 인식과 함께 수입산보다 이동 시간이 짧아 수확 직후의 신선함을 그대로 맛볼 수 있다는 점과 경주 체리 특유의 식감과 풍미가 알려지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현재는 다양한 품종의 체리가 매년 초여름 전국 각지로 출하된다.

화천 체리마을이라는 글씨 뒤쪽으로 비가림막을 한 체리 과수원이 보인다.

우리나라 체리의 고향이라는 자긍심을 간직하고 있지만 체리 농사는 갈수록 녹록지 않다. 최근 몇 년간 이상기후로 개화기에 서리와 냉해가 반복되면서 결실률도 크게 떨어졌다. 농가에서는 수확기 비 피해를 막기 위해 비가림 시설을 설치하고 꽃이 피는 시기에는 미세 살수 시설이나 온풍기를 이용해 냉해에 대비한다. 그렇지만 시설 투자 비용이 만만치 않다. 과육이 부드러운 체리는 기계 수확도 어려워 열매 하나하나를 모두 사람의 손으로 따야 한다. 농가에서는 수확이 쉽도록 나무를 높게 키우지 않고 가지를 수평으로 유인해 낮은 수형으로 재배하기도 한다.

체리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한 가공식품. 체리잼과 체리소다.

체리는 옥수마을의 역사이자 현재이고, 미래다. 주민 수는 줄고 있지만 체리가 익는 초여름이면 마을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체험객은 마을을 걷고, 체리따기 체험도 하고 주민들이 수확한 체리를 구입하기도 한다. 일부러 찾아오는 화려한 관광지는 아니지만 2010년 경주역이 들어서면서 접근성이 좋아져 마을을 찾아오기도 쉬워졌다. 최근에는 생과 판매를 넘어 체리잼과 음료, 체리씨를 활용한 제품 등으로 체리의 부가가치를 높여 마을의 새로운 소득원을 만들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1936년부터 시작된 체리의 역사는 어느덧 90년의 시간을 지나 마을을 대표하는 상징이자 활력을 심어넣는 이름이 되었다. 천년고도 경주에는 이렇게 초여름이면 붉게 익어가는 체리와 함께 또다른 시간이 이어지고 있다.

안영준·배수경기자

<우리 마을은>

임영식 경주체리영농조합법인 대표

임영식 경주체리영농조합법인 대표 “버려지는 체리까지 가치있게 활용”

국내 최대 체리 산지인 경주에는 150여 농가가 체리를 재배한다. 경주체리영농조합법인은 경주지역 체리 농가들의 지리적표시 단체포장을 위해서 처음 설립됐다. 현재 경주 체리 농가 중 100여 곳이 참여하고 있으며 브랜드 육성과 판로 확대를 위해 애쓰고 있다. 2005년부터 조합을 이끌고 있는 임영식 대표는 단순히 생산량을 늘리는 것 보다 ‘경주 체리의 경쟁력’을 키우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임 대표는 원래 화천 2리 체리마을에서 사과와 체리를 재배했다. 그렇지만 KTX 경주역사 건립으로 농장이 사업 부지에 편입되면서 10여 년 전 금척리로 옮겨왔다. 부득이하게 마을은 떠났지만 체리가 처음 뿌리를 내린 마을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을 담아 화천(花川)의 옛 이름 ‘꽃내’를 농장이름으로 하고 있다.

“좋은 체리를 생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버려지는 체리까지 가치 있게 활용하는 시대입니다.” 임 대표는 “생과 판매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가공과 체험을 함께 키워야 농가 소득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체리는 수확한 모든 과실을 생과로 판매할 수는 없다. 이 때문에 경주체리영농조합법인은 크기가 작거나 흠집이 있다는 이유로 판매를 하지 못하는 체리를 활용한 다양한 가공제품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처음에는 식초도 만들어 봤지만 생각보다 판로가 없었다. 도농업기술원에 체리와인 제조기술특허도 냈지만 상품화가 쉽지가 않았다.

체리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아내 최외수 씨도 새로운 상품 기획과 마케팅 아이디어를 꾸준히 제안하며 힘을 보태고 있다.

크기가 작거나 상품성이 떨어지는 체리를 활용해 가공한 체리잼은 ‘꽃내체리팜’이라는 이름으로 유통되는데 체리 함량이 70%로 높아 소비자들의 반응도 좋다. 지금은 다른 농가에서 생산한 체리도 함께 매입해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 설탕을 넣지 않고 체리 농축액으로 만든 소다음료는 경주 벚꽃축제 등에서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지역 제과점에서는 체리잼을 활용한 빵을 판매해 인기를 끌고 있다. 열을 오래 머금는 성질을 가진 체리씨를 활용해 냉·온찜질용 패드를 만들고 체리 막걸리도 개발하면서 체리의 활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그가 가장 바라는 것은 젊은 농부가 늘어나는 일이다. “체리를 이어갈 청년 농업인이 더 많아져야 합니다.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는 품종 개발과 명품화도 계속 추진해야 경주 체리의 경쟁력을 지킬 수 있습니다.”

배수경기자 micbae@idaegu.co.kr

<가볼만한 곳>

박목월 생가

◇박목월 생가...시인의 삶과 문학 스며든 곳

박목월 생가는 고즈넉한 시골 풍경 속을 천천히 걸으며 시인의 삶과 문학을 함께 느껴볼 수 있는 건천의 대표 문학 명소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 가운데 하나인 ‘나그네’의 첫 구절이다. 한국 현대시를 대표하는 청록파 시인 박목월(1916~1978)의 고향이 바로 경주 건천읍 모량리다. 2014년 복원된 박목월 생가는 목월 동상 뒤쪽으로 안채와 사랑채, 디딜방앗간을 갖춘 초가집이 있다. 친필 원고와 유품이 전시된 생가를 둘러보며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시낭송장도 갖추고있어 시인이 어린 시절을 보낸 이곳에서 그의 문학세계를 천천히 되새겨볼 수 있다.

나그네정이라는 현판을 단 정자 앞에는 시인의 대표작 ‘윤사월’을 새긴 시비가 자리잡고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동요의 가사 '송아지'부터, '산이 날 에워싸고', '선도산하' 등 시인의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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