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봉산 정상 부근에 있던 마을이 70여년 전부터 하나둘 산아래로 내려와 새로운 터를 잡아 마을이 형성됐다. 함창 담꽃새 마을에서는 마을에서 생산한 콩으로 메주를 만들고, 된장과 간장을 담아 판매한다. 김선국 사진작가
최근 우리 사회에서 주목을 받는 트렌드 중의 하나로 ‘느림의 미학’이 있다. 속도와 생산성만을 강조하는 환경에서 벗어나 자연과 환경, 인간이 어우러져 여유롭고 즐겁게 살아보자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슬로시티와 슬로푸드가 있다.
슬로시티는 느리게 살기를 추구하면서 지역의 자연환경과 전통문화, 먹거리 등의 고유 자산을 보전하고 지속 가능한 도시를 지향하는 것을 말한다. 슬로시티 운동은 1999년 이탈리아에서 처음 시작됐다. 슬로푸드는 지역의 전통적인 식문화를 지키고 우수한 식재료와 농업을 보호하기 위해 시작된 미식·환경운동이다. 패스트푸드와 인스턴트식품의 반대 개념이다. 슬로시티와 슬로푸드는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 삶의 속도를 늦추고 자연과 인간다움을 회복한다는 철학을 담고 있다. 슬로시티 안에서 슬로푸드를 추구하는 마을이 있다. 상주시 함창읍 신흥3리에서 슬로푸드를 만드는 ‘담꽃새마을’이다.
상주 슬로시티 1호 마을 선정 기념으로 세워진 담꽃새 마을 표지석.
상주시 ‘슬로시티 1호’ 마을
3개 자연부락 50가구 규모 형성
속도·생산성 중심에서 벗어나
여유·자연·인간다움 회복 지향
인근 마을 공동 ‘노꼬바리축제’
매년 열어 볼거리·즐길거리 마련
상주시 슬로시티 1호인 신흥3리는 콩과 벼를 주로 재배하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새담과 꽃들, 새마 등 3개의 자연부락에서 50가구의 주민들이 생활한다. 70여 년 전에 마을 뒤 오봉산 정상 부근에서 생활하던 주민들이 생활 편의를 위해 현 위치로 이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새로 만든 마을이라 하여 신흥리로 불렀다.
조선시대 생원·진사 등 과거 급제자들이 모여 향촌 자치와 교육을 담당했던 함창사마소.
마을에는 오랜 역사를 간직한 문화유산도 많다. 그 중의 하나가 ‘함창사마록봉안소’라는 특별한 시설이다. 흔히 사마소로 부른다. 사마소는 생원과 진사 등 과거에 급제한 선비가 50인이 넘는 지역에서 유림들이 자발적으로 설치한 향촌의 자치·교육기구다. 현재 전국에 남아 있는 사마소는 함창과 경주, 옥천, 청안(괴산) 등 4개소다. 함창사마소에 봉안된 사마록에는 1438년에서 1849년 사이에 급제한 진사와 생원 227명과 장원 72명, 양시 18명, 문과 81명의 성명과 본관, 자, 호, 생년, 급제 연도, 이력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 과거 관련 기록문화의 진수로 꼽힌다.
임호서원.
마을의 또다른 문화유산으로는 1693년(숙종 19)에 지역 유림들이 건립한 임호서원이 있다. 조선 전기 문신인 홍귀달과 표연말, 채수, 권달수, 채무일 등 5인을 배향하고 있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88년 지역 유림들이 뜻을 모아 복원했다. 강당과 사당이 동서 횡렬로 배치되어 있다. 강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임호강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다. 매년 3월에 이곳에서 향사를 지낸다.
마을 어르신들이 메주를 매달 짚을 손질하고 있다.
지역 신앙 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한 함창성당 신흥공소도 있다. 공소는 천주교에서 본당 신부가 상주하지 않고, 신자들이 모여 미사를 올리는 천주교 공동체 또는 천주교 건축물을 의미한다. 일제강점기인 1925년에 건립한 이후 숱한 어려움을 겪었으나 교우들이 신앙심으로 지켜온 공소다. 2026년 4월 12일 안동교구장 권혁주(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의 주례로 100주년 기념미사를 봉헌했다.
오랜 역사와 문화유산을 가진 마을에는 다양한 복지·문화시설도 자리하고 있다. 장애인들의 자립을 돕기 위한 상주시 장애인보호작업장도 그중 하나다. 근로 능력이 있는 장애인들에게 적정한 훈련 기회를 제공하고 실제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장이다. 작업 활동을 통하여 직업적인 능력을 키우고 경제적 자립을 지원한다. 면장갑 생산과 지역 특산물인 곶감 가공과 단순 임가공작업을 주로 한다.
오봉산 생태문화수련관에서는 매년 10월에 노꼬바리축제를 연다. 노꼬바리는 학창시절 논두렁에서 도시락을 까먹고 땡땡이치는 것을 뜻하는 사투리다. 힘든 농사일을 접어두고 하루라도 즐겁게 놀면서 즐기자는 의미를 담은 축제다. 주민들의 난타 공연과 댄스 공연, 색소폰연주 등 다양한 컨텐츠로 구성되어 볼거리와 먹거리가 있는 축제다. 노꼬바리축제는 신흥1·2·3리와 신덕1·2리 등 인근 5개 마을이 공동으로 개최한다.
마을 어르신들이 메주를 만들 콩을 선별하고 있다.
전통 방식 메주·된장·간장 등 생산
장맛 핵심 소금은 신안 천일염
5년간 창고서 간수 완전히 빼
쓴맛 없앤 단맛 나는 소금 사용
격년제로 콩축제 열어 소득 향상
지속 가능한 전통의 맛 이어가
슬로시티 속의 또 다른 슬로시티 ‘담꽃새마을’은 슬로푸드를 만드는 마을이다. 신흥3리의 자연부락인 새담과 꽃들, 새마에서 한 글자씩을 따와서 지은 이름이다. 정식 이름은 ‘담꽃새 메주된장마을 영농조합법인’이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이용해 메주를 만들고 이 메주로 된장과 간장을 만든다. 고추장과 두부도 만든다. 두부는 11월부터 2월까지 겨울철 특화상품으로 만든다. 모두가 슬로푸드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품질 좋은 농산물로 전통 방식에 정성을 가미해 만든다. 70~80대 할머니들이 주축이 되어 만드는데 현재 40명이 참여한다. 대표 상품이라고 할 수 있는 메주와 된장, 간장이 완성되기까지는 긴 시간의 기다림이 필요하다. 가을에 수확한 콩을 고르고 씻어서 물에 충분히 불린 후 가마솥에서 삶아서 메주를 만든다. 메주는 12월에 만들어서 황토방에서 건조와 발효과정을 거친다. 2월에 장을 담그고 5월에 장가르기를 하면 된장과 간장을 만드는 일련의 과정이 끝난다. 대략 반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새끼줄을 꼬아 건조시키는 전통 방식의 메주.
장담그기에 있어서 중요한 재료 중의 하나는 소금이다. 담꽃새에서는 신안에서 생산된 천일염을 사용한다. 천일염은 구입 후 바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그늘진 창고에서 5년을 묵혀서 사용한다. 5년 동안 보관하면서 간수를 완전히 빼는 것이다. 간수가 빠지지 않은 소금을 이용해 장을 담그면 쓴맛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간수를 뺀 소금은 질감이 바삭바삭하고 단맛이 있는 짠맛이라고 한다.
천일염으로 만든 소금물에 숙성 되고 있는 메주
담꽃새에서 생산하는 된장이나 간장 등 모든 제품은 지역의 농산물을 활용하고 마을 어르신들이 직접 전통 방식으로 만든다는 원칙을 지킨다. 콩의 선별에서 된장과 간장의 판매까지 모두 공동작업으로 한다. 지난해 메주와 된장, 간장, 두부 등을 만드는데 대략 5톤의 콩을 사용했다. 대부분 예약 판매를 한다. 된장 항아리도 분양한다. 소비자들이 어르신들의 도움을 받아 장을 담그고 장가르기를 한 이후에 자신의 항아리에 보관하다가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가져 간다. 메주와 함께 농산물도 판매한다. 쌀과 보리쌀, 검정콩, 양파, 비트, 꿀 등 마을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농산물을 판매한다.
11월에는 ‘담꽃새마을 빛나두 콩축제’를 연다. 신품종 검정콩인 ‘빛나두’를 홍보하고 지역 농산물 판매를 통하여 농가소득을 높이기 위한 축제다. 축제를 통하여 검정콩인 ‘빛나두’를 지역의 브랜드로 정착시키는 것으로 목표로 한다. 빛나두 콩축제는 격년제로 개최한다.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는 슬로시티 신흥3리와 그 속에서 슬로푸드를 만들면서 전통의 맛을 지켜나가는 ‘담꽃새마을’의 앞날이 기대된다.
이재수기자·홍상철 수필가
<우리마을은>
조희제 담꽃새 메주된장마을 영농조합법인 대표
조희제 대표 “생산·가공·판매까지 우리 손으로”
“마을에서 농산물의 생산에서 가공, 판매까지 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도 순수한 농업인들이 해낸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습니다. 많은 지역에서 비슷한 형태로 공동 사업을 하고 있지만 성공하는 케이스는 많지 않습니다.” ‘담꽃새 메주된장마을 영농조합법인’ 조희제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조 대표는 인천에서 20년 동안 도시가스 설비업을 하던 중 원청업체의 부도에 휘말려 어려움을 겪다가 고향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보자는 생각에서 2007년에 귀농했다. 현재 콩 4만 4천여 평과 벼 2만 2천여 평, 시설하우스 오이 1천 2백여 평을 재배하는 농업인이다. 귀농 후 조 대표가 심혈을 기울인 것은 농가소득 증대였다. 벼농사 위주의 농사에서 콩 재배를 통하여 농가소득을 올리겠다는 것이었다. 논에 콩을 재배하면 벼농사보다 1.5배의 소득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 조 대표가 논에 콩을 심고 이웃에 권장할 때만 해도 반응은 냉담했다. “논에 콩을 재배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했다. 그러나 조 대표는 포기하지 않고 논콩 보급에 온 힘을 쏟았다. 3년 만에 논콩 재배가 성공하자 주변의 반응도 달라졌다. 현재 마을 들판의 70%를 콩이 차지할 정도로 콩 재배가 자리 잡았다.
단순한 면적 확대에만 머물지는 않았다. 새로운 콩 재배 기술개발에도 주력했다. 콩 재배의 가장 큰 애로사항인 야생동물의 피해를 줄이는 방법을 개발했다. 콩 재배에 있어서 비둘기와 같은 조류와 고라니 피해는 막기 어려운 문제였다. 콩을 파종하면 비둘기를 비롯한 조류가 떼로 몰려와 먹어 치운다. 밤이면 고라니가 내려와 막 돋아난 잎을 잘라 먹는다. 이런 피해를 막기 위해 조 대표는 살충제와 살균제를 혼합한 약제에 콩 종자를 소독하는 방법으로 해결했다. 흰콩에서 많이 발생하는 자주무늬병 방제법도 개발해 시험 재배를 하고 있다. 이 방법이 성공하면 주변 농가에 보급할 계획이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23년 대통령 포장인 산업포장까지 수훈했다.
앞으로는 지역을 전국 제일의 검정콩 단지로 조성하고, 지역의 브랜드로 정착시키기 위해 힘을 기울이고 있다. 마을에서 이루어지는 노노케어를 위한 준비작업도 진행 중이다. “평생 고향을 지키던 어르신들이 노년에 고향을 떠나 요양시설에서 지내는 것이 많이 안타까웠다”면서 “마을 안에서 이웃과 함께 생활하면서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받고, 죽음을 맞이한 후 고향 선산에서 영면에 드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홍상철 수필가
<가볼만한 곳>
경천섬공원
◇ 경천섬공원...낙동강 물줄기 둘러싸인 생태공원
푸른 낙동강 물줄기에 둘러싸인 상주 경천섬(경천섬공원)은 자연 환경이 수려한 친환경 생태공원이다. 상주시 도남동과 중동면 오상리 일원, 상주보 상류에 위치해 있는 20만㎡ 규모의 하중도로 남북으로 길쭉한 나뭇잎 모양을 하고 있다. 예전에는 농경지로 이용되었던 섬이다. 상주보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처했으나 부지를 성토해 공원으로 조성했다.
내부에는 야생화 단지와 잔디광장, 약 2km에 이르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주변 비봉산의 수려한 절경과 낙동강의 푸른 물결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특히 해 질 무렵 경천섬 너머로 노을이 펼쳐지면 낙동강을 물들이는 황금빛 윤슬이 장관이다.
바로 옆에 도남서원이 있고 인근에 국립 낙동강 생물자원관과 상주보 수상레저센터, 자전거 박물관, 국제승마장 등 다양한 관광자원이 있어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많은 곳이다. 열린 관광지로 조성되어 관광 약자도 편안하고 안전하게 즐길 수 있다. 무장애 폰툰보트와 무장애 피크닉장, 무장애 숙박시설(회상나루관광지 객주촌 한옥펜션 무장애 객실)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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