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수 반올림 상임활동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줄만 알았던 반도체산업이 사람의 생명을 꺼뜨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19년 전 고 황유미씨를 통해 알려졌다. 그 이후 지금, 반도체산업을 묻는 연속 기고를 싣는다. <편집자>
3월6일은 고 황유미 19주기였다. 최근 건설된 반도체공장은 유미씨가 일했던 때와 많이 달라졌다. 설비를 오퍼레이터가 운영하던 방식의 공장이 남아 있긴 하지만 신규공장은 완전히 자동화됐다. 공장에서 사람을 보기 어려울 정도다. 자동화는 반도체공장만이 아니라 삼성전자 전 사업장에서 진행됐다.
자동화는 일부 작업환경 개선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작업환경 개선의 혜택은 노동자가 아니라 삼성의 이윤으로 흡수됐다. 삼성전자 여성 제조노동자는 2017년 7만여명에서 2022년 2만여명으로 급감했다.
자동화된 반도체공장은 계속 지어졌고, 설비도 급증했다. 이에 비례해 설비를 유지보수하는 노동자가 늘어났다. 평소 차폐돼 있는 자동화설비라도 유지·보수, 고장수리 작업을 할 때는 설비를 열거나 분해해야 한다. 당연히 독성화학물질에 고농도로 노출된다. 설비 유지보수 작업은 반도체공장에서 가장 위험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이 설비 유지보수 업무가 빠르게 외주화되고 있다. 삼성에서 설비를 구입할 때 설비업체와 유지보수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설비업체 노동자에게 업무가 넘어가는 것이다.
협력업체 노동자에게는 위험정보 전달이 느리다. LG디스플레이에서 배관공사를 하던 협력업체 노동자는 급성독성물질이 차단돼 있지 않다는 걸 모른 채 요구된 작업을 하다 독성물질(TMAH)을 뒤집어쓰며 다치고 죽었다. 협력업체 노동자는 을 중의 을이다. 위험한 작업을 거부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삼성전자에서 불산이 누출됐을 때, 피하지 못하고 사고를 수습하다 협력업체 노동자 5명이 중상을 입고 그중 한 명이 죽었다.
반도체 설비 세정작업은 아예 전담하는 협력업체가 만들어졌다. 독성물질로 오염된 반도체 설비부품을 받아서 역시 독성화학물질로 세척하는 것이다. 방독면 필터를 몇 시간 만에 교체해야 할 정도로 작업환경이 열악하다. 작업 전후 부품 사진을 찍기 위한 카메라가 몇 개월 만에 부식돼 망가질 정도라고 한다.
이대성씨는 삼성반도체 CCSS(중앙화학물질공급장치)룸에서 일하다 뇌종양으로 사망했다. 반도체공장에 쓰이는 수백 종의 화학물질은 모두 이곳을 거쳐 간다. 불산누출사고가 발생했던 곳이기도 하다. 화학물질을 공급받고, 직접 부어 넣기도 하고, 흘러넘치는 화학물질을 닦아내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화학물질은 호흡기만이 아니라 피부를 통해서도 흡수된다. 반도체공장에서 가장 위험한 CCSS룸에는 대부분 이대성씨와 같은 협력업체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박종성씨는 폐암치료에 매달 550만원이 필요하다. “살고 싶다. 살려 달라”고 말하는 그는 삼성반도체 협력업체인 폐기물처리업체에서 일했다. 반도체 폐기물이 운반돼 처리작업장에 쏟아지면 분진이 회오리를 쳤다. 반도체 폐기물은 온갖 종류의 발암물질을 포함한 독성화학물질이다. 마스크도 없이 일했고, 나중에 마스크가 지급됐지만 마스크를 뚫고 냄새가 들어왔다. 매주 배관을 청소했는데, 독성화학물질 냄새는 견디기 어려울 정도였다.
자동화로 안전해진 것처럼 보이는 반도체공장에서 가장 위험한 일들을 협력업체 노동자가 담당하고 있다. 원청은 안전보건비용 절감 등 이익을 얻고 위험은 협력업체에 떠넘길 수 있다. 전가된 위험은 개선되지 않는다. 협력업체는 안전과 보건을 위해 비용을 쓸 여력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원청에 협력업체 안전보건비용을 책정하도록 하고, 협력업체에서 안전보건문제 발생시 그 책임을 원청에게 묻는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주요 반도체 전자기업에서 발생한 사망사고 희생자는 대부분 협력업체 노동자다. 우연이 아니다. 가장 위험한 일들은 대부분 이들에게 주어진다. 위험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급박한 상황에서 대처방법을 결정하지 못하고 원청의 결정을 기다려야 한다. 급박한 상황에서도 스스로의 결정으로 피하지 못한다. 그러니 죽고 다치는 것이다. 이들에게 꼭 필요한 안전보건교육 및 보호장구 지급 등은 더욱 허술하다. 최근 반도체 전자기업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산재신청이 늘고 있는 것도 위험의 외주화 효과를 잘 보여준다.
삼성과 하이닉스가 천문학적 이익을 뽑는 동안 협력업체 노동자가 위험을 온전히 감당하고 있다. 이들이 없다면 반도체 생산도 없다. 삼성과 하이닉스는 협력업체 노동자 건강과 생명을 위해 마땅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협력업체 노동자가 더 이상 죽지 않도록 원청기업이 책임을 다해야 한다. 위험의 외주화를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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