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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19년 전 황유미 그리고 지금 반도체는 ②] 피해자를 보호하는 산재보험...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줄만 알았던 반도체산업이 사람의 생명을 꺼뜨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19년 전 고 황유미씨를 통해 알려졌다. 그 이후 지금, 반도체산업을 묻는 연속 기고를 싣는다. ▲ 조승규 노무사...

[19년 전 황유미 그리고 지금 반도체는 ②] 피해자를 보호하는 산재보험...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줄만 알았던 반도체산업이 사람의 생명을 꺼뜨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19년 전 고 황유미씨를 통해 알려졌다. 그 이후 지금, 반도체산업을 묻는 연속 기고를 싣는다. <편집자>

▲ 조승규 노무사(반올림지원노무사모임)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고 황유미씨가 알려진 것은 2007년이었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산재로 인정된 사례도 적지 않게 쌓였고, 대법원 판결도 나왔고, 반도체 회사들이 직업병 문제를 인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도 반도체 피해자들은 산재를 인정받기까지 멀고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산재인정을 가로막는 장벽들이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그 첫 번째 장벽은 입증책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산재를 인정받으려면 피해자가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병든 노동자에게 처음부터 불가능한 요구에 가깝다. 영업비밀을 이유로 자신이 어떤 업무를 했는지 증명할 사진 한 장, 문서 한 장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기업은 자유롭게 불리한 정보를 숨기거나 아예 거짓 주장을 할 수 있다. 그로 인한 불이익은 고스란히 피해자에게 돌아가고 있다.

최근 필자가 담당했던 한 사건이 이 문제를 잘 보여준다. 회사는 연구직으로 근무한 고인을 사무직이었다고 주장했다. 재직증명서에 연구직으로 명시되어 있고, 회사 스스로도 연구직임을 근거로 자체 보상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근거 없는 주장이었지만, 이를 반증해야 할 책임은 유족에게 지워졌다. 연구직이었다는 부분까지는 어떻게 입증했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떤 화학물질에 노출되었는지에 대한 입증 요구가 계속 이어졌고, 자료를 확보할 방법이 없는 유족은 결국 불승인이라는 결과를 감당해야 했다. 회사와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자료를 피해자가 확보할 수 있는 권리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최소한 대법원 판례처럼 자료를 확보할 수단이 없다는 점을 판정에서 고려하는 등 입증책임 완화 또는 전환이 필요하다.

회사가 자료를 거짓으로 작성한 사례도 있었다. 반올림이 소송을 통해 확보한 삼성반도체 작업환경보고서에 따르면 반도체가 몇 번의 세대를 거쳐 진화하는 동안 삼성반도체의 사용화학물질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고 사용량도 변하지 않았다. 물론 거짓 정보다. 아무도 볼 수 없는 정보였기에 오랫동안 데이터를 복사해서 붙여 넣었던 것이고, 아무도 문제 삼지 못했던 것이다.

두 번째 장벽은 지나치게 엄격해진 산재 인정기준이다. 반도체 직업병 문제가 사회적으로 가시화되면서 기준이 일부 완화되어 왔었지만, 최근 몇 년간 전례 없이 퇴행하고 있다. 여러 요인들은 무시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불승인 근거로 불승인하는 판정이 반복되고 있다. 일례로 최근 피해자들은 위험한 업무를 오래 했더라도 신설 라인에서 일해서 문제가 없다며 산재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기존의 산재 인정 사례들은 쉽게 무시되고 있다. 한 피해자는 2010년에 식각공정 엔지니어로 입사해 13년간 근무하다 혈액암에 걸렸다. 식각공정·혈액암·엔지니어의 직업성 암 사례는 이미 다수 존재한다. 같은 입사 연도, 같은 공정, 같은 직군, 같은 질병 등 이 피해자와 거의 동일한 조건의 인정 사례도 있었다. 이 피해자는 그보다 두 배 가까이 오래 일했고 협력업체 소속으로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되었지만 2010년 이후 입사자라는 이유로 불승인되었다. 이처럼 형평성 없는 판정을 막으려면, 협소한 의학적 과학적 인과관계가 아니라 법적 규범적 인과관계를 산재 인정의 기준으로 하겠다는 이재명 정부의 약속이 시급히 이행되어야 한다.

세 번째 장벽은 산재보험의 보호 범위에서 피해자들을 배제하는 것이다. 자녀산재법(산재보험법상 건강손상자녀)이 만들어졌음에도 여전히 많은 자녀산재 피해자들이 배제되고 있다. 여성노동자 자녀산재만 포함되어 과학적 근거가 분명한데도 남성노동자 자녀산재는 인정되지 않고 있다. 때문에 질병판정위원회에서 자녀산재를 인정받은 남성노동자는 현재 소송을 이어 가고 있다.

또한 법 시행 이전의 피해자는 사실상 배제되어 있다. 법 시행 전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법 시행 후 3년 이내에 청구한 경우 등으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어떤 조사 절차도 없이 불승인되어 역시 소송에 내몰린 피해자가 있다. 자녀산재처럼 직업연관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한 경우 뒤늦게 이를 인식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형법, 민법 등 국내법 상 소급금지원칙은 법개정으로 불이익을 받는 경우에 주로 적용하고 이익이 되는 경우에는 적용하지 않는다. 애써 만든 법에서 피해자들을 굳이 배제할 이유가 무엇인가? 더 이상 피해자들을 기약 없는 장기간의 소송으로 내몰지 말고, 자녀산재법을 개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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