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 강원문화재단 이사장
소설 속 가상의 고갯길이었던 ‘은비령’으로 인제와 양양을 잇는 실제 지명과 길을 탄생시켰던 이순원 작가가 이제 강원문화재단 이사장으로서 강원 문화예술의 새로운 길을 내기 위해 나섰다. 강릉에서 나고 자라 강원도의 정서와 아름다운 우리말을 누구보다 깊이 있게 길어 올려 온 그를 만나 강원 문화의 내일을 들었다.
■ 재단 운영과 문화예술 지원 방향은.
“강원도에는 18개 시·군이 있고 지역마다 고유한 문화와 정서가 있다. 영동과 영서가 다르고 접경지역과 폐광지역도 각기 다른 역사와 환경을 지니고 있다. 어느 한 지역에서 성공한 사업을 다른 지역이 그대로 따라 하기보다 각 지역의 특성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문화예술진흥 지원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전문예술지원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청년예술인과 어린이를 위한 예술 프로그램, 전문예술인 지원이 핵심이다. 지역 예술인일수록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 절실한 만큼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지원이 더 절실한 단체와 사람이 긍지를 느끼도록 지원할 방법을 오래 고민했다. 한정된 재원 안에서 공정성을 지키면서 예술인마다 처한 상황을 고려해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방안을 연구하겠다.”
이순원 강원문화재단 이사장의 취임식이 26일 재단 회의실에서 열렸다.
■ 예술인의 창작 환경 개선 방안은.
“청년 예술인의 창작 기회를 넓히는 한편 원로 예술인의 경험과 지혜를 지역사회와 나누는 방안도 필요하다. 가칭 ‘강원문화예술아카데미’를 만들어 각 분야 원로 예술인 10명 안팎이 명예직으로 참여하고, 학교와 도서관, 문화단체 등에서 경험과 지식을 나누는 구상을 하고 있다. 18개 시·군의 도서관과 미술관을 활용한 창작 레지던시 사업도 생각하고 있다. 지역 작가에게 3개월에서 1년 정도 집필실을 제공한다면, 지역은 공공문화시설의 활용도를 높이고 작가는 안정적인 창작 공간을 얻을 수 있다. 창작 결과물에 지역의 지원 사실을 표기한다면 지역과 예술인이 함께 성장하는 모델이 될 수 있다.”
■ 지역 문화자산을 콘텐츠로 발전시킬 방법은.
“2009년 고향 강릉에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강릉바우길을 탐사하고 개척했다. 전국에서 경쟁적으로 탐방로 사업에 뛰어들어 대부분 실패했지만 강릉바우길은 제주올레와 함께 우리나라의 양대 트레일이 됐다. 1997년 현대문학상을 받은 소설 ‘은비령’은 인제 필례약수 부근의 고갯길과 마을 지명으로 만들어졌다. 길을 걷는 것은 레저고 문화지만 사람들을 지역으로 오게 하는 것은 결국 콘텐츠다. 재단의 문화예술 지원사업도 마찬가지다. 문화예술인을 지원하는 기관과 새로운 콘텐츠로 예술작품을 생산하는 문화예술인 간 협력과 상생, 시너지 효과가 중요하다. 지역 작가와 문화예술인의 기록을 체계적으로 남겨 후대가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문화예술인의 기록은 개인의 자료를 넘어 지역의 역사와 정체성을 보여주는 문화자산이다.”
■ 임기 중 이루고 싶은 문학적 과제는.
“1980년 4월 사북민주항쟁을 한국문학사에 새로운 글탑을 세우듯 의미 있게 정리하고 싶다. 제주 4·3과 광주민주화운동은 현기영 선생이나 한강 작가 등을 통해 문학적으로 조명됐지만, 사북항쟁은 아직 문학적으로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쉽지 않은 작업이겠지만 임기 중 작품을 완성하고 싶다. 지역의 역사적 사건을 문학으로 기록하는 일은 강원 문화와 재단의 위상을 높이는 일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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