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종 논설위원
“코미디언이 국회에 들어가 정치인이 되려 했지만, 국회를 떠날 때는 정치인들이 코미디를 더 잘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4대 국회에 정주영 현대 회장이 창당한 통일국민당으로 구리에서 당선된 코미디언 이주일(본명 정주일) 씨가 국회를 떠나면서 남긴 말이다. 연예인 출신으로 정치인이 된다는 것에 대한 어려움과 기성 정치권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지적한 말이다. 코미디언 전유성 씨는 “드디어 전직 코미디언이 국회의원이 됐다. 전직 정치인이 코미디언 되는 세상도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14대 국회에는 유난히 연예인 출신 국회의원이 많이 배출됐다. 정 회장과 가까운 이주일 의원은 지역구, 최불암·강부자 씨는 전국구 의원이 됐다. 이순재 씨는 13대에 낙선한 뒤 14대에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서울 중랑갑에서 당선됐다. 15대에는 정한용, 신영균(15·16대), 신성일(16대), 18대에는 최종원, 김을동(18·19대) 씨가 국회에 입성했다.
가장 화제가 됐던 연예인은 역시 이주일 씨다.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로 유명해진 그는 의욕적으로 국회 생활을 했다. 그러나 질문을 해도 사람들이 키득거리고 진지하게 들어주질 않았다. 그는 인터뷰에서 “여기에는 나보다 더 코미디 훨씬 잘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지난 4년간 코미디 공부 많이 하고 갑니다”라며 국회를 떠났다.
지난달 29일 돌아가신 최불암 씨는 정주영 회장과의 인연 때문에 얼떨결에 국회의원이 됐다. 국민당 유세 행사에 참석해 달라고 해서 갔는데 정 회장이 단상으로 부르더니 손을 높이 올렸다. 다음 날 신문들은 그의 정치 입문 기사를 썼다. 부인 김민자 씨도 반대해 일본에 촬영이 있다는 핑계로 출국했다 돌아와 보니 전국구 명단에 들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상임위를 할 때 장관에게 질문하면서 꼭 “장관님”이라고 했다. 그러자 동료 의원이 “장관에게 존대를 하면 안 된다. 의원의 권위를 보여줘야 한다”고 충고했지만, 그는 늘 ‘님’자를 붙였다고 한다. 남을 존중해야 내가 존중받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인생철학이다. 그러나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처럼 아직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연예인 출신 정치인은 없다. 권모술수가 판치는 전쟁터 같은 정치판에서 견뎌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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