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우리가 매일 접하는 벼와 콩, 옥수수 같은 식량작물은 가뭄이나 병해충으로 스트레스를 받아도 사람처럼 말로 알려주지 못한다. 잎이 노랗게 변하거나 시들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피해가 진행된 뒤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작물은 겉으로 증상이 드러나기 전부터 미세한 빛의 신호를 통해 자신의 상태를 드러낸다.
사람의 눈이나 일반 카메라가 빨강·초록·파랑 세 색으로 보는 ‘3색 안경’이라면, 초분광 카메라는 빛을 수백 개의 촘촘한 파장으로 나눠 들여다보는 ‘빛의 돋보기’에 가깝다. 겉보기에는 같은 푸른 콩잎도 수분이나 영양 상태에 따라 저마다 고유한 ‘빛 지문’, 즉 스펙트럼을 나타낸다. 초분광 영상은 이 미세한 차이를 읽어 작물의 상태를 진단하는 기술이다.
기후변화와 노동력 부족이 심화되면서 작물을 빠르고 정밀하게 살피는 기술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는 인공위성·드론·농업로봇에 초분광 센서와 인공지능(AI)을 결합해 작물의 상태를 진단하고 생육 변화를 예측하며, 필요한 구역에만 물과 비료를 공급하는 정밀농업 기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우리 농업도 경험 중심의 관리를 데이터와 과학적 판단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
초분광 영상의 가장 큰 장점은 작물을 훼손하지 않고 육안으로 증상이 나타나기 전 이상 신호를 포착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국내에서도 가뭄과 과습, 병해충, 양분 부족 등 다양한 스트레스를 진단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예를 들어 콩이 가뭄이나 고온에 노출되면 수분 손실을 줄이기 위해 잎의 기공을 닫는다. 이때 나타나는 잎의 스펙트럼 변화를 초분광 영상으로 감지하면 겉으로 시들기 전부터 가뭄 스트레스를 알아채고 적기에 물을 공급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참깨와 들깨에서도 병이 진행되면서 나타나는 엽록소와 세포 구조의 변화를 추적하면 병징이 뚜렷해지기 전에 이상 여부를 파악해 보다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활용 범위는 재배 현장을 넘어 육종 과정으로도 넓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초분광 영상과 인공지능을 결합한 비파괴 분석 모델을 통해 참깨와 들깨 종자를 손상하지 않고 주요 유용 성분을 분석할 수 있게 됐다. 참깨의 세사민 등 리그난 성분과 들깨의 팔미트산·스테아르산 등 주요 지방산을 신속하게 분석할 수 있어, 기존 이화학적 성분 분석에 드는 시간을 줄이고 육종 과정의 효율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초분광 카메라 하나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노지에서는 환경에 따라 영상 신호가 달라질 수 있어, 현장 적용을 위해서는 충분한 데이터 축적과 정확한 분석 기술이 뒷받침돼야 한다. 초분광 영상이 작물의 미세한 이상 신호를 찾아내는 ‘눈’이라면, 인공지능은 환경 변화 속에서도 그 의미를 해석하는 ‘두뇌’가 될 수 있다. 여기에 자동 관수와 정밀 시비, 방제 장비까지 더해지면 진단 결과를 실제 처방과 정밀 농작업으로 이어갈 수 있다.
작물이 보내는 빛의 신호는 작지만 그 안에는 농사를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정보가 담겨 있다. 초분광 영상은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작물의 변화를 데이터로 읽어내는 새로운 ‘농업의 눈’이다. 이러한 기술이 현장에서 하나의 체계로 작동한다면 기후변화와 노동력 부족에 대응하면서 식량작물을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식량안보를 뒷받침하는 데이터 기반 노지 스마트농업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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