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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황현희의 눈] 반도체 호황, 우리는 왜 웃지 못할까

반도체는 웃고 있는데, 우리 마음은 왜 웃지 못할까. 요즘 한국 경제를 설명하는 가장 묘한 장면은 바로 여기에 있다. 숫자는 분명 좋아 보인다. 수출이 늘고, 공장이 다시 돌아가고, AI라는 새로운 파도가 반도체 산업을 다시...

[황현희의 눈] 반도체 호황, 우리는 왜 웃지 못할까

반도체는 웃고 있는데, 우리 마음은 왜 웃지 못할까. 요즘 한국 경제를 설명하는 가장 묘한 장면은 바로 여기에 있다. 숫자는 분명 좋아 보인다. 수출이 늘고, 공장이 다시 돌아가고, AI라는 새로운 파도가 반도체 산업을 다시 끌어올리고 있다. 실제로 3월 한국 제조업 PMI는 52.6으로 4년여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고, 3월 수출도 전년 대비 48.3% 늘어 큰 폭의 증가세를 보였다. 반도체 수출이 회복의 중심에 있다는 분석도 이어졌다. 표면만 보면 오랜만에 한국 경제에 볕이 드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다. 뉴스에서는 회복이라고 말하는데, 사람들의 표정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 경제지표는 살아난다는데 생활은 여전히 팍팍하다고 느낀다. 반도체 공장이 잘 돌아간다는데, 동네 식당 사장님 얼굴엔 아직 긴장이 남아 있다. 이 간극이 바로 지금 우리 경제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호황의 뉴스와 불안의 심리가 동시에 존재하는 시대. 숫자는 위를 향하는데 마음은 옆으로 눕는 시대. 우리는 지금 그런 경제를 살고 있다.

이유는 간단할수있다. 반도체는 한국 경제를 끌어올리는 핵심 산업이지만, 반도체의 호황이 곧바로 모든 사람의 호황으로 번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수출이 늘면 경기가 살아난다는 믿음이 비교적 단순하게 통했다. 대기업 실적이 좋아지면 협력업체가 움직이고, 고용이 늘고, 소비가 살아나며, 그 온기가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산업은 훨씬 고도화됐고, 성장은 특정 분야에 더 집중된다. AI용 고성능 반도체 수요가 늘어난다고 해서 자영업자의 매출이 즉시 오르는 건 아니다. 수출 호황은 분명 반가운 소식이지만, 그 기쁨은 너무 좁은 통로를 통해 흘러간다.

게다가 이번 반도체 호황은 순수한 낙관으로만 보기 어렵다. 지금 세계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최근 중동 전쟁이 세계 성장 둔화와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도 중동발 에너지 공급 불안에 대응해 에너지 안보 경보를 ‘경계’ 수준으로 올리고 대응에 나섰다. 반도체 수출이 좋아도 국제유가가 오르면 물류비와 생산비가 오르고, 결국 소비자 물가를 다시 자극할 수 있다. 우리는 호황의 입구에 서 있는 것 같다가도, 곧바로 불안의 복도를 마주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람들의 심리가 쉽게 풀리지 않는다. 경제는 단지 성장률이나 수출액으로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는 사실 체감의 언어다. 장을 보러 갔을 때 느끼는 가격, 주유소 전광판 앞에서 느끼는 한숨, 월세 이체일에 드는 긴장, 카드값 명세서를 넘길 때의 침묵이 모여 경제가 된다. 반도체 수출이 늘었다는 말은 반갑지만, 내 생활비가 줄지 않는다면 그 반가움은 뉴스 화면 밖으로 잘 나오지 못한다. 숫자는 국가의 성적표일 수 있지만, 체감은 개인의 일기장이다. 성적표가 좋아졌다고 해서 일기장이 곧장 밝아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한국 사회 특유의 구조적 불안도 한몫한다. 우리는 이미 여러 번 경험으로 배웠다. 수출이 잘된다고 모두가 편해지는 시대는 지나갔다는 것을. 대기업 실적이 사상 최대를 찍는 해에도 청년은 취업을 걱정했고, 직장인은 구조조정을 염려했고, 자영업자는 폐업을 고민했다. 숫자는 성장해도 분배의 감각은 자라지 못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제 경제 호황 기사 앞에서 예전만큼 쉽게 환호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 삶은 얼마나 나아지는데?”라는 질문을 먼저 던진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지금 시대의 가장 정직한 경제 감각인지도 모른다.

반도체는 분명 중요하다. 한국 경제의 허리이자, 때로는 심장이다. 특히 AI 시대에 반도체 경쟁력은 국가 경쟁력과 거의 같은 말이 되어가고 있다. 이 흐름은 부정할 수 없다. 한국이 여기서 밀리면 큰일 난다. 반대로 잘 올라타면 다시 한 번 성장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문제는 반도체가 잘된다는 사실만으로 한국 경제 전체가 자동으로 건강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심장이 강하다고 몸 전체가 건강한 것은 아니다. 혈액순환이 잘돼야 하고, 팔다리도 움직여야 하고, 위장도 버텨야 한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수출이 좋아도 내수가 얼어붙고, 물가가 불안하고, 가계가 움츠러들면 사람들은 호황을 호황으로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좋은 숫자’ 자체보다, 그 숫자를 어떻게 사회 전체의 안정감으로 연결하느냐다. 반도체 수출 호황을 자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호황이 고용으로 얼마나 이어지는지, 지역경제에 어떤 파급을 주는지, 중소 협력업체에는 어떤 기회를 만드는지, 청년들에게는 어떤 사다리를 놓는지까지 보여줘야 한다.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는 말은 결국 사람을 안심시키는 말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회복 뉴스는 종종 안심보다 거리감을 만든다. 잘되는 산업은 점점 더 첨단으로 올라가는데, 사람들의 삶은 여전히 바닥의 체온으로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더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지금 숫자를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숫자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는 것이다. 성장률이 조금 오른다고 해서 내 불안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수출이 크게 증가했다고 해서 내 노후 걱정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너무 빠르게 성장했고, 그만큼 너무 자주 흔들렸다. 외환위기, 금융위기, 부동산 급등, 물가 불안, 금리 충격을 거치며 사람들은 배웠다. 좋은 뉴스 뒤에도 언제든 나쁜 뉴스가 올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반도체가 웃고 있어도 우리 마음은 쉽게 웃지 못한다. 기쁨보다 경계가 먼저 작동한다. 박수보다 계산기가 먼저 켜진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낙관의 구호가 아니라, 신뢰의 복원일지 모른다. 반도체가 좋으면 정말 내 삶에도 언젠가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믿음. 호황이 특정 산업과 특정 기업의 실적표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 전체에 조금씩 번져갈 것이라는 기대. 경제는 결국 기대를 먹고 사는 생물이다. 기대가 무너지면 숫자가 좋아도 사람은 움츠러든다. 반대로 기대가 살아 있으면 아직 숫자가 부족해도 사람은 버틴다.

반도체 호황은 분명 반가운 신호다. 이 신호를 가볍게 볼 이유는 없다. 다만 이 좋은 신호 하나만으로 한국 경제 전체를 낙관하는 것도 성급하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더 복잡하다. 수출은 웃고, 물가는 불안하고, 산업은 앞서가고, 생활은 뒤처진다. 그래서 우리는 묻게 된다. 반도체가 웃고 있는데, 왜 내 마음은 아직 웃지 못하느냐고. 이 질문이야말로 지금 한국 경제가 반드시 대답해야 할 질문이다.

좋은 경제는 숫자가 좋은 경제가 아니라, 사람들의 얼굴이 조금 편안해지는 경제다. 호황의 기사보다 안도의 한숨이 먼저 줄어드는 경제다. 반도체가 한국 경제를 다시 일으킬 수는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를 진짜로 안심시키는 것은 결국 성장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성장이 사람들의 삶에 닿는 방식일 것이다. 지금 필요한 건 더 큰 숫자가 아니라, 더 넓게 전달되는 회복이다. 반도체가 웃는 나라를 넘어, 사람도 함께 웃는 나라. 아마 우리가 바라는 경제는 결국 그런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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