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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화장품 회사가 떡볶이·치킨을?...실리콘투의 수상한 외식업 사냥

단순한 재무적 투자를 넘어 자사가 보유한 글로벌 물류망, IT 기반의 유통 시스템, 그리고 K뷰티 소비자의 빅데이터를 외식 산업에 결합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김석집 네모파트너즈POC 대표는 “투자자 입장이라면...

화장품 회사가 떡볶이·치킨을?...실리콘투의 수상한 외식업 사냥

최근 실리콘투는 중동의 배달 중심 K푸드 브랜드인 ‘88서울’ 인수를 마무리했다. 88서울은 중동 지역에서 치킨을 비롯한 다양한 한국 음식을 배달 위주로 판매하는 외식 브랜드다. 중동 특유의 고온 기후와 문화적 특성상 실내 생활, 배달 수요가 높다는 점을 파고든 비즈니스 모델이다. 실리콘투는 이번 인수를 통해 뷰티 유통을 넘어 식품 분야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하겠다고 발표했다.

중동에서 K푸드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는 88서울. (실리콘투 제공)

이런 이종 산업 간의 결합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실리콘투는 2024년 말 영국의 외식 기업 마구로그룹의 자회사 메이드바이네이처에 100만파운드를 투자해 지분 30%를 확보한 바 있다. 마구로그룹은 영국 현지에서 K푸드 레스토랑인 ‘분식(BUNSIK)’과 ‘고기(GOGI)’ 등을 운영하며 매출 600억원대를 기록한 기업이다.

당시 실리콘투는 런던 ‘분식’ 매장 인근에 자사의 K뷰티 편집숍인 ‘모이다’ 1호점을 열었다. 현지인들이 한국식 핫도그를 먹기 위해 모이는 공간 옆에 한국 화장품 매장을 나란히 배치, 자연스레 양쪽 가게를 다 이용하게 한 것. 가설은 보기 좋게 적중했다. 조재호 마구로그룹 대표는 “K푸드를 즐기는 현지인이 자연스레 화장품 매장을 방문,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 런던의 인기 맛집 ‘분식’ 옆에 나란히 문을 열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는 ‘모이다’. (실리콘투 제공)

화장품 유통사, 왜 해외 K맛집에 꽂혔나

실리콘투가 해외 맛집에 투자하는 현실적 이유는 3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 이유는 고객 획득 비용 절감과 높은 집객 효과다. 유통업의 본질은 결국 트래픽(사용자 접속량 또는 방문객 수)을 모으는 데 있다. 온라인 쇼핑몰이든 오프라인 매장이든 고객 한 명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마케팅 비용이 발생한다. 구글이나 메타 등 글로벌 플랫폼에 광고비를 지불하고 고객의 클릭을 유도하는 방식은 비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반면 외식업, 특히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유행하고 있는 K푸드는 자발적인 집객력을 발휘한다.

소비재의 구매 주기를 비교해보면 이해가 쉽다. 화장품은 한 번 구매하면 수개월 동안 소비하는 중주기(일정 기간을 두고 반복적으로 소비하는 주기) 상품이지만, 음식은 매일 혹은 매주 소비하는 단주기(짧은 기간 내에 빈번하게 소비하는 주기) 상품이다. 현지 소비자가 K푸드를 즐기기 위해 매장을 방문하는 행위 자체가 오프라인 트래픽(사용자 접속량 또는 방문객 수)을 형성한다.

실리콘투는 대규모 광고비를 지출하는 대신 검증된 K푸드 맛집 옆에 화장품 매장을 열거나 외식 브랜드의 고객 데이터를 확보하는 방식을 택했다. 음식을 소비하러 온 고객이 자연스럽게 화장품 매장으로 유입되게 만드는 구조다. 이는 스웨덴의 가구 기업 이케아가 매장 내 식당을 운영, 고객 체류 시간을 늘리고 구매율을 높이는 공간 활용 원리와 같다.

실리콘투는 검증된 88서울처럼 K푸드 맛집 옆에 화장품 매장을 열거나 외식 브랜드의 고객 데이터를 확보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실리콘투 제공)

두 번째 이유는 물류 인프라 공유와 부동산 확보의 시너지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해외 시장에 오프라인 거점을 마련하려면 초기 자본과 시간, 그리고 높은 임대료와 같은 부동산 리스크를 수반할 수 밖에 없다. 런던의 웨스트필드나 두바이의 대형 쇼핑몰 같은 핵심 상권은 진입 장벽이 높다. 실리콘투는 현지에서 자리 잡은 마구로그룹이나 88서울과 손을 잡음으로써 이런 진입 비용을 낮출 수 있다는 계산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실리콘투가 구축한 글로벌 물류망과의 결합이다. 실리콘투는 무인운반로봇을 도입한 첨단 물류센터를 미국, 유럽, 중동 등에 구축하고 다품종 소량의 화장품을 전 세계로 직배송하는 역량을 갖췄다. 화장품의 물류망과 식품의 유통망은 겉보기엔 다르지만 최종 소비자에게 배송되는 라스트마일(상품이 최종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마지막 배송 단계)에서는 통합이 가능하다.

특히 두바이 프리존에 위치한 물류 거점을 활용하면 중동 정세의 불안 속에서도 88서울에 필요한 식자재와 포장재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 오프라인 매장의 공간을 화장품 쇼핑몰의 마이크로 풀필먼트 센터(도심 내 소규모 물류 대행 시설)로 활용하거나 식품 배달망에 화장품 샘플을 동봉하는 방식의 물리적 결합이 가능해진다.

세 번째 이유는 단일 카테고리의 한계를 극복하고 K라이프스타일 전반을 아우르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기 위함이다. 현재 K뷰티가 글로벌 시장에서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소비재 트렌드는 변동성이 크다. 화장품 유통에만 의존하는 수익 구조는 산업 사이클의 하락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화장품과 외식이라는 이질적인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면 하나의 카테고리가 부진할 때 다른 카테고리가 실적을 방어하는 상호 보완 구조가 완성된다. 소비자는 한국의 스킨케어를 바르고 한국식 치킨을 먹으며 문화를 소비한다. 실리콘투는 화장품 도매상에서 벗어나 전 세계 소비자가 한국의 라이프스타일 자체를 소비하게 만드는 생태계를 설계하고 있다.

영국 ‘모이다’는 ‘분식’과의 시너지 효과 덕에 실리콘투 영국법인의 지난해 매출이 껑충 뛰었다. (실리콘투 제공)

이런 전략은 실제 재무제표 숫자로 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실리콘투의 사업보고서와 최근 공시에 따르면 마구로그룹과 협력을 시작한 영국의 실적 변화가 두드러진다. 2025년 상반기 기준 실리콘투 영국 법인의 매출은 310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63억원 대비 391%의 성장률을 달성했다. 이는 실리콘투가 진출한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의 성장세다. 신규 사업인 영국의 K뷰티 오프라인 매장과 유통망이 안착하면서 순이익 역시 28억원을 기록하며 흑자 기조를 다졌다. 외식업이 유발한 오프라인 트래픽(사용자 접속량 또는 방문객 수)이 화장품 매출이라는 재무적 성과로 전이됐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K푸드와 K뷰티의 동반 비행은 순항?

영국 사업에서 순항 중인 실리콘투는 88서울 인수를 통해 중동 시장에서도 동일한 공식을 적용할 가능성이 높다. 중동은 고온 다습한 기후로 인해 배달 문화가 발달해 있으며 최근 K콘텐츠 인기가 치솟는 시장이다. 실리콘투는 선제적으로 두바이 물류센터에 3개월 치 이상의 화장품 재고를 확보해 둬 현지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통제하고 있다. 여기에 88서울이 가진 배달 네트워크와 주요 대형 쇼핑몰 내 매장 운영 노하우를 이식해 중동 소비자의 일상에 K라이프스타일을 침투시킨다는 복안이다.

실리콘투는 중동에서 88서울이 가진 배달 네트워크와 주요 대형 쇼핑몰 내 매장 운영 노하우를 이식해 중동 소비자의 일상에 K라이프스타일을 침투시킨다는 복안이다. (실리콘투 제공)

실리콘투의 사업 확장은 향후에도 지속될 전망이다. 업계에 따르면 실리콘투는 앞으로도 국내외에서 자생적으로 성장해 경쟁력을 입증한 한식당이나 외식 브랜드들과 지속적인 미팅을 진행할 계획이다. 단순한 재무적 투자를 넘어 자사가 보유한 글로벌 물류망, IT 기반의 유통 시스템, 그리고 K뷰티 소비자의 빅데이터를 외식 산업에 결합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김석집 네모파트너즈POC 대표는 “투자자 입장이라면 실리콘투가 외식업에서 창출하는 단기적 이윤보다, 외식업이라는 상품이 본업인 화장품 유통의 지배력을 얼마나 강화하는지 그 시너지 효과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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