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지역대학 모래 위의 건물과 같아
기초 역량 강화 위한 장기적인 투자 없이
지방소멸 문제의 해결 기대하기 어려워
김천규 충남대 기술실용화융합대학원 교수
영국 역사학자 '아놀드 J. 토인비' 말처럼 인류 문명은 도전과 응전의 반복으로 발전해 왔다.
세계 선진국들을 살펴보면 자원이 풍부하거나 살기 좋은 환경을 가진 곳보다 오히려 자원이 부족하고 혹독한 환경을 가진 곳에서 더 강한 문명을 꽃피운 경우가 많다. 이는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선행될 때 비로소 발전이 뒤따른다는 역사의 교훈이다.
또 하나 눈여겨볼 공통점이 있다. 선진도시로 자리매김한 곳에는 예외 없이 수준 높은 대학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지역의 어려운 여건을 극복하는 힘은 결국 우수한 인재에서 나오고, 그 인재는 대학을 통해 길러진다. 그렇기에 지방소멸이 국가적 과제로 떠오른 지금, 지역대학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지역을 살려야 할 지역대학도 소멸의 위기에 처해 있다.
지역대학에 역할을 기대하려면 먼저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현실은 정반대다. 현재 지역대학들은 정부주도로 등록금이 물가인상률 대비 사실상 동결된 상황에서 재정은 날로 악화되고, 생존을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갇혀 있다.
문제는 그 지원금의 배분방식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국·공립대와 사립대 구별 없이 지원금을 두고 무한 경쟁을 유도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학들은 교육혁신에 집중해야 할 역량을 지원금 확보 경쟁에 쏟아 붓고 있다. 그 결과는 아이러니하게도 지방대학 경쟁력의 전반적인 약화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말이 있다. 교육의 성과는 단기간에 나타나지 않으며 긴호흡으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동서고금의 지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당장의 단기성과를 앞세운 경쟁구도 속에 대학의 본질적 사명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대전의 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관 과학기술특성화대학은 국내외에서 높은 위상과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특정 지역대학이라기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구중심대학으로 인식되고 있다. 각 부처의 재정지원이 집중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여기서 역설이 발생한다.
해당 대학 졸업생의 상당수는 대전지역이 아닌 수도권에서 활동하는 경향을 보인다.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대학이니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문제는 지역 정주(定住)효과, 즉 지역사회에 실질적으로 정착하며 지역 발전에 기여하는 인재양성 기능은 오히려 지역소재 일반대학들이 더 크게 담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지자체의 소중한 재정지원은 단기성과 창출이 유리한 대학으로 집중되고, 졸업생이 지역에 남아 지역 발전에 기여하는 대학들은 정작지원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지자체 공무원들의 의사결정을 마냥 탓하기도 어렵다. 재정지원이 단기성과 창출과 연동되어 있는 구조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대학을 지원하는 것은 그들 입장에서 '합리적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합리적 선택들이 만들어내는 결과는 결코 합리적이지 않다.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중앙정부 차원의 정책 운영 방식이다. 교육부 소관이 아닌 국가적 연구중심대학들까지 일부 대학 재정지원 경쟁 사업에 포함되면서, 지역대학 경쟁력 강화라는 정책목표와 사업 운영방식 간의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 지역균형발전을 견인해야 할 고등교육정책 역시 단기적 성과 중심의 평가 구조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모습이다.
결과는 이미 현장에서 드러나고 있다. 모래 위에 지은 건물과 바위 위에 지은 건물은 그 견고함이 다르다. 지금 많은 지역대학은 모래 위의 건물과 같다. 부족한 재정으로 교육혁신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우수 교원의 초빙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는 전국 대학생들에게 AI 교육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지역대학이 AI 전문교수를 초빙할 여력이 있을까? 운 좋게 영입에 성공하더라도 경력을 쌓으면 수도권 대학으로 떠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악순환 속에서도 재정지원은 성과가 검증된 대학에만 집중되니 지역대학과 지역사회가 함께 무너지는 동반 소멸의 경로가 이미 시작된 셈이다.
현 정부가 지역대학 재정지원을 확대하려는 정책 방향은 적정해 보인다. 다만 정책의 방향성과 실제 집행과정 사이에는 언제나 일정한 간극이 존재한다. 그동안 단기성과 중심으로 재정지원이 이루어져 온 정책 관행이 향후 얼마나 변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일각에서는 '성과와 역량에 부합한 지원이 왜 문제인가'라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가 강화될수록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정책목표는 상대적으로 설 자리를 잃게 된다.
효율성을 기준으로 수도권 중심 국가발전전략을 설계한다면 지역소멸 문제를 논의할 필요성 자체가 없다. 지역소멸을 우려하면서도 이를 완화하기 위한 구조적 변화가 충분히 동반되지 않는다면, 정책목표와 현실 사이의 괴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는 불안정한 기반 위에 놓인 현재의 지역대학들이 보다 견고한 토대 위에 다시 설계되어질 필요가 있다.
또한 지역소멸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국가 발전을 위한 필수과제로 인식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이유로 지역대학의 기초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장기적 투자 없이 지방소멸 문제의 해결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김천규 충남대 기술실용화융합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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