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마산점 폐업 여파 딛고 양덕동에 재오픈
“단골 응원에 용기 얻어…동네 사랑방 역할할 것”
홈플러스는 지난 6월 전국 37개 점포 폐점을 결정했습니다. 폐점 점포 명단에는 창원시 마산회원구에 있는 마산점도 포함됐습니다. 이후 본 매장은 철수했고 계약 기간이 남은 입점 업체는 같은 장소에서 영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비자가 점점 발길을 끊으면서 곧 문을 닫아야 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홈플러스 마산점 한켠을 오랫동안 지킨 한 서점도 그 여파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서점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곧장 새 둥지를 텄습니다. 오프라인 서점이 자취를 감추는 요즘 대형마트가 잘 나갈 때보다 환경이 열악할 게 뻔한 동네 골목에 책방을 다시 연 이유는 무엇일까요.
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동에 새로 문을 연 ‘가고파 서점’이 자리 잡은 곳은 작은 식당들이 모인 동네 골목이다. 서점에 다가가자 하얀 간판과 밝은 내부 조명이 눈길을 끌었다. 서점이 들어오기 전까지 오랫동안 비어 있던 자리였다. 환한 조명은 건물 안팎을 밝은 기운으로 채웠다.
조병인(49) 가고파 서점 대표는 20년 동안 홈플러스 마산점에서 ‘가고파북샵’을 운영했다. 하지만 홈플러스 마산점이 폐점하면서 더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안 그래도 힘든 서점 운영을 접는 게 좋지 않을까. 조 대표 결정은 가고파북샵에서 걸어서 17분 거리에 있는 상가에 다시 서점을 여는 것이었다.
가게 이전을 준비하며 6㎏이나 빠졌다. 그래도 마트 폐업 직전까지 속을 끓이던 때를 떠올리면 마음이 훨씬 편하다. 매장을 찾아오던 사람들을 다시 마주할 수 있다는 생각만 해도 힘이 솟았다. 홈플러스 측과 대금 정산, 보증금 반환 같은 곤란한 과제는 여전히 부담이다. 그래도 지금은 새 터전을 찾는 이들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가고파 서점’ 조병인 대표가 책을 들고 서 있다. /권민주 기자
‘가고파 서점’ 조병인 대표가 책을 정리하고 있다. /권민주 기자
20년 정든 공간 떠나 새로운 둥지 틀다
“20년간 대형마트 안에서만 영업하다 보니 인근 학생이나 학부모 같은 단골 소비자만 바라보고 일했습니다. 그런데 길가로 나와 보니 방문객 70%가량이 낯선 얼굴입니다. 동네 주민분들은 주위에 서점이 있는 줄 몰랐는데 동네 분위기가 환해졌다며 반겨주세요. 20년이나 영업했으니 웬만한 마산 사람들은 서점에 한 번쯤 다녀간 줄 알았는데 제 착각이었습니다.”
대형마트 안에서 골목으로 터전을 옮기자 만나는 사람들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주변 학교 학생이나 마트에 왔다가 들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동네 주민, 인근 병원 환자, 학원에 다니는 학생 등이 서점 문을 열고 들어온다. 문제집 중심에서 벗어나 일반 단행본을 찾는 사람들도 부쩍 많아졌다.
한 지역을 상징하던 서점이 경영난을 버티지 못해 사라진다는 소식은 이제 낯설지 않다. 모든 소비가 온라인 중심으로 재편되는 큰 흐름을 서점 역시 거스를 수 없다. 그 잘 나가던 대형마트조차 한순간에 유통 경쟁에서 밀려났다. 가고파북샵 역시 대형마트 안에 있었기에 20년을 버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배경을 잃은 셈인데 조 대표 선택은 또 서점이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그 선택까지 가는 어느 지점에 아버지가 있다.
조 대표 아버지는 1977년부터 도서 도매업을 하며 지역 서점에 단행본과 잡지 등을 공급했다. 조 대표 역시 학창 시절부터 일을 도우며 자연스럽게 출판 유통을 배웠다. 그 첫 결실이 2006년 홈플러스 마산점에 문을 연 가고파북샵이었다.
조 대표가 대형마트를 창업 터전으로 삼은 배경에는 급격히 기울어가던 서점가 상황이 자리하고 있다. 창업 당시 이미 합성동 상권 서점들까지 문을 닫고 있었을 정도로 오프라인 서점 입지가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대형마트가 한창 뜨던 시절이라 입점만 하면 장사가 잘될 줄 알았습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겨우 들어갔지요. 하지만 마트에 입점했다고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창 잘나갈 때는 직원을 6명까지 뒀지만 지금은 평일 기준 저 혼자 매장을 지킵니다. 인건비를 아끼지 않고는 서점을 유지할 수 없는 구조였으니까요. 그렇게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며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애썼습니다.”
밤에 본 ‘가고파 서점’ 모습. /가고파 서점
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동 ‘가고파 서점’ 입구. /권민주 기자
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동 ‘가고파 서점’ 내부. /권민주 기자
단골 소비자 응원이 ‘원동력’ 됐다
조 대표 역시 한때 다른 업종 창업이나 취직을 고민했다. 하지만 단골들의 따뜻한 응원과 당부가 그를 다시 서점으로 이끌었다.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이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제가 성격이 외향적이다 보니 가게에 방문객들에게 말 한마디 더 건네고 소소하게 일상 이야기 주고받는 게 참 즐겁더라고요. 게다가 단골들이 동네에 서점은 꼭 하나 있어야 한다, 멀리 가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습니다. 그 마음을 두고 떠날 수 없었습니다.”
조 대표에게 서점은 책만 파는 곳이 아니었다. 가고파북샵을 운영할 때도 한 차례 리모델링까지 거치며 매장에 휴식 공간을 마련했다. 책을 사지 않아도 누구나 편히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학원 수업을 앞둔 학생들이 모여 공부를 하면서 문제집을 추천하기도 했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들도 아이가 서점을 둘러보는 사이 잠시 숨을 돌리곤 했다.
‘가고파 서점’에 탁자와 의자가 마련돼 있다. /가고파 서점
가고파 서점을 준비하면서 가장 고민이 됐던 부분이 바로 휴식 공간이었다. 이전 매장보다 면적이 절반가량 줄면서 휴게 공간이 빠지지 않았다. 매장 한 곳에 둔 탁자와 의자는 그 고민 끝에 만들어낸 공간이었다. 책을 둘 공간도 부족한데 굳이 휴식 공간을 따로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러나 조 대표는 서점을 찾은 이들과 눈을 맞출 수 있고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할 공간을 끝내 포기할 수 없었다.
문구류 진열대도 따로 마련했다. 대형마트 안에 있을 때는 마트 문구 코너나 바로 옆 생활용품 할인점이 있어 굳이 문구류까지 신경쓰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가고파 서점 주변에는 작은 무인 문구점 한 곳을 제외하면 급하게 문구용품을 구할 만한 곳이 없었다. 학생과 주민을 오래 겪은 조 대표는 그 불편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은 상권 분석 때문에 늦게까지 불을 켜둡니다. 얼마 전에 오후 10시가 넘어 술 한잔 기울인 연인이 들어와 손을 잡은 채 책을 둘러보다 가더라고요. 서점이 동네에 있었기에 만들 수 있었던 작은 추억이지요. 예전에는 서점이 ‘만남의 장소’ 역할을 했던 적도 있고요. 그때처럼 우리 서점이 마을 주민 쉼터가 됐으면 합니다. 지치고 힘든 날 무심코 찾아왔다가 책 표지도 구경하고 가게 안을 거닐며 마음 속 위안을 얻어갈 수 있는 서점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권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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