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 7주째, 최악 시나리오선 성장률 2%까지 붕괴… "글로벌 경제, 사실상 침체 진입"
에너지 가격 19% 급등·공급망 마비… 수입 원유 95% 이 해협 통과하는 한국, 복합 위기 경보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세계 성장률 3.1%로 추락… IMF "미국 리더십 한계 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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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DC의 국제통화기금(IMF) 청사. 사진=연합뉴스
중동 전쟁발 에너지 충격 앞에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이 속수무책의 한계를 드러낸 채 회의장을 떠났다.
로이터통신이 19일(현지시각)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워싱턴에서 마무리된 양 기관 춘계회의에서 글로벌 금융 수장들이 내린 결론은 냉혹했다.
"가장 중요한 결정은 이 회의장 밖에서 내려지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지난 2월 28일(현지시각) 이란을 공습한 지 7주가 지난 현재, 위기 해결의 열쇠를 쥔 미국의 리더십에 더 이상 예전과 같이 기댈 수 없다는 인식이 회의 전반에 짙게 깔렸다.
IMF, 성장률 3.1%로 낮추고 "이미 시대에 뒤진 수치"
IMF는 이번 세계경제전망(WEO) 보고서에서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분쟁이 단기에 그친다는 기준 전망에서는 에너지 가격이 19% 상승하고 2026년 세계 성장률은 3.1%로 잡았다.
에너지 공급 차질이 심화하는 비관 시나리오에서는 성장률 2.5%로, 분쟁이 내년까지 이어지는 최악의 시나리오에서는 성장률 2.0%까지 추락하고 물가 상승률은 6%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IMF가 올해 1월 전망했던 3.3%에서 0.2%포인트 낮아진 것이다. 피에르-올리비에 고린샤스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세계 경제는 약 3.3%의 안정적인 성장 궤도에 있었고 전망을 상향 조정하려 했으나 전쟁이 그 흐름을 끊어버렸다"고 밝혔다.
더욱 심각한 것은 시간이 갈수록 현실이 기준 전망을 밑돈다는 점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후 국제 유가는 20% 이상 치솟았고, 유럽 천연가스 가격은 60% 넘게 뛰었다. 이 해협은 세계 일일 원유 공급량의 약 5분의 1이 통과하는 요충지다.
국가별로는 에너지 가격 상승 부담이 누적되면서 유로존(1.3%→1.1%)과 영국(1.3%→0.8%)의 성장률 하락 폭이 컸다. 에너지 순 수출국인 미국도 중동 전쟁 영향이 일부 반영되며 2.4%에서 2.3%로 소폭 낮아졌다. 세계 물가 상승률은 에너지·식품 가격 상승 영향으로 1월 전망보다 0.6%포인트 높은 4.4%로 예상됐다.
사우디아라비아 재무장관 무함마드 알자단은 "유조선이 합리적인 보험료로 해협을 자유롭게 지나다니고 에너지 현물 가격이 실제로 내려오는 것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경기 전망이 개선됐다고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낙관론이 짧게 고개를 들었다 새로운 선박 공격 소식으로 주저앉기를 반복하는 사이, IMF와 세계은행은 가장 타격이 큰 개발도상국을 위해 최대 1500억 달러(약 220조 1700억 원)의 신규 금융 지원을 약속하는 데 그쳤다.
"미국은 더 이상 국제 질서의 사령관이 아니다"
워싱턴 싱크탱크 대서양위원회의 조시 립스키 국제경제 좌장은 이번 회의에 대해 "글로벌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은 IMF·세계은행 캠퍼스 밖, 즉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2020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2022년),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 충격에 이어 이번 중동 전쟁까지 쏟아지는 연속적인 충격이 각국에 '미국이 더 이상 국제 질서의 사령관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고 진단했다.
유럽 각국 재무장관들은 비공개 자리에서 미국이 직접 해협 재개방에 나서야 한다고 압박했다.
프랑스 재무장관 롤랑 레스퀴르는 "이 분쟁의 핵심은 호르무즈 해협이며 이것이 열려야 한다. 다만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이 주요 20개국(G20)과 IMF, 세계은행의 비료 공급 부족 공동 대응 구상을 내놨지만, 개전 7주가 지난 시점에서 봄 파종을 앞둔 북반구 농가의 당장 어려움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고린샤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전쟁의 신속한 해결, 인공지능(AI) 생산성 향상, 무역 긴장 완화는 세계 경제에 상방 요인이 될 수 있지만, 분쟁 확대나 새로운 무역 갈등이 재점화할 경우 성장세를 무너뜨리고 금융 시장을 흔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수입 원유 95% 이 해협 통과하는 한국, 에너지 복합 위기 경보
이번 사태가 한국 경제에 던지는 무게는 각별하다.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70.7%, 액화천연가스(LNG)의 20.4%가 중동에서 오는 데다 수입 원유의 95%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구조다.
국제에너지기구(IEA) 파티 비롤 사무총장은 지난 16일(현지시각)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태를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에너지 위기"라고 규정하고, "중동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한국과 일본은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입은 국가들"이라고 강조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우회 항로를 이용할 경우 해상운임이 기존보다 최대 50~80% 뛰고 통관 절차 기간도 최대 5일 늘어날 수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호르무즈 해협의 실질적 봉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보다 에너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원유·가스는 물론 석유 제품과 비료 가격의 단기 급등을 예고했다.
카타르산 헬륨 공급망이 차단될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생산 라인의 냉각 공정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 정부 비축유(117일분)에 민간 재고를 더해 200일 이상 버틸 수 있는 공급 여력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금융위원회는 필요할 경우 100조 원 이상 규모의 시장 안정화 프로그램을 가동할 계획임을 공표했다.
그러나 경제학계에서는 "가격이 비싸더라도 주요 원자재를 수급할 수 있다면 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지만 공급망이 무너지거나 AI 데이터센터 건설이 둔화된다면 성장률은 1.0% 이하로도 떨어질 위험이 있다"고 내다봤다.
아프리카개발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케빈 치카 우라마는 "지정학적 긴장이 새로운 일상이 됐고 불확실성이 정책 결정의 전제 조건이 됐다"고 말했다.
호르무즈 해협이 언제 완전히 열릴지, 그때까지 세계 경제가 얼마나 더 소진될지는 워싱턴의 회의장이 아니라 이란과 백악관이 답해야 할 질문으로 남아 있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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