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국가 최첨단 미래 산업의 중심축 도약
광주 반도체 대한민국 미래 연다 <1> 균형발전의 새 지평
수도권·영남권 중심 산업 체제
국가경제·국민 삶 심각한 불균형
토지·용수·전력 갖춘 호남 반도체
지속 가능 미래 위한 헌법적 명령
2026년 07월 26일(일) 21:30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부지로 지정된 전남광주시 광산구 광주군공항 부지 일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참여하는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가 조성될 826만㎡ 규모의 이 부지에는 메모리 팹 4기가 들어설 예정이다. <광주일보 자료사진>
“국가는 지역간의 균형있는 발전을 위하여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123조 제2항이 국가에 부여한 책무다. 단순한 선언적 문구가 아니라 국가의 지속 가능한 생존을 위한 헌법적 명령이다. <관련기사 2면>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대한민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헌법적 가치는 철저히 외면당했다.
1970년대 중화학 공업 육성부터 최근 최첨단 정보통신 산업에 이르기까지 국가가 주도하는 대규모 인프라 투자와 산업단지 조성은 철저하게 수도권과 영남권에 집중됐다.
광주시와 전남도를 비롯한 호남 지역은 국가 핵심 산업 생태계에서 번번이 소외되는 뼈아픈 역사를 감내해야만 했다. 수도권 집중화 등 국토의 심각한 불균형도 심화했다.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글로벌 패권 경쟁의 핵심으로 떠오른 반도체 산업은 과거와 같은 특정 지역 중심의 자원 집중 방식으로는 더 이상 버텨낼 수 없는 물리적 한계에 직면했다.
천문학적인 전력과 막대한 용수, 광활한 부지를 필요로 하는 현대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의 특성상,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른 수도권에 모든 역량을 쏟아붓는 것은 국가 경제 전체를 볼모로 잡는 위험천만한 도박에 가깝다.
정부가 전남광주시에 첨단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고 밝힌 것은 건국 이래 최초로 호남이 국가 최첨단 미래 산업의 중심축으로 도약할 수 있는 역사적 전환점을 의미한다.
헌법이 특정 기업이나 산업입지를 직접 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가 기간산업과 대규모 재정·전력·용수 인프라를 어디에 배치할 것인지는 균형발전 의무와 분리해 판단할 수 없다. 기업과 인구, 대학과 연구기관이 수도권으로만 몰리는 구조를 방치하면서 균형발전을 외치는 것은 헌법의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앰코테크놀로지코리아가 참여하는 896조원 규모 호남권 반도체 투자계획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삼성전자는 호남 첨단산업 분야에 425조원을 투자해 광주에 메모리 반도체 팹(생산공장) 2기와 해남 솔라시도 국가 AI 데이터센터 등을 구축할 계획이다.
SK하이닉스도 반도체 생산시설과 1GW급 AI 데이터센터를 결합한 서남권 산업생태계를 조성하고, 앰코는 광주 첨단 패키징 생산시설에 1조원 이상을 추가 투자하는 구상을 내놨다.
전문가들은 이번 투자는 대기업 공장 몇 곳을 지방에 세우는 차원을 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한민국 성장의 무게중심을 수도권에서 호남으로 넓히는 국가 산업 재배치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국내 반도체 산업은 경기 남부를 중심으로 성장했다. 설계와 연구개발, 생산, 소재·부품·장비, 인력과 금융까지 수도권에 집적됐다.
기업 입장에서는 협력업체와 숙련인력을 가까운 곳에서 확보할 수 있었지만, 그 결과 지방 대학을 졸업한 청년까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구조가 굳어졌다.
광주·전남에서는 지난 20년간 청년 22만명이 일자리를 찾아 지역을 떠난 것으로 분석됐다. 광주 9만7000명, 전남 12만5000명이다. 청년이 떠나면 단순히 주민등록 인구만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대학의 입학자원과 기업의 인력풀이 감소하고, 소비와 세수가 줄면서 기업이 다시 투자를 꺼리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는 이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역사적인 기회다.
전남광주시는 면적 1만2864㎢, 인구 317만명, 지역내총생산 159조원 규모의 초광역 경제권이다. 광주지역의 AI·광산업·자동차·반도체 후공정 역량과 전남의 재생에너지·산업용지·소재산업을 결합하면 수도권과 다른 호남형 첨단산업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는 수도권의 몫을 빼앗아 지방에 나눠주는 사업이 아니다.
수도권에 의존했던 대한민국 성장체제에 새로운 축을 세우고, 국민이 어느 지역에 살더라도 양질의 일자리와 교육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국가 산업지도를 다시 짜는 일이다. 896조원의 투자계획이 공장 부지 안에 머물지 않고 청년과 기업, 대학과 지역사회로 흘러갈 때 헌법이 명한 ‘지역 간 균형발전’도 선언을 넘어 현실이 된다.
/정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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