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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현장에서] 사라져가는 전통문화, 묵묵히 지키는 경주 사람들

20일. 음력 5월5일 단오. 경주 교촌마을 홍보관 앞마당에 들어서자 먹 냄새가 먼저 코끝을 스쳤다. 천막 아래에서는 누군가 부채 위에 매화를 그리고 있었고, 또 어떤 이는 부채에 한자 사자성어를 붓으로 쓰고 있었다.

[현장에서] 사라져가는 전통문화, 묵묵히 지키는 경주 사람들

경주 교촌마을에서 20일 단오날에 진행된 행사에 참여한 관광객들이 체험한 탁본을 들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강시일 기자

20일. 음력 5월5일 단오. 경주 교촌마을 홍보관 앞마당에 들어서자 먹 냄새가 먼저 코끝을 스쳤다. 천막 아래에서는 누군가 부채 위에 매화를 그리고 있었고, 또 어떤 이는 부채에 한자 사자성어를 붓으로 쓰고 있었다. 옆자리에서는 검은 먹이 한지 위로 스며들며 신라 비천상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부스 옆 마당에서는 어린아이들이 투호살을 던지며 깔깔 웃었고, 외국인 관광객들도 창포물에 머리를 감아보며 연신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천년고도 경주에서 잊혀져 가는 전통문화를 되살리기 위한 작은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경주문화축제위원회가 단오를 맞아 마련한 전통문화 체험행사 현장이다.

현장에선 화려한 무대도, 유명 연예인도 없었다. 대신 자신의 시간을 내어 봉사에 나선 예술인과 시민들이 있었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비천상 탁본 체험이었다. 참가자들은 한지 위에 먹을 입히며 신라 예술의 상징인 비천상을 한 장 한 장 새겨냈다. 얼핏 단순한 작업처럼 보였지만 손끝의 힘 조절에 따라 문양이 달라지는 섬세한 작업이었다.

부채에 매화 그리기, 탁본, 사자성어 쓰기 등의 체험행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최영조 경주예총 회장이 매화를 그려주고 있다. 강시일 기자

한 참가자는 “문화재를 눈으로만 보는 줄 알았는데 직접 만져보고 찍어보니 신라 사람들과 조금 가까워진 느낌”이라며 먹을 묻힌 천묶음으로 한지 위를 부지런히 찍어댔다.

옆자리에서는 최영조 경주예총 회장이 부채에 매화를 그리고 있었다. 몇 번의 붓질만으로 하얀 부채 위에 매화 한 그루가 피어났다. 그는 완성된 부채에 낙관을 찍어 관광객들에게 선물했다. 또 최병섭 수필가는 ‘단오청풍’ 등의 글귀를 힘찬 붓글씨로 써내려가며 전통 서예의 멋을 선보였다.

한 외국인 부부는 매화가 그려진 부채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부채를 펼쳐 보이며 연신 뷰티풀을 외치는 모습에서 문화는 언어를 넘어 사람을 이어주는 힘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했다.

탁본 체험행사를 지원하고 있는 공성규(왼쪽) 경주문화축제위원회 위원장. 강시일 기자

아이들이 가장 좋아한 프로그램은 단연 투호 체험이었다. 스마트폰 게임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투호는 낯선 놀이였다. 그러나 화살이 항아리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환호성이 터졌다. 부모들은 아이들과 함께 투호살을 던지며 어느새 어린 시절 놀이판으로 돌아간 듯한 표정을 지었다.

단오는 음력 5월5일을 맞아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그네뛰기와 씨름, 투호놀이 등을 즐기며 액운을 물리치고 건강을 기원하던 우리 민족의 대표 세시풍속이다. 하지만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을 거치면서 대부분 사라졌고, 일부 지역에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이날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손길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다.

공성규 경주문화축제위원회 위원장은 “과거가 있어 오늘이 있다면 우리를 존재하게 한 선조들의 역사문화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신라 천년의 도시 경주에서 전통민속을 지키고 가꾸어 가는 일은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어린이들이 투호 체험행사를 즐기고 있다. 강시일 기자

경주문화축제위원회는 단오제뿐 아니라 정월대보름 축제, 신라문화제 화평서제, 월명재 등 잊혀져 가는 전통행사를 해마다 이어오고 있다. 모두 수익과는 거리가 먼 행사들이다. 회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봉사정신이 아니면 유지하기 어려운 사업들이다. 이날 단오행사는 보조금 없이 순수 회원들의 참여로 진행된 행사다. 지자체의 적극적인 관심이 더 넉넉한 민속행사로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가 남았다.

행사가 끝날 무렵, 천막 아래에는 먹물이 묻은 손과 웃음소리만 남았다. 누군가는 비천상 탁본을 들고 돌아갔고, 누군가는 매화가 그려진 부채를 품에 안았다. 아이들은 투호놀이를 하며 뛰어다녔고, 외국인 관광객들은 창포물 체험을 추억으로 담아갔다.

거창한 문화유산은 때로 박물관 안에 보관된다. 그러나 살아 있는 전통문화는 사람들의 손끝과 마음속에서 이어진다. 교촌마을의 작은 천막 아래에서 만난 사람들은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전통문화를 이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 모습은 천년고도 경주가 왜 여전히 살아 있는 역사문화도시인지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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