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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현실에 환멸' 中청년들 마오쩌둥에 향수

공산주의 혁명을 통해 신중국을 건설한 마오쩌둥 전 국가주석 사망 50주기를 맞은 9일 마오의 고향 후난성 사오산에는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공산당과 중앙정부 차원의 대규모 추모 행사는 열리지 않았다. 중국은 당·국가 지도자에 대한 기념행사를 서거일이 아닌 탄생일에 개최한다.

마오쩌둥 사망 50주년을 하루 앞둔 8일 중국 후난성 사오산의 마오쩌둥광장에서 마오의 초상화를 든 사람들이 행진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공산주의 혁명을 통해 신중국을 건설한 마오쩌둥 전 국가주석 사망 50주기를 맞은 9일 마오의 고향 후난성 사오산에는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공산당과 중앙정부 차원의 대규모 추모 행사는 열리지 않았다. 중국은 당·국가 지도자에 대한 기념행사를 서거일이 아닌 탄생일에 개최한다.

중국 지무신문 등에 따르면 이날 이른 새벽부터 사오산의 거대한 마오 동상에는 추모객들이 줄을 지어 찾아와 헌화했다.  베이징 천안문광장에 있는 마오주석기념당은 평소 오전 8시부터 낮 12시까지인 운영시간을 이날은 오후 2시부터 5시까지로 연장했다.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는 이곳은 15일까지 예약이 모두 완료됐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이날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마오는 현대 중국의 위대한 애국자이자 민족영웅”이며 “중국 인민을 이끌어 자신의 운명과 국가의 면모를 철저하게 바꾼 한 세대의 위인”이라고 칭송했다. 중국중앙TV(CCTV)도 “50년 전 오늘 마오 동지가 서거했다”면서 그의 생애를 소개하고 “위인을 추모하며 중국은 전진한다”고 강조했다.

마오쩌둥 사망 50주년인 9일 중국 후난성 사오산의 마오쩌둥광장 마오 동상 앞에 추모객들이 바친 화환들이 놓여 있다. AFP연합뉴스

마오는 1976년 9월9일 82세를 일기로 숨졌다. 병력과 화력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한 장제스의 국민당군과 일본군을 모두 물리치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웠지만, 1950년대 대기근을 초래한 대약진운동과 60~70년대 문화대혁명을 통해 중국 현대사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중국 정부는 대약진운동으로 약 1500만명이 사망했다고 밝혔지만, 학자들은 사망자를 최고 4000만명으로 추산한다. 문화대혁명 때는 지식인과 당 간부들이 ‘계급의 적’ ‘주자파’ ‘반동우파’ 등으로 몰려 죽음에 이르는 등 박해를 받았다. 산둥성 취푸의 공자묘 등 전통문화유산도 대거 파괴됐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최근 중국의 젊은 세대가 마오를 삶의 멘토로 재발견하고 있다”면서 “마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젊은이들이 오늘날의 중국에 점점 더 환멸을 느끼고 자신의 열망을 이룰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가오모보 호주 애들레이드대 교수는 “마오의 계급투쟁과 갈등에 대한 이론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면서 “엄청난 압박감, 빈부격차, 부족한 고용기회에 직면한 젊은이들이 그 이론에 대한 설명을 찾고 위안을 얻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들은 마오가 일으킨 문화대혁명의 폭력성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SCMP는 “젊은이들이 마오쩌둥에 대해 불완전한 시각을 갖는 이유 중 하나는 검열 때문”이라며 “중국 당국은 마오의 유산에 대한 공식적인 평가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누구든 가차 없이 탄압할 준비가 돼 있고 정부는 마오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사람들을 검열한다”고 지적했다.

AFP통신도 중국에서 마오가 내세웠던 평등주의적 이상에 대한 향수가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경기침체와 불평등, 치열한 취업 경쟁에 지친 청년층 일부가 마오 시대를 이상화하는 가운데 마오의 과오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는 제한돼 있다.

케리 브라운 런던 라우중국연구소장은 “요즘 문화대혁명이 돈과 물질을 끝없이 추구하는 게 아니라 이상에 의해 불타올랐던 이상주의 시대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며 “이는 물론 완전히 꾸며낸 이야기”라고 꼬집었다.

로이터통신은 “공산당은 문화대혁명을 마오에게 주된 책임이 있는 중대한 과오라고 규정했지만, 여전히 그의 공적이 과오보다 크다고 평가하며 그를 숭앙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이후 권력 집중과 개인적 권위 강화, 이념적 통일과 엄격한 당 기율 강조 등 마오 시대를 연상시키는 요소가 중국 정치에서 다시 강화되고 있다”고 짚었다.

영국 런던 킹스칼리지의 케리 브라운 교수는 “마오주의의 이미지와 카리스마, 매우 특정한 언어와 상징은 여전히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며 시 주석이 강한 민족주의와 대중주의를 통해 이 가운데 일부를 되살렸다고 로이터에 말했다.

베이징=송세영 특파원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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