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대법관 인선
靑 “일방적 제청은 인정 못해”
曺 “대법원장 권한 무력화 조치”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문제를 둘러싼 청와대와 대법원의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재명 대통령의 대법관 재제청 요구를 공식 거부하면서 국회와 법조계 안팎에서는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 인선의 장기 공백 사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앞서 조 대법원장은 지난 22일 “재제청 요청 관련 문서에 구체적인 사유와 헌법적 근거가 적혀 있지 않다”며 정면 반박하는 입장을 냈다. 지난 1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후보 4명을 추천한 이후 관행이었던 사전에 사전 조율이 무산되자 조 대법원장은 손봉기 부장판사를 서면 제청했다. 이에 청와대가 실질적 협의 없는 일방적 제청이라며 반려 조치를 내렸으나 조 대법원장이 이에 맞서며 정면충돌 양상이 형성된 것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사법부를 향해 강도 높은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스스로 자기 목을 겨누는 칼을 뽑았다”며 강하게 비판했고, 박성준 수석대변인 역시 “대통령 앞에서는 웃고 뒤에서는 뒤통수를 치는 모습”이라며 사퇴 압박의 수위를 높였다. 민주당은 오는 2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긴급 현안질의를 통해 재제청 거부 경위와 후보자 사퇴 의사 타진 의혹 등을 집중 추궁한다는 방침이다.
반면 국민의힘과 야권은 헌법상 독립된 대법관 제청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여권을 지적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삼권분립과 헌법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대법원장을 탄핵하려 한다면 오히려 정권이 탄핵받아야 할 것”이라며 사법부 길들이기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양측의 대립이 격화되는 가운데 근본적인 원인은 헌법에 명시된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에 대한 해석 차이에 있다. 청와대는 헌법기관 간 사전 협의 없는 일방적 제청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인 반면, 대법원은 명확한 법률적 근거 없는 재제청 요구는 대법원장의 독자적 권한을 무력화하는 조치라고 맞서고 있다.
이처럼 권한과 명분을 둘러싼 정치적·법리적 셈법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이번 갈등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풀어질지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맞춰 대법원장 탄핵 소추까지 거론되지만 정치적 부담과 헌법재판소 인용 가능성을 고려해 신중을 기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조 대법원장 역시 기존 후보군 유지나 추천위 재구성 등 카드 간의 실리를 따져야 하는 난제에 직면해 있다.
결국 해법은 헌법 정신에 기반한 상호 존중과 정밀한 정치적 타협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대법관 1인당 연간 수천 건의 사건을 처리하는 현실에서 200일 넘게 이어지는 공백의 피해는 온전히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당하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여야와 사법부가 명분 싸움을 내려놓고 인선 절차를 정상화하기 위한 실질적 대화 테이블에 앉아야 할 시점이다.
김진오기자 kimj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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