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비전 판고 R&D 센터. 사진=한화비전
[THE Biz(더비즈)=천성윤 기자] 한화비전이 최근 실적이 부진한 한화세미텍에 500억원을 출자 하기로 결정하며 보릿고개를 힘들게 넘고 있다. 한화세미텍은 메모리사의 HBM4(6세대) 공급이 본격화 되는 때를 노려 어려움을 탈출한다는 계획이다.
한화세미텍은 업계 1강 기업인 한미반도체에 특허 소송까지 제기하는 등 판 흔들기를 시도하며 반도체 장비 시장 경쟁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4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한화비전은 한화세미텍의 주주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500억원을 출자한다.
이에 따라 한화비전의 한화세미텍 출자액은 총 4330억2100만원으로 늘어났다. 이번 출자는 한화세미텍이 500억원에 해당하는 보통주 31만3030주를 발행하고, 이를 한화비전이 전량 인수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한화비전이 이같은 긴급 수혈에 나선 이유는 한화세미텍의 시장 지위가 여전히 불안하기 때문이다.
올해 1분기 한화세미텍은 매출 831억원 영업손실 137억원을 기록했는데, 직전 분기보다 매출은 38.8% 감소했고, 영업이익도 적자로 전환해 부진했다. 기술개발이 시급한 가운데 모회사가 자금을 투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화세미텍이 역점을 두고 있는 열압착장비(TC본더)는 고대역폭메모리(HBM) 필수 장비다. HBM은 메모리를 적층해 만드는데, 이 미세한 접합에 TC본더가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 TC본더 시장 세계 1위는 한미반도체로, 한화세미텍은 후발주자로 시장에 진입했다. 지난해에는 SK하이닉스가 한화세미텍에 TC본더 발주를 넣는 등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한화세미텍의 앙숙관계인 한미반도체가 SK하이닉스 측에 반발하며 잡음이 나오기도 했다.
한화세미텍은 시장 진입에는 성공했지만, 하반기부터 발주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올 1분기 실적 하락도 수주 공백이 가장 컸다. 다만 한화세미텍의 기술에 문제가 있다기 보다는 HBM3E(5세대)가 HBM4로 넘어가면서 고객사가 신규 투자를 주저했기 때문인 것이 컸다.
한화세미텍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HBM4 물량을 폭발적으로 늘리는 시점을 노리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는 업계 유일하게 HBM4 납품을 시작했지만, TC본더 장비는 주로 계열사인 세메스 제품이나 일본제를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SK하이닉스의 발주 재개가 요원하다.
남채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1분기부터 장비 발주가 재개됨에 따라 2분기부터 TC본더 매출은 회복되며 흑자 전환이 가능할 것”이라며 “HBM4 양산이 하반기부터 이뤄짐을 감안하면 연초 예상했던 70대 규모의 발주는 이뤄질 전망”이라고 예상했다.
인천 서구 한미반도체 4공장 전경. 사진=한미반도체
다만 한미반도체의 기술력과 시장 지배력이 여전히 공고해 한화세미텍은 판을 흔드는 가운데 차근히 기술력을 입증하는 전략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한미반도체는 지난해 기준 TC본더 글로벌 점유율이 71%에 달했고, HBM3E 12단 등 일부 세부 시장에서는 무려 90% 이상을 차지했다. 사실상 독점에 가까운 1강 체제인 셈이다. 한미반도체는 지난해 매출 5767억원, 영업이익 2514억원을 기록해,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러한 구도에서 한화세미텍은 한미반도체를 견제하기 위해 특허침해 소송도 제기했다. 안그래도 좋지 않았던 양사의 관계가 더욱 험악해며 경쟁이 격화되는 분위기다.
한미반도체는 한화세미텍의 소송에 대해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은 원조 기술의 정당한 가치를 훼손하는 시도”라며 “특히 원조 기술력을 가진 선도기업을 향한 후발주자의 근거 없는 법적 공세가 업계의 기술 혁신 생태계를 저해할 수 있다는 점을 강하게 우려한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AI 초호황기가 도래했으나 한화세미텍은 아직 파도를 타지 못했다”며 “한미반도체가 업계 표준 수준의 기술력을 갖고 있어, 한화세미텍은 차세대 하이브리드 본더 등 새로운 분야에서 기술을 입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화 3남인 김동선 전 한화그룹 부사장은 지난달 주요 직책에서 물러나고, 신설 예정 법인인 테크·라이프 지주사 ‘한화머시너리앤서비스홀딩스’ 츌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새 지주사의 테크 부문은 한화비전이 앞장설 것으로 보여 한화세미텍이 오너가의 집중적 관리하에 놓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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