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잠출 울산역사연구소 사무국장
1977년 1월 3일. 울산 앞바다 5마일 해상에서 귀신고래 두 마리가 남쪽으로 내려갔다. 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한반도 연안에서 확인된 귀신고래의 마지막 모습으로 기록됐다. 반구대 암각화에는 귀신고래와 배, 작살이 새겨져 있다. 귀신고래는 울산 앞바다의 오랜 방문자이자 우리 민족과 오랫동안 함께해 온 해양생물이었다.
귀신고래(회색고래)는 영어로 gray whale(grey whale)로 표기한다. 쇠고래로 쓰는 것은 일본식 한자명이다. 포경선이 추격하면 신출귀몰하게 사라지는 '바다의 신비한 영물'로 알려졌다. 귀신고래는 북태평양에만 분포하며, 종류는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서부계군과 미국 연안에서 관찰된 동부계군으로 나뉜다.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었다.
울산 사람에게 장생포는 '고래의 기억'이 겹겹이 쌓인 장소다. 특히 귀신고래는 장생포를 떠올리게 하는 상징적인 존재다. 귀신고래와 관련해 오래전부터 익숙하게 써 온 이름이 있다. '한국계 귀신고래'라는 명칭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한국계 귀신고래'라는 표현이 마치 정식 학명이나 오래된 전통 명칭으로 회자되어 왔다. 이름만 들으면 한국 바다에만 따로 존재하는 특별한 계통으로 느껴지고 지역의 자부심을 자극하지만 향토사는 자부심만으로 쓸 수 없다. 객관적인 사실을 먼저 확인하고, 그 위에 자긍심을 세워야 한다.
미국 자연사박물관 사이트에 공개된 로이 채프먼 앤드류스의 논문을 다시 읽었다. 그는 1912년 1월에서 2월 사이 약 7주 동안 한국과 일본 연안에서 포경 관련 조사를 벌였다. 당시 장생포는 이미 국제적인 포경 기지였다. 일본의 동양포경회사가 있었고, 노르웨이인 포수들이 활동했으며, 미국인 과학자가 찾아와 조사를 벌였다.
Gray whales가 그라나이트 스테이션을 지나 남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출처 NOAA fisheries). 김잠출 제공
그는 50여 마리의 귀신고래를 대상으로 남하 및 북상 시기와 가족생활, 생활 습성과 몸체와 색깔 등 외부 형태적 특징, 암수의 차이와 천적 범고래의 공격성, 먹이 등을 면밀히 연구했다. 1914년 발표한 'The California Gray Whale'에 모든 것을 기술했다. 그는 귀신고래를 별개의 '한국계'로 명명한 적이 없다. 논문에 한국, 한국 해안, 부산, 울산, 장생포 같은 지명이 반복 등장하지만, 결론은 한국해역의 귀신고래가 따로 독립된 종이 아니라 '캘리포니아 회색고래'와 같은 종이란 결론이었다. 오늘날 분류학도 이를 받아들여 모두 Gray Whale (Eschrichtius robustus)로 분류한다. 'Korean Gray Whale'이라는 정식 분류나 'Korean stock'이라는 독립 계통을 제시하지 않았다. 앤드류스의 논문에 최초로 '한국계 귀신고래'라 밝혔다거나 해양생물 학명에 KOREA가 들어간 유일한 사례라는 부추김은 사실(事實 또는 史實)이 아니다. 훗날에 창작되고 덧입혀진 국뽕식 픽션이었다.
허영란 교수는 2023년 논문에서 이런 작명이 1980년대 이후 형성된 '민족적이고 낭만적인 서사'에서 비롯된 것이라 했다. 멸종 위기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절박함, 지역의 역사적 상징을 되살리려는 마음, 우리 고장의 정체성을 찾고자 했던 열망이 겹치면서 '한국계 귀신고래'라는 표현을 만든 것이다. 또 과거 새끼를 거느린 귀신고래가 미역을 먹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들이 출산 후 미역국 먹는 것을 배웠다는 설 역시 사실과 거리가 멀다. 이는 동해안의 대형 해조류 사이에 많이 서식하는 소형 갑각류 곤쟁이를 걸러 먹으면서 해조류(Kelp)도 함께 귀신고래 입으로 딸려 들어가 내장 속에 액체형상으로 녹아 있는 모습을 보고 오인한 것이라 한다.
향토사는 지역사를 신화로 만드는 일이 아니다. 장생포와 귀신고래의 역사는 굳이 과장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크고 깊다. 지역의 자긍심은 필요하지만 사실 위에 세워질 때 오래간다. 과장된 신화는 잠시 관심을 끌 수는 있어도, 검증 앞에 오래 버티지 못한다. 역사는 과장을 덧붙일 때가 아니라 사실을 깊이 들여다볼 때 더욱 빛난다. 이 점은 장생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울산의 역사 연구 전반에 던지는 질문이다. 사료를 왜곡하고 분칠하지 않는 용기, 불편한 사실도 외면하지 않는 성실함, 그것이 지역사를 지키는 가장 든든한 토대이자 출발점이다.
김잠출 울산역사연구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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