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의 유일한 ‘4할 타자’인 백인천 전 감독이 15일 별세했다. 향년 83세.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에서 23년간 선수로 활약한 그는 1982년 프로야구 원년 MBC 청룡에서 타율 0.412를 기록했다. 4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은 한국 프로야구 유일의 4할 타율 기록이다.
백 전 감독은 14일 오전 충남 천안 자택에서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옮겨졌다. 심폐소생술 뒤 혈압과 맥박을 회복했지만, 뇌출혈로 위중한 상태가 이어졌고, 평소 정기 치료를 받던 단국대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받다가 숨졌다.
1942년 중국 장쑤성 우시에서 태어난 백 전 감독은 6·25전쟁 때 월남해 성동중 재학 시절 야구를 시작해 경동중·고에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도 활동할 만큼 탄탄한 하체를 갖췄고 타격 재능이 뛰어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1961년 실업 야구 농협에 입단한 그는 이듬해 일본프로야구 도에이 플라이어스에 입단했다. 이후 다이헤이요 라이온스와 롯데 오리온스, 긴테쓰 버펄로스 등을 거치며 1981년까지 일본에서 19시즌을 뛰며 통산 1969경기에서 타율 0.278, 1831안타, 209홈런을 기록했다. 1975년에는 다이헤이요 라이온스(현 세이부 라이온스) 소속으로 타율 0.319를 기록해 퍼시픽리그 타격왕에 오르기도 했다. 1982년 한국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귀국해 MBC 청룡의 감독 겸 선수로 뛰었다. 이후 삼미 슈퍼스타즈에서 1984년까지 뛴 뒤 한일 통산 23년간의 선수 생활을 마쳤다.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 변신했다. 1990년 MBC 청룡을 인수해 출범한 LG 트윈스의 초대 감독을 맡았다. ‘혼(魂)의 야구’를 앞세운 그는 창단 첫해 LG를 정규시즌 1위에 이어 한국시리즈 정상으로 이끌었다. 이후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에서도 지휘봉을 들었다.
백 전 감독은 ‘국민 타자’ 이승엽 전 두산 베어스 감독의 스승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1995년 삼성 사령탑에 부임한 그는 프로에 갓 데뷔한 이승엽에게 “한국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고 일본프로야구에도 진출해야 한다”며 더 큰 목표를 심어줬다. 일본에서 타격 인스트럭터까지 초빙해 이승엽의 타격 자세를 교정했고, 이 과정에서 이승엽의 상징과 같았던 ‘학다리 타법’이 만들어졌다.
이승엽은 1997년 32홈런으로 첫 홈런왕에 오른 뒤 한국을 대표하는 거포로 성장했고, 2003년 시즌을 마치고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했다. 현재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 1군 타격 코치로 활동하는 이승엽은 이날 자신의 SNS에 “현실적인 목표만 보던 제가 더 큰 꿈을 꾸고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신 소중한 분”이라며 “감독님께 배운 것들과 심어주신 자신감은 평생 잊지 않겠다”고 추모했다.
백 전 감독은 정신력과 투쟁심을 중시하는 지도자로 통했다. 좌우명도 ‘스스로 노력하는 일을 사랑해야 고통을 이겨내고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의 ‘노력자애(努力自愛)’였다. 삼성 감독 시절 처음 뇌경색을 겪은 뒤 여러 차례 같은 증상으로 쓰러지는 등 말년에는 건강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SNS를 통해 “선수로서뿐 아니라 감독으로서도 오랜 시간 후배들을 이끌며 한국 프로야구 발전에 힘을 보탰다”며 “한국 프로야구의 전설 고 백인천 감독님의 별세 소식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고인의 생전 사진과 ‘노력자애’라는 좌우명을 공개하며 명복을 빌었다. LG 트윈스는 “1990년 LG 트윈스의 창단 첫 우승을 이끈 백인천 전 감독의 노고와 열정을 잊지 않겠다”고 애도했다. KBO는 한국 야구 발전에 기여한 고인의 공적을 기려 역대 두 번째 ‘KBO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17일 발인을 엄수한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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