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22년 인천 영종도에 위치한 BMW 드라이빙 센터에서 올리버 집세BMW CEO와 만나 배터리 및 전장 분야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 제공=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이 직접 점찍어 9조4000억원(당시 80억달러)을 투자했던 기업 '하만'이 10년 새 삼성전자의 안정적 캐시카우로 완벽히 안착했다. 하만은 이 회장이 지난 2016년 등기이사에 오른 뒤 처음으로 단행한 대형 인수합병(M&A)으로, 한국 기업이 해외 기업을 인수한 사례 중 역대 최대 규모로 꼽힌다. 인수 직후에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으로 시너지 효과가 저조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현재 전장과 오디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알짜 사업부문으로 대반전에 성공했다.
10년 새 '캐시카우'된 하만…전장이 효자
2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하만의 지난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15조7833억원, 1조5311억원으로 역대 최대 수준을 달성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액은 11% 늘었고, 영업이익은 3년 연속 1조원대를 이어가며 삼성전자의 '캐시카우'로 완전히 자리매김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 등에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으며 안정적 수익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다.
하만의 실적에 대해 삼성전자는 "유럽 시장을 중심으로 디지털 콕핏과 카오디오 등 전장 제품 공급이 확대된 덕분"이라면서 "자동차 전장 부문은 주요 완성차 고객사를 중심으로 수주 확대가 이어졌고, 오디오 부문은 연말 성수기에 맞춰 포터블과 완전무선이어폰(TWS) 신제품을 출시하며 매출 증가에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인수 직후만 해도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았던 하만은 10년 사이 삼성전자 안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는 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대형 M&A의 성패를 둘러싼 우려를 털어내고 전장과 오디오를 양축으로 실적 기여도를 키우며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재평가받는 분위기다. 앞서 삼성전자는 2016년 11월 하만 인수를 발표하고 이듬해 3월 인수 작업을 완료했다. 인수가는 9조4000억원으로 당시까지 한국 기업의 외국 기업에 대한 M&A 중 역대 최대 규모였다.
삼성 하만 전장 솔루션. / 사진 제공=삼성전자
당시 뉴욕타임스는 "삼성의 하만 인수는 완전히 다른 모바일 사업 분야로의 야심 찬 진출"이라고 평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도 "삼성의 이번 인수 협상은 한때 곤경을 겪던 하드웨어 제조업체가 전도유망한 소프트웨어 회사로 탈바꿈하는 기념비적인 것"이라며 "이번 협상으로 스마트폰 제조업체인 삼성은 자동차 기술 분야의 메이저 플레이어가 됐다"고 분석했다.
1956년 미국에서 설립된 하만은 소비자용 스피커와 차량용 오디오를 파는 '사운드 명가'였다. 그러나 삼성전자 인수 이후엔 디지털 콕핏(디지털화된 자동차 내부 운전 공간), 인포테인먼트 등 전장 사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하만의 수익성이 크게 늘어난 것도 기존 오디오사업의 견조한 성장과 함께 전장사업이 본궤도에 오른 영향이 컸다.
실제 지난해 하만의 매출액 가운데 전장 관련 사업의 비중은 65~70%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삼성 하만은 오디오 분야에서 △소니 △보스 등 경쟁사를 압도하는 명가로 손꼽힐 뿐 아니라 전장(매출 약 10조~11조원 추정) 분야에서도 세계 40위권의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이재용 선구안 증명…"대형 M&A 모범사례로"
하만의 성장은 이재용 회장에게 더욱 특별하다. 하만은 이재용 회장이 지난 2016년 9월 등기이사에 오른 뒤 처음으로 진행한 첫 M&A였기 때문이다. 그는 '삼성의 넥스트(Next) 성장 동력'으로 전장을 점찍고 하만 인수라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이 회장은 실용주의적인 오너 경영인으로 가장 자신있고 가능성 있는 사업에만 투자한다는 원칙을 따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장사업에 거액을 베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삼성전자는 전장 사업에서 세계 제패를 꿈꿀 수 있는 저력을 갖추고 있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통신 기술 분야에 있어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이 부회장은 여기에 현재 전장 부문 시장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는 하만의 인포테인먼트, 텔레매틱스 기술을 결합할 경우 세계 자동차 전장 시장을 충분히 주도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처음부터 성과가 났던 건 아니다. 인수 직전 2016년 하만의 영업이익은 약 6800억원에 달했지만 삼성이 인수한 후 2017년에는 574억원으로 급감했다. 당시 업계에서는 인수 직후 삼성의 DNA가 하만에 곧바로 이식되지 못해 하만의 혁신이 더뎌지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후 2018년 1617억원, 2019년 3223억원으로 조금씩 성장세를 타는 듯 했지만 2020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직격탄을 맞으며 연간 영업이익이 555억원으로 다시 쪼그라들었다.
삼성전자는 작년 12월 23일 자회사 하만을 통해 독일 ZF의 ADAS 사업을 인수했다. 왼쪽부터 마티아스 미드라이히 ZF CEO, 손영권 하만 이사회 의장, 크리스천 소봇카 하만 CEO 겸 오토모티브 부문 사장이 인수계약을 체결한 뒤 악수하고 있다. / 사진 제공=삼성전자
하만이 본격적으로 빛을 보기 시작한 건 2021년부터다. 불필요한 사업은 덜어내고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해 '디지털 콕핏' 등에 집중한 효과가 본격화했다. 디지털 콕핏은 디지털화된 자동차 내부 운전 공간을 뜻한다. 차량 내 첨단 디지털 계기판, 헤드업디스플레이(JUD) 등 이전에는 없던 운전자 편의를 돕는 장비들이 디지털 콕핏의 일부다. 디지털 콕핏 시장은 전기차와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되면서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이 회장은 다수의 M&A도 불사했다. 2021년에는 미국 차량과 사물 간 대화 기술(V2X) 솔루션업체 사바리를 사들였고, 2022년에는 증강현실(AR) 소프트웨어 기업 아포스테라도 인수했다. 지난해 말에는 독일 ZF프리드리히스하펜의 ADAS사업부를 15억유로(약 2조6000억원)에 품었다. 특히 ZF ADAS사업부 인수는 하만 이후 전장 분야에서 이뤄진 가장 큰 규모의 투자로 다시 한 번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ZF는 1915년 설립된 독일의 대표 전장기업으로 스마트카메라와 ADAS기술 분야에서 글로벌 1위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하만의 전장 경쟁력은 매해 눈에 띄게 달라졌다.
2022년에는 연간 매출 13조2100억원, 영업이익 8800억원을 기록해 인수 전의 실적을 뛰어넘었다. 커넥티드카 및 전장 시장 성장성에 대한 이재용 회장의 안목이 탁월했음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현재 하만은 디지털 콕핏 및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분야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하만 인수는 이재용 회장의 선구안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사례 가운데 하나"라면서 "인수 직후에는 성과를 두고 의문이 있었지만 지금은 전장과 오디오를 아우르는 안정적 수익원으로 자리 잡으면서 대형 인수합병의 모범 사례로 재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