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필 생기원 제조AI 센터장, '띵동포럼'서 제언
연합학습, 데이터 원본 유출 없이 가중치만 공유
이상 탐지·디지털 트윈 병행해 자율제조 고도화
'기술함대' 모델로 제조 생태계 역량 결집 당부
지난 11일 대전 엑스포타워에서 열린 '혁신주체 네트워크 띵동포럼'에서 윤종필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제조AI연구센터장이 제조 데이터 공유 한계를 극복할 대안으로 '연합학습'을 제시했다.
"제조업 현장에는 여전히 데이터가 부족하고, 그나마 존재하는 데이터도 정상과 불량의 불균형이 매우 심각합니다. 이 난제를 풀기 위해 기업 간 데이터를 직접 공유하지 않고도 공동의 지능을 높이는 연합학습과 이상탐지, 디지털 트윈 기술이 자율제조를 구현할 유망한 기술이 될 것입니다."
윤종필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제조AI연구센터장이 지난 11일 대전 엑스포타워에서 열린 '혁신주체 네트워크 띵동포럼'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윤 센터장은 '제조AI에서 자율제조로: 공정 지능화 전략과 확산방향'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단순 자동화를 넘어 스스로 판단하고 최적화하는 '자율제조' 시대로 가기 위한 기술 방법론을 제안했다.
◇ 데이터는 넘치지만 학습은 부족
제조 현장이 AI에 기대하는 역할은 명확하다. 원자재 투입부터 제품 출하까지 발생하는 방대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불량을 미리 예측하고 생산 일정을 스스로 최적화하며, 설비 고장을 사전에 차단하는 지능형 공장을 구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제조 현장에는 압력과 속도 같은 수치형 정형 데이터부터 제품의 외관 결함을 잡는 2D 이미지, 설비의 미세한 떨림을 기록하는 시계열 진동 데이터, 그리고 제품 내부를 투시하는 3D CT 데이터 등을 모으고 있다. 그야말로 '데이터의 종합 선물 세트'가 쌓이고 있다.
그러나 윤 센터장은 "데이터가 쌓인다고 해서 곧바로 지능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제조 AI가 마주한 현실적인 문제들을 지적했다.
가장 큰 문제는 데이터의 불균형이다. 실제 공정에서는 정상 제품 데이터는 많지만 정작 AI가 학습해야 할 불량(비정상) 데이터는 턱없이 부족하다. 또한 어렵게 확보한 데이터조차 AI가 학습할 수 있도록 정답지(레이블링)를 달아주는 작업에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 여기에 더해 현장 엔지니어의 숙련도에 따라 레이블링에 오류가 섞이는 경우도 많다.
상용화 단계에서 마주하는 현실적인 과제는 더 복잡하다. 윤 센터장은 "데이터는 쏟아지는데, 정작 그 조건으로 만들었을 때의 품질 결과(Y값)가 매칭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AI 입장에서는 입력 데이터만 많은 꼴"이라고 짚었다.
또한 특정 설비에 맞춰 어렵게 개발한 AI 모델이 설비 노후도나 주변 환경이 조금만 바뀌어도 성능이 급격히 떨어지는 범용성 부족 문제도 상용화를 가로막는 고질적인 과제라고 윤 센터장은 말했다.
◇ 제조 데이터 공유 장벽 넘는 연합학습
다양한 난제 중 윤 센터장이 가장 날카롭게 짚어낸 대목은 데이터 공유의 부재였다. 데이터가 부족한 근본 원인이 단순히 양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 간 보안과 영업비밀 문제로 인해 데이터가 파편화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진단이다.
실제로 특정 온도와 압력 조건에서 불량이 발생하는지는 기업의 핵심 경쟁력이자 영업기밀이다. 성능이 뛰어난 AI 모델을 만들려면 대량의 데이터가 필요하지만, 정작 보안이 중요한 제조 현장에서 데이터를 한곳으로 는 현실적으로 제약이 크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연합학습'이다.
연합학습은 데이터를 중앙 서버로 모으지 않는다. 작동 원리는 이렇다. 먼저 중앙 서버가 표준이 되는 AI 모델(글로벌 모델)을 각 기업의 로컬 서버로 배포한다. 각 기업은 외부 유출 걱정 없이 자사 서버 내에서 고유의 데이터를 활용해 AI를 학습시킨다.
학습이 완료되면 실제 데이터가 아닌 학습을 통해 도출된 가중치(Weight)나 변화량(Gradient) 정보만 중앙 서버로 보낸다. 중앙 서버는 각지에서 모인 가중치들을 합쳐 더 똑똑해진 모델로 업데이트한 뒤 이를 다시 현장에 배포한다. 실제 데이터는 현장에 남겨두고 '지능'만 공유하는 방식이다.
윤 센터장은 발표에서 실제 금속 제품 CT 이미지를 활용한 실험 결과를 공개하며 기술의 신뢰성을 입증했다. 결과에 따르면 3D 데이터를 2D 이미지로 변환해 화질을 개선하는 작업에서, 데이터를 한곳에 모아 학습했을 때의 방법과 비교해도 연합학습 방법이 비슷한 수준의 성능을 냈다.
7개의 개별 서버가 각기 다른 주기로 참여하고, 어떤 곳은 매일, 어떤 곳은 일주일에 한 번씩 업데이트를 하는 실제 시나리오를 반영했음에도 기술적 안정성을 유지했다.
현재 생기원은 전국 10개 지역본부를 거점으로 연합학습의 실증을 계획하고 있다. 윤 센터장은 "물리적으로 분산된 지역본부 네트워크를 활용해 실제 데이터 노드가 떨어져 있는 환경에서 기술의 안정성을 검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러한 실효성 확인에도 불구하고 해결해야 할 기술적 보완점은 남아 있다.
윤 센터장은 "가중치 정보만으로 원본 데이터를 추정할 수 있는 역추적 기술이 존재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암호화 기술이 병행되어야 한다"면서도 "데이터 공유를 꺼리는 기업들에 연합학습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기술적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 이상탐지와 디지털 트윈 전략
윤 센터장은 데이터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또 다른 전략으로 '어노말리 디텍션(Anomaly Detection, 이상 탐지)'를 제안했다. 이는 정상 데이터만으로 AI를 학습시켜 비정상 패턴을 찾아내는 기술이다.
기존 방식은 불량 이미지가 충분히 모일 때까지 수개월을 기다려야 AI 학습이 가능했지만 이상 탐지 기술을 적용하면 공장 가동 초기부터 즉시 자동화 시스템을 가동할 수 있다. AI가 "정상은 이렇게 생겼다"는 것을 먼저 배운 뒤 이 패턴에서 벗어나는 것을 불량으로 골라내는 방식이다.
또한 데이터를 가상으로 생성하는 '디지털 트윈'도 자율제조의 핵심 축이라고 했다. 가령 공장의 조명은 아침 햇살이나 실내 형광등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데, 이는 로봇의 시각 인식성능을 떨어뜨리는 주요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실제 현장에서 수만 장의 사진을 찍는 대신 디지털 트윈 환경에서 다양한 조명 조건과 각도의 가상 데이터를 대량으로 생성해 AI를 선행 학습시킨다. 이를 통해 실제 현장에 투입된 로봇은 어떠한 조명 변화에도 오차 없이 작업할 수 있는 안정적인 작업 능력을 확보하게 된다.
기술의 실효성은 구체적인 산업 사례로 증명되고 있다. 윤 센터장 연구팀은 반도체 세정 장비의 핵심 부품인 '브러시' 상태 진단에 AI를 도입했다. 브러시가 500마이크로미터만 기울어지거나 200마이크로미터만 마모되어도 공정 불량으로 이어진다.
기존에는 이를 감지하기 위해 수많은 고가 센서를 달아야 했으나, 연구팀은 진동 센서 한두 개와 AI 분석만으로 브러시의 미세한 변화를 정밀하게 진단해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성과를 거뒀다.
◇ 산업 생태계 원팀 전략
윤종필 센터장은 대기업·중견·중소기업이 역할을 나눠 협력하는 '기술함대' 모델을 통해 자율제조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연합학습과 이상 탐지, 디지털 트윈 등 개별 기술들은 이미 상당한 수준의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적 성취가 실제 제조 현장에서 의미를 가지려면 이를 운용할 전략적 구조가 뒷받침돼야 한다.
파편화된 기업들의 역량을 하나로 묶어 거대한 제조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윤 센터장은 생기원이 제안하는 '기술함대' 모델을 제시했다.
기술함대는 대양을 항해하는 항공모함 전단과 같은 구조다. 거대한 항공모함(대기업 또는 주관기관)을 중심으로 구축함(중견기업), 잠수함(중소기업)이 각자의 특화된 임무를 수행하며 하나의 목표를 향해 기동하듯 제조 생태계 역시 원팀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자율제조의 완성은 기술적 성취를 넘어 이를 뒷받침할 '사람'과 '시스템'의 신뢰에 달려 있다.
윤 센터장은 "제조 AI 연구를 수행하며 얻은 가장 큰 교훈은 현장 데이터 전문가, AI 모델 전문가, 시스템 전문가가 유기적으로 한 팀이 되었을 때 비로소 최상의 지능이 나온다는 점"이라며 연구실 내부의 원팀을 넘어 산업 전체를 아우르는 국가적 차원의 결집을 당부했다.
이러한 원팀 전략은 글로벌 경쟁 상황과 맞물려 더욱 시급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제네시스 미션'을 통해 17개 에너지 기관이 결합해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고 있으며, 중국은 정부의 강력한 주도 아래 제조 지능화 전략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국제적 흐름 속에 한국도 최근 'K-문샷 추진전략'을 통해 정부, 연구소, 대학, 기업이 결집해 제조 AI와 휴머노이드 로봇 등 핵심 분야에서 원팀 대응에 나서는 모양새다.
윤 센터장은 "결국 데이터를 모으고 연결하는 노력이 제일 중요하다"며 "정부와 민간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며 "앞으로 연합학습 고도화 연구에 더욱 매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현장의 반응도 고무적이었다. 질의응답에 나선 한국수자원공사 연구원은 "그동안 연합학습을 현장에 적용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평가했다.
이정원 페블러스 부대표는 "치명적인 결함일수록 현장에서 발생 빈도가 낮기 때문에 정작 가장 중요한 불량 데이터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며 "정상 데이터만으로 비정상을 탐지하는 디퓨전(Diffusion) 모델 기반 접근이나, VAE(Variational Autoencoder)를 활용한 소량 데이터 증강으로 분류 정확도를 끌어올리는 시도들이 제조 AI의 한계를 극복할 흥미로운 사례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포럼에서는 표윤석 로보티즈 부사장이 '피지컬 AI 기반 작업형 휴머노이드 AI 워커(Worker)'를 주제로 발제에 나섰다.
표 부사장은 로봇의 근육 역할을 하는 액추에이터 '다이나믹셀' 기술력을 바탕으로, AI의 추론 결과와 로봇의 물리적 동작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액션 매칭' 기술 등을 소개하며 지능형 로봇 생태계 확산을 위한 하드웨어 전략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공식적인 발제 이후 참여자들은 명함 교환을 주고받으며 자율제조 생태계 확장을 위한 열띤 네트워킹 시간을 가졌다.
특히 이번 포럼은 국내 대표 AI 커뮤니티 'AI프렌즈'의 세미나 200회를 기념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그 의미를 더했다. AI프렌즈는 연구자와 기업인, 개발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최신 AI 기술과 산업 흐름을 공유해 온 네트워크로, 지난 수년간 지역 AI 생태계의 성장을 이끄는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네트워킹 이후에는 한준구 솔밭초등학교 교사의 진행으로 '오픈클로(OpenClaw)' 실전 세미나가 이어져 열기를 더했다. 오픈클로는 최근 AI 분야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 중 하나로 떠오른 '오픈 소스 자율형 AI 에이전트'다. 단순히 대화를 주고받는 기존 챗봇의 한계를 넘어, 사용자의 컴퓨터 환경에 직접 접근해 실질적인 작업을 자율적으로 수행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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