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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플라스틱 재질' 김복진 추정작 '웅크린 아이' 1차 검증 완료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 조각가 정관(井觀) 김복진(1901~1940)의 1937년 작품으로 추정되는 조각품 '웅크린 아이'(가제)가 소장자 김진우씨(69)에 의해 세상에 나왔다.

▲(왼쪽부터)이후창 작가, 신은숙 조각가, 김운성 작가, 김진우 소장자, 오헨리 교수, 차기율 교수, 김서경 조각가, 민경준 김복진기념사업회장이 지난 22일 경기도의 한 주민자치센터에서 김복진 추정작 '웅크린 아이'를 보고 신중한 모습으로 검증에 임하고 있다. 사진 박현진 기자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 조각가 정관(井觀) 김복진(1901~1940)의 1937년 작품으로 추정되는 조각품 '웅크린 아이'(가제)가 소장자 김진우씨(69)에 의해 세상에 나왔다. 이에 작가정신과 장인정신에 기반한 작품성, 조형성, 재료의 당시 생산 여부 등 작품의 진위여부를 가리기 위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본다./ 편집자

▲'웅크린 아이' 조각품. 사진 박현진 기자

‘웅크린 아이’는 높이 23cm, 길이 30cm 규모의 소형 캐스팅 작품(Cast Sculpture)이다. 웅크린 채 두 팔로 무릎을 감싸 안은 전라(全裸) 소년의 모습으로, 안쪽 허벅지 부분에 ‘井觀 37’이라는 글자가 조각도(추정)로 새긴 듯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재질은 수지(통상 플라스틱)다.

이번 검증에는 신은숙 전 한국여류조각가협회장, 김운성·김서경 조각가(평화의 소녀상 작가), 이후창 서울미술협회 상임부이사장, 차기율 인천대 조형예술학부 교수, 민경준 조각가김복진기념사업회장, 오헨리 용인대 객원교수 등이 참여했으며, 팔봉리 주민대표 박순양 이장과 양희문 주민, 박승찬 청주시의원이 참관했다.

검증단은 작품의 조형성, 시대성, 제작기법, 서명 여부, 재료, 보존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며 네 시간에 걸쳐 의견을 나눴다.

▲(완쪽부터) 김서경 조각가, 차기율 교수, 김운성 조각가, 이후창 작가, 신은숙 조각가, 민경준 조각가, 김진우 소장자.

면도날 같은 비평 “김복진에게선 보기 어려운 조형”

김복진의 현존 유작 중 김제 금산사 미륵본존상 모형작인 소림원 미륵불 마케트를 최초로 캐스팅하고 보수한 차기율 교수는 “1930년대 조각이라기보단 현대작에 가까워 보인다. 상업적 마케트로 제작됐을 가능성도 있다”며 “서명 역시 체화된 드로잉이 아닌 지극히 아마추어적이며 숫자 ‘7’의 표기법이 유럽 스타일인 듯, 여러 면에서 왜색이 깊게 느껴진다”고 분석했다.

논문을 통해 김복진의 작품 ‘소년’이 손기정 선수를 모델로 했음을 밝혀낸 바 있는 신은숙 조각가는 “1937년도는 선생의 최고 절정기라고도 할 수 있는 시기인데 그때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보기엔 모든 면에서 너무 미흡하다”며 “1937년도에 수지 존재 여부와 사용 가능성에 대한 검증이 선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7년 1회 ‘김복진추모미술전’에 ‘김복진 흉상’을 출품했던 김운성 조각가는 “재료의 특성상 조각언어로 제대로 표현해 낼 수 없었던 부분이 있었을 것”이라며 로댕의 ‘지옥의 문’에 수많은 피겨들이 모여 전체 구성을 이룬 것처럼 대형 조형물의 일부였을 가능성도 제시했다.

▲차기율(왼쪽) 교수가 김서경 조각가, 이후창 작가와 함께 '웅크린 아이'를 살피고 있다.

▲박승찬 청주시의원과 팔봉리 주민단이 지난 22일 고미술품으로 꽉 들어찬 거실에서 김진우 소장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박현진 기자

1회 김복진조각페스타 예술감독을 지낸 이후창 작가는 작품의 용도 자체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복진이 조각가일 뿐 아니라 무대미술로 연극 활동에도 참여했던 점을 언급하며, 무대 장식이나 공연 소품의 일부였을 가능성 역시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1회 김복진조각페스타 참여작가 김서경 조각가는 “전체적인 인체 비율과 형태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면서도 “김복진의 작품들이 동생 김기진 작가 보관하에 있다가 전쟁 때 모두 불에 타 소실됐다고 알려진 것에 비춰볼 때 (만약에 진품이라면) 조각품에 남아 있는 그을음에 대해서도 분석하고, 붉은 표면 역시 단순한 채색인지, 옻칠인지, 다른 코팅 재료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민경준 조각가

민경준 조각가는 “이번 검증은 인문학보다 과학이 먼저”라며 “과학적 분석이 95%, 미술사적 해석은 5%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재료가 1930년대 것이 아니라면 논의는 그 자리에서 끝난다. 그러나 당시 재료라는 사실이 확인된다면 그때부터 미술사적 검토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權’인가, ‘觀’인가… 권진규와의 연관성 제기

김진우씨의 작품 구입 경위가 소개되며 선생의 제자인 권진규 작가와의 연관성도 제기됐다. 김 씨에 따르면 당시 권진규의 부인이 별도로 보관하고 있던 권진규 작품들을 한 기업이 일괄 매입했고, 이후 기업의 경영상 어려움으로 일부 작품을 다시 처분한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을 찾았다.

하지만 이미 대부분의 권진규 작품은 판매가 끝난 뒤였고, 남아 있던 작품 중 두 점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지금의 ‘웅크린 아이’를 작가도 모른 채 함께 가져왔다는 것이다.

김 씨는 “관계자로부터 권진규 부인이 넘긴 작품들과 함께 보관돼 있던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이에 검증단은 작품의 서명을 다시 살폈고 권진규의 친필 자료를 여러 점 비교해 보던 중 ‘權’ 자와 조각품에 표기된 ‘觀’ 자의 필체가 아주 흡사함을 발견했다.

“김복진의 서명이 아니다”라는 추론에 “스승의 작품임을 남기기 위해 권진규가 서명했을 수도 있다”는 가설이 제기된 것이다.

▲김운성 조각가

▲신은숙(왼쪽) 작가와 이후창 조각가

논쟁의 중심 ‘재료’... “이제는 과학이 답할 차례”

김복진에 대한 수많은 연구를 거듭해 온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수지’ 재질의 ‘웅크린 아이’를 부정한 가장 큰 이유는 ‘자료 어디에서도 선생이 수지 작품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없으며 그 당시 수지라는 물질 자체가 없었던 것으로 안다’는 점이었다.

이에 오헨리 교수는 1907년 세계 최초의 합성수지인 베이클라이트가 개발돼 이미 상업화됐고, 일본에서도 1910년대부터 관련 산업이 시작됐으며, 국내 역시 1930년 베이클라이트 공장과 셀룰로이드 가공산업이 존재했다는 조사 결과와 기 발표된 사례를 통해 ‘수지’ 재질 존재 가능성을 설명했다.

차기율 작가 역시 공개 검증시간 종료 뒤 “1930년대에도 다양한 산업 재료가 존재했고 예술가들의 실험도 활발했다는 사실을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며 “재료 성분 분석이 이번 작품의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은숙 조각가는 “단 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전문가가 먼저 문을 닫아서는 안 된다”며 “섣부른 긍정도, 섣부른 부정도 모두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운성 조각가는 “필적 감정으로 권진규와의 연관성도 조사해야 한다”고 부언했다.

▲소장자가 모은 1만여점의 고미술품

이에 전문위원들은 “현재 단계에서 이 작품을 김복진의 작품이라고 판단하기에는 작품성도 부족하고 근거도 부족하다. 그러나 동시에 김복진의 작품이 아니라고 단정할 근거 역시 충분하지 않다”며 “과학적으로 검증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 그 결과에 따라 추가검증을 추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뜻을 모았다.

김복진기념사업회와 동양일보는 ‘이번 프로젝트가 결론을 미리 정해 놓고 진행하는 검증이 아니라 객관적인 증거를 하나씩 축적해 가는 과정’이라는 인식에 공감하며 우선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KTR)에 재료 성분 분석을 의뢰하고, 대학 연구진의 재료 해석과 제작 연대 검토, 필적 감정 등을 순차적으로 진행해 나갈 계획이다. 박현진 문화전문기자 artcb@d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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