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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풍향계/ 페미니즘으로 즐겁게 놀아요

페미니즘에 대해서 낙인 찍기와 악마화 등 적대가 주류일 거라 생각하는 이들이라면, 페미니즘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층도 넓어졌다는 사실에 꽤 놀랄 것이다. 세상은 정말 많이 달라졌다.

풍향계/ 페미니즘으로 즐겁게 놀아요

▲ 박혜경 여성학 박사

페미니즘에 대해서 낙인 찍기와 악마화 등 적대가 주류일 거라 생각하는 이들이라면, 페미니즘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층도 넓어졌다는 사실에 꽤 놀랄 것이다. 세상은 정말 많이 달라졌다. 페미니즘의 주요 개념인 젠더는 여성학 등 특정 학문분야에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학문분야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잡았다고 할 수 있다. 여성학 전공자들이 대학의 전임교수가 되고 있고, 굳이 여성학과로 한정하여 보는 것이 부당할 만큼 많은 인문사회과학과 심지어 자연과학의 여러 분과학문에서도 젠더를 자신의 전공분야나 자기 연구의 주요개념으로 삼고 있는 연구자층도 넓어졌다.

페미니즘 인식과 문화도 대중 속에 넓게 퍼졌다. 이삼십년 전만 해도 한국사회에 페미니즘은 주로 소수 엘리트 여성들 사이에서만 공유됐고 그들과 함께 선구적인 여성단체 활동가들이 페미니즘 문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점차 대중화되었는데 페미니스트라는 정체화 없이도 페미니즘 의제에 찬성하고 그 문화를 즐기는 이들이 엄청나게 늘었다. 여성운동이나 여성인권에 대한 옹호가 페미니즘 구호 아래에서 시작된 것도, 그 정체성으로만 나타난 것도 아니었고, 현재에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가 일어나기까지 교육의 영향이 컸겠지만, 대중적으로는 특히 1990년대에 많은 페미니스트 소설가들의 눈에 띄는 기여가 있었고, 사회 전반의 의식을 일깨운 사건들도 있었다. 그밖에 대중문화산물의 영향도 큰 몫을 차지했을 것이라 보는데, 소설과 드라마, 영화 등 많은 매체들이 다루는 연애, 결혼, 사랑과 일에 관한 이야기들 속에 젠더 관점이, 일관성이 없을지라도, 실려 유통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대중에게 영향을 주고, 역으로 대중의 의식변화가 문화산물에도 영향을 주면서 가랑비에 옷 젖듯이 변화가 일어났을 것이다. 물론 사회변화가 그러하듯, 페미니즘 의식확산의 과정 역시 일관되지 않고 구불구불하고 울퉁불퉁한 길이었음은 의연하게 받아들이자.

이러한 대중의 의식변화는 여러 연구물과 사회통계를 통해서 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직접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도 경험했다. 십여년 전에 여러 지방의 이삼십대 남녀를 대상으로 결혼관 조사연구를 하면서, 당시로서는 관련 전문가들이나 사용하던 ‘경력단절여성’과 같은 용어를 페미니즘을 모른다는 여성이 사용하고, 매우 보수적인 남성조차 ‘가부장제’라는 단어를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것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적극적으로 페미니즘 문화를 즐기는 이들도 많아졌다. 최근 몇 년간 몇 개의 큰 영화제를 다니면서 흥미로운 변화를 발견했기에 일예로 든다. 올해 8월에 28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열렸다. 초기의 여성영화제에는 여성들만 북적이더니 대략 십여 년 전부터 남성들도 늘어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올해 행사에는 젊은 남성들뿐 아니라 오륙십대로 보이는 남성들도 매우 많았다. 남성들의 태도도 달라졌는데, 과거에 여성영화제의 남성관객들은 남의 잔치에 온 사람들처럼 조심스럽고 주뼛대는 듯하다고 느꼈는데, 근년에는 대부분 자신의 놀이터에 온 듯 편안하고 당당해 보였다. 페미니즘 문화는 여성영화제에서만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부산국제영화제나 부천판타스틱영화제 같은 다른 영화제를 통해서도 많은 영화들에서 젠더는 계급이나 민족처럼 인간의 경험을 설명하는 중요한 개념으로 녹아 있는 사례를 다수 보게 된다.

그렇더라도 페미니즘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가 전국에 고르게 퍼져 있는 것은 아니어서, 지방에 살면서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진 여성들은 문화적으로 고립감을 느끼기 쉽다. 다른 영화제들과 달리 여성영화제는 대부분의 광역지자체는 물론이고 지방도시와 군에서도 정기적으로 열리는데, 이들에게는 다행스럽고 소중한 기회다. 이것은 페미니즘 대중화에 기여할 뿐 아니라, 그 곳의 여성들로 하여금 자기 지역을 ‘살 만한’ 지역으로 느끼게도 한다.

충북에도 올해 양성평등영화제가 오는 9월 10 ~12일 서문CGV에서 열린다. 이 영화제에서 충북의 여성들이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우리 지역에 얼마나 많은지를 보고 그들과 만나면서 자부심과 든든함을 느끼면 좋겠다. 여성영화제에 첫걸음을 떼어보는 도민들도 많아지면 좋겠다. 페미니즘을 통해 세상과 인간을 더 깊고 따듯하게 또는 유머러스하게 바라보는 즐거운 체험을 많은 이들이 함께 했으면 해서다. 참고로, 여성영화제 표는 빨리 매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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