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2018년 4월 후베이성 우한에 있는 신신반도체(XMC)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와이어=천성윤 기자]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범용 메모리 제품을 낮은 가격으로 시장에 공급하며 메모리 가격 급등 국면에서 대체재로 각광받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인공지능(AI)용 최첨단 메모리 생산에 몰두하면서 상대적으로 범용 메모리 생산 비율이 축소되자, 빠르게 중국산으로 대체되는 분위기다.
중국 정부도 향후 5년간 천문학적 자금을 반도체에 투입할 것으로 전망돼, 중국 반도체 기술 굴기가 한국 반도체를 위협하고 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반도체 제조사들이 동일 사양 제품에서 15% 이상의 가격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보도했다. 글로벌 메모리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는 상황에서 범용 메모리의 주 소비층인 일반 PC 사용자들이 가성비 좋은 중국 제품에 몰릴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메모리 가격은 공급 부족과 맞물려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D램 가격은 직전 분기보다 최고 63%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낸드 가격도 최고 75% 오를 것으로 추산됐다.
이러한 가운데 중국 업체들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AI 메모리에 집중하는 틈을 타 범용 메모리 시장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세계 최대 메모리 생산능력(CAPA)을 갖고 있는 삼성전자는 AI용 첨단 수요에 대응하며 상대적으로 범용 물량이 줄어들었다. SK하이닉스 또한 AI용 고대역폭메모리(HBM)과 그래픽 전용 더블데이터레이트(GDDR) 등 특정 용도에 최적화된 특수 목적 최첨단 메모리를 주력으로 삼고 있다. 현재 SK하이닉스 D램 매출 비중 76%에서 HBM이 차지하는 비율이 50%가 넘을 것으로 업계는 추정한다.
미국 최대 메모리 기업 마이크론 또한 지난해 12월 아예 소비자용 메모리 사업을 철수한다고 선언해 AI 메모리 위주로 생산을 집중할 예정이다. 이 같은 흐름은 중국 메모리 기업에게 오히려 기회의 창이 되는 상황이다. 이에 최근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중국 메모리 기업들은 다른 기업이 갖지 못한 범용 물량을 확보하고 있어 추후 시장 점유율이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추세에 발맞춰 중국 반도체 제조사들은 CAPA 확대를 통해 물량 공세 전략을 취하고 있다. 중국을 대표하는 메모리 업체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는 올해 하반기부터 후베이성 우한시에 신규 생산라인 구축을 완료하고 낸드 제품을 양산할 계획이다.
옴디아는 YMTC의 이 신규 생산라인이 본격적으로 가동하면 연간 웨이퍼 처리량이 200만장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삼성전자(약 700만장)와 일본 키옥시아(약 500만장)에 이어 YMTC가 세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생산능력을 갖게 되는 셈이다. 2021년 연간 YMTC의 웨이퍼 처리량이 100만장 정도였던 것을 생각하면 5년 만에 두 배로 생산규모를 키웠다.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시 CXMT 본사. 사진=CXMT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도 근원 기술력과 생산규모에 조 단위 투자를 집행해 범용 메모리 시장을 공략한다. 지난해 12월 CXMT코퍼레이션이 제출한 기업공개(IPO) 신청서에서 회사가 앞으로 75억위안(약 1조6100억원)을 메모리 기술 업그레이드에 투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만경제연구원 산하 대만산업경제서비스의 아리사 류 연구원은 “YMTC와 CXMT의 증설 속도를 감안할 때 새롭게 가동되는 생산라인이 글로벌 수급에 영향을 미치는 시점은 내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CXMT는 추후 HBM 개발을 통해 첨단 메모리 분야도 개척한다는 야심을 품고 있다. CXMT는 연내 4세대 HBM인 ‘HBM3’를 양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HBM3는 최신 세대 AI칩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중소 규모 AI 업계와 고성능 컴퓨팅에 여전히 쓰여 수요가 충분하다. 내년에는 현재 가장 많이 쓰이는 HBM3E(5세대) 양산 계획도 세웠다.
CXMT의 HBM 개발은 중국이 더 이상 범용 D램에만 머무르지 않고 AI 고부가 시장에 진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HBM은 D램 적층이라는 초고난도 공정이 필요한데, 이를 중국 기업도 해내면서 기술 경쟁력을 입증하고 있다.
현재 AI 메모리 시장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3각 구도를 이루고, 마이크론이 HBM4(6세대) 경쟁 구도에서 밀리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2강 체제로 급격히 개편되고 있다. 아직 기술력 차이가 크긴 하지만, CXMT가 HBM3 개발을 발판으로 기술 고도화에 성공하면, 한국 반도체 업계 입장에선 불편한 경쟁상대가 더 생기는 셈이다.
YMTC와 CXMT의 실적은 매년 고공행진을 이어가며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YMTC의 매출은 2021년 17억7000만달러(약 2조원)에서 2024년 56억4000만달러(약 8조3000억원)까지 늘어났다. 지난해 전망치는 110억달러(약 16조원)로 점쳐진다.
CXMT의 매출도 지난해 80억달러(약 12조원)를 넘어섰을 것으로 추정된다. 2021년 1억9000만달러(약 3000억원), 2024년 25억7000만달러(약 3조5000억원)에 이어 폭발적인 성장세다.
중국 정부도 전폭적 반도체 지원을 지속하며 업계에 ‘로켓’을 달아주고 있다. 지난해 중국 정부는 ‘중국제조 2025’를 발표하며 2030년까지 반도체에 1700억달러(약 252조원)를 투입할 계획을 공개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지난해 12월 31일 신년 전야 연설에서 “중국은 혁신 역량 측면에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부상하는 경제 중 하나가 됐다”며 성과 예시로 반도체 연구개발(R&D)을 들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과거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중국이 값싼 범용 액정디스플레이(LCD) 물량 공세로 시장을 점점 가져간 것처럼, 반도체도 범용 메모리 물량 공세를 통해 시장을 점령하고 있다”며 “범용 메모리가 매출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수요 또한 견조한 만큼 중국의 성장을 예의주시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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