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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특허칼럼] 라이트 형제의 비행과 특허 명세서의 심장… '실시가능성'과...

현대 딥테크에서도 이와 동일한 구조가 반복된다. 바이오 분야에서는 실험 데이터와 예언적 실시예가... 오늘날 딥테크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으며 특허는 더 이상 아이디어를 선점하는 수단이 아니라 구현 가능한...

[특허칼럼] 라이트 형제의 비행과 특허 명세서의 심장… '실시가능성'과...

정연용 변리사

1901년 조지 멜빌 미해군 기관장은 항공술을 두고 ‘쓸모없는 꿈’이라 단언했다. 뉴욕타임즈 역시 인류의 비행이 100만년 뒤에나 가능할 것이라 예언했지만 그로부터 단 69일 후 라이트 형제는 키티호크에서 인류 최초의 동력 비행에 성공하며 세상의 ‘합리적’ 예측을 무너뜨렸다.

흔히 이들의 성공을 불굴의 의지로만 평가하지만 변리사의 시각에서 본 진정한 승리는 ‘실시가능성’을 입증해 특허를 확보한 전략적 승리였다는 점에 있다.

라이트 형제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선물한 ‘대나무 헬리콥터’ 장난감을 보며 비행의 꿈을 키웠다. 헬리콥터는 개념적으로 앞선 기술이었지만 당시 기술 수준에서는 토크 제어와 동력 문제를 해결할 구체적인 실시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반면 라이트 형제는 자전거 수리업을 통해 체득한 ‘균형과 조종’의 원리를 항공에 접목함으로써 추상적 아이디어를 구체적 작동 원리로 전환해냈다. 이러한 접근은 결국 1906년 등록된 미국 특허 제821,393호로 이어졌고 단순한 발명이 아닌 ‘재현 가능한 기술’로서 인정받게 된다.

특허 명세서의 본질은 바로 이 지점에서 드러난다. 특허법상 실시가능성은 해당 기술 분야의 통상의 지식을 가진 자가 명세서를 보고 과도한 실험 없이 발명을 재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건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구현가능성 즉 실시예다.

발명의 구조, 작동 원리, 실험 데이터, 알고리즘 등 구체적 설명이 충분히 제시돼야만 비로소 법적 요건인 실시가능성이 충족된다. 다시 말해 실시가능성은 요건이고 구현예는 이를 입증하는 증거다. 단순히 “가능하다”는 선언만으로는 특허가 성립하지 않으며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설계도가 명세서에 담겨야 한다.

이러한 요구 수준은 최근 더욱 강화되고 있다. 특히 생성형 AI 분야에서는 단순히 “AI를 활용한다”는 수준의 기재만으로는 특허를 인정받기 어려우며 데이터 구성, 학습 방식, 모델 구조, 추론 과정 등 기술적 세부사항이 구체적으로 제시돼야 한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실시가능성 부족을 이유로 AI 관련 특허가 거절되거나 무효화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데 이는 불발명의 사유인 ‘추상적 아이디어 특허’를 걸러내려는 흐름으로 해석할 수 있다.

라이트 형제의 특허 명세서에는 단순히 날 수 있는 기계라는 개념이 아니라 로프를 이용해 날개를 비트는 ‘날개 뒤틀기(Wing-warping)’ 방식과 이를 통한 3축 제어 원리가 구체적으로 기재돼 있었다. 이는 실시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구현예였으며 경쟁자들이 쉽게 회피하거나 무효화하기 어려운 권리의 기반이 됐다.

현대 딥테크에서도 이와 동일한 구조가 반복된다. 바이오 분야에서는 실험 데이터와 예언적 실시예가 반도체에서는 공정 조건과 설계 파라미터가, AI 분야에서는 모델 구조와 학습 프로세스가 실시가능성을 뒷받침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조지 버나드 쇼는 “모든 진보는 비합리적인 사람에 의해 일어난다”고 말했다. 그러나 특허의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비합리성이 아니라 구현에 대한 집요함이다.

라이트 형제는 ‘날 수 있다’는 믿음에 머무르지 않고 ‘어떻게 조종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끝까지 파고들었고 그 결과를 명세서라는 형태로 구체화했다. 결국 혁신은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지만 권리는 구현과 기술 사업화에서 완성된다.

오늘날 딥테크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으며 특허는 더 이상 아이디어를 선점하는 수단이 아니라 구현 가능한 기술만을 걸러내는 검증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오랜 실무 경험 속에서 확인되는 사실은 명확하다. 혁신의 크기는 상상의 크기가 아니라 설명 가능한 구체성의 밀도에 비례한다는 점이다.

라이트 형제가 헬리콥터라는 꿈을 비행기라는 현실로 성취했듯 오늘날의 창업가와 연구자 역시 자신의 기술이 재현 가능한지, 제3자가 따라 할 수 있는 수준인지, 명세서가 설계도로서 기능하는지를 끊임없이 점검해야 한다. 이러한 기준을 충족할 때 비로소 발명은 특허가 되고 시장에서의 강력한 진입장벽으로 작동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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