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자 모리스 창 생애 다룬
혁신박물관 앞 연일 장사진
대만 年 8% 성장 엔진이자
美中 향한 안보지렛대 역할
韓 '대체불가능 기술'이 살길
제2·제3의 HBM 발굴할 때
송광섭 베이징 특파원
대만 수도 타이베이에서 차를 타고 한 시간가량 떨어진 신주과학단지에는 'TSMC 혁신 박물관'이 있다. 대만 반도체 기업 TSMC가 2016년 본사 1층에 200평 규모로 만든 이곳에서는 창업자 모리스 창의 생애와 철학, 회사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 출장자들이 시간날 때 한번씩 들르던 이곳이 요새 '핫플'이 됐다. TSMC의 달라진 위상 덕분이다.
지난달 찾은 혁신박물관에는 평일 오후에도 적잖은 관람객이 있었다. 옛날 생각만 하고 그냥 왔다가 예약을 했느냐는 직원의 말에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발걸음을 돌리는 외국인도 꽤 보였다.
혁신박물관 직원은 "근래에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귀띔했다. 관람객이 몰리다 보니 예약도 쉽지 않다. 사전 예약만 이미 두 달치가 다 차 있다.
이러한 인기는 TSMC가 사상 최고 실적을 내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1987년 대만 정부와 외국인 투자자가 출자한 자본금을 갖고 자체 브랜드 하나 없이 시작한 기업이 파운드리(위탁 생산) 절대 강자로 성장한 스토리에 대한 놀라움과 경외심이 더 컸을 것이다. 여기에 8%대라는 믿기 힘든 대만 경제성장률을 견인하고 국가 안보까지 책임지고 있다는 점도 한몫한다. 대만에선 TSMC를 '호국신산(나라를 지키는 신령스러운 산)'이라고 부른다.
그 배경에는 린치핀(Linchpin) 전략이 있다. 수레바퀴가 빠지지 않게 고정하는 핵심 못인 린치핀처럼, TSMC가 인공지능(AI) 대전환 시대에 대체 불가능한 존재감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는 대만의 반도체 공급이 중단되면 미국 국내총생산(GDP)은 2조5000억달러(약 3775조원), 중국 GDP는 2조8000억달러(약 4227조원)가 감소한다고 추산했다. 그만큼 TSMC가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뜻이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기업 ASML도 TSMC와 유사한 포지셔닝을 하고 있다. 반도체 초미세 공정의 핵심 장비인 EUV(극자외선) 노광장비를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ASML의 장비를 한 대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2019년 당시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기 위해 선택한 카드도 ASML 장비의 대중국 수출 통제였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해방의 날'을 선포하며 글로벌 무역 전쟁이 시작된 지도 1년이 지났다. 그 사이 관세는 언제든 올렸다 내렸다 할 수 있는 무기가 됐고, 첨단 기술 규제와 자원 등의 수출 통제는 상시화됐다. 무역 시장 판도도 뒤바뀌었다. 효율 중심의 분업 체계에서 안보 중심의 블록 체계로 빠르게 재편됐다. 산업·공급망에서의 '거대한 재조정(Great Realignment)'이 일어난 것이다.
TSMC와 ASML의 사례는 우리에게 길라잡이가 된다. 단순한 기술 우위를 넘어 미국과 중국 모두 대체할 수 없는 독점적 공급자가 되는 것이 가야 할 방향임은 분명하다. AI 연산에 필수인 고대역폭 메모리(HBM)는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 엔비디아, 알리바바 할 것 없이 '삼전닉스'에 구애를 보낸다. 지난달 중국발전포럼(CDF) 참석차 방중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을 만나기 위해 줄을 선 중국 기업도 상당수였다고 한다. 제2, 제3의 HBM 발굴만이 살길이다.
[송광섭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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