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호 (사)지구촌 정신문화포럼 대표,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6·3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하자, 대구가 국책과제에서 또 소외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충분히 이해가 되는 걱정이다. 하지만 정권이 자주 교체되며 지역별로 권력이 고르게 분산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어느 한 진영이 영원히 권력을 쥐는 사회보다는, 정권이 주기적으로 바뀌며 그때그때 소외된 지역에 기회가 돌아가는 사회가 훨씬 건강하다. 오히려 그래야 나라 전체가 골고루 발전할 수 있다. 문제는 정권 교체 자체가 아니라, 그 교체의 흐름 속에서 대구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대구는 지난 30년간 한 정당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면서도 정작 손에 쥔 성적표는 한심했다. 광역시 중 최하위권에 머무는 지역내총생산, 청년 인구의 끊임없는 유출, 산업 구조의 정체와 신성장 동력의 부재. 한 정당을 30년간 밀어준 결과가 이것이라면, 그 셈법은 누가 보아도 실패에 가깝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깊이 반성하지 않는다. 선거가 끝나면 또 누군가를 탓하고, 또 다음 선거를 기다린다. 이런 식의 반복으로는 30년 후에도 똑같은 자리에 서 있을 것이다. 변화는 외부에서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무엇을 준비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렇다고 절망할 일은 아니다.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대구에는 아직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두 가지 커다란 기회가 남아 있다. 문제는 우리가 이 기회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거가 끝나면 누가 권력을 잡았는지를 따지는 데만 골몰하고, 그 권력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그 흐름 속에 어떤 빈틈이 있는지는 들여다보지 않는다. 정치 공학적 셈법에만 매몰되어 있는 동안, 정작 미래의 산업은 다른 도시들에서 실행되고 있다. 이미 떠난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드는 대신, 다음에 올 버스의 노선을 정확히 읽고 미리 정류장에 가 있어야 한다.
◇첫 번째 기회 - 위성·지리·통계를 융합하는 데이터 공장
세계는 이제 데이터를 얼마나 많이 모으느냐의 경쟁에서, 흩어진 데이터를 어떻게 융합하고 해석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느냐의 경쟁으로 넘어가고 있다. 위성영상 정보, 지리정보(GIS), 그리고 통계 데이터(좌푯값 부여)를 하나의 체계로 묶어내는, 이른바 ‘위·지·통’ 융합 데이터 산업이 바로 그 핵심이다. 도시 계획과 재난 예측, 농업 생산성 관리, 자율주행 인프라, 기후 변화 대응까지, 이 융합 데이터가 들어가지 않는 분야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문제는 현재의 법과 제도가 이런 융합을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다. 위성영상은 국가정보 보안의 영역에, 지리정보는 국토 관리의 영역에, 통계는 좌푯값이 없으므로 데이터의 융합이 어렵다. 따라서 통계법을 개정하여 국가의 모든 통계는 좌푯값을 부여하도록 하여야 한다. 또한 부처마다 다른 규정과 보안 등급이 데이터의 자유로운 결합을 막고 있다. 이 칸막이를 허물고 하나의 데이터 공장으로 통합하는 통계법 개정이 이루어진다면, 그 첫 거점을 어디에 둘 것이냐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대구는 이미 군사·안보 관련 위성 기반 인프라와 지리정보 연구 역량을 일정 부분 갖추고 있다. 여기에 통계 융합 기능까지 더해진다면, 대구는 단순한 지방 거점이 아니라 국가 데이터 산업의 심장부로 도약할 수 있다. 이것은 막연한 구호가 아니라, 통계법 개정이라는 구체적인 입법 과제이자, 지역 정치권이 여야를 떠나 함께 추진할 수 있는 실무적 의제다. 오히려 정권이 교체된 지금이 더 적합한 시점일 수도 있다. 새로운 집권 세력에게 ‘대구는 보수의 심장인 시대착오적인 땅이 아니라 미래 데이터 산업을 준비하는 땅’이라는 사실을 입증할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기회 - 궁극의 에너지, 핵융합 산업의 거점
두 번째 기회는 인류가 오랫동안 꿈꿔온 ‘궁극의 에너지’, 핵융합 발전이다. 흔히 ‘인공태양’이라 불리는 이 기술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상상이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상용화 경쟁이 본격적으로 불붙고 있다. 미국에서는 핵융합 스타트업이 상용 발전소 건설에 착수했고,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미래의 폭발적인 전력 수요를 선점하기 위해 핵융합 발전소와의 전력 구매 계약을 잇따라 체결하고 있다. 실제로 한 미국 핵융합 기업은 2030년대 초 가동을 목표로 짓고 있는 상용 발전소의 전력을 구글에 공급하는 계약을 맺은 사실이 알려지며, 핵융합이 더 이상 실험실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데이터센터와 AI 산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수록 전력 수요는 폭증하고, 이를 감당할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핵융합이 빠르게 떠오르고 있다.
이런 세계적 흐름 속에서 한국 역시 국가 차원의 핵융합 실증·산업화 과제를 준비하고 있다. 이 국책과제를 어느 지역이 유치하느냐는 향후 수십 년의 지역 경쟁력을 좌우할 결정적 사안이다. 대구는 이미 첨단 제조업 기반과 정밀 기계·소재 산업의 축적된 역량을 갖추고 있고, 여기에 핵융합 국가산업단지가 더해진다면 ‘인공태양의 도시’라는 전혀 새로운 정체성을 얻을 수 있다. 당장 상용화까지 가는 길이 멀게 느껴진다면, 수소에너지를 그 중간 다리로 삼아 단계적으로 전환해 나가는 전략도 충분히 현실적인 대안이 된다. 지금 수소 인프라를 확충하고, 그 위에서 핵융합 연구·산업 생태계를 키워나가는 연속적인 청사진을 그릴 수 있다는 뜻이다.
◇비판은 차고 넘친다, 이제는 대안이다
세상은 지금 눈부신 속도로 변하고 있다. 데이터 산업과 에너지 산업의 패권이 통째로 재편되는 이 격변의 시기에, 한가하게 과거의 선거 결과만 붙들고 비판에 머물러 있을 시간이 없다. 누구를 뽑았느니, 누구 때문에 소외됐느니 하는 탄식은 한 번으로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 우리가 무엇을 들고 중앙으로 향하느냐다.
대구가 정말로 달라지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이 두 가지 국책과제를 지역 차원에서 공동 추진할 범시민·범정파 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 여야의 깃발보다 대구의 미래가 먼저라는 합의가 있어야 한다. 둘째, 통계법 개정과 핵융합 산업단지 지정이라는 구체적인 입법·정책 과제를 국회와 중앙정부에 끊임없이 제안하고 설득해야 한다. 한두 번의 건의로 끝낼 일이 아니라, 끈질긴 설득과 근거 축적이 필요하다. 셋째, 시민 스스로가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누가 권력을 잡든, 대구가 준비된 도시라는 것을 증명하는 일은 결국 우리 자신의 몫이다. 여기에 더해, 학계와 산업계, 청년 세대까지 아우르는 정책 공동체를 꾸려 매년 구체적인 추진 성과를 점검하고 보완해 나가는 실행 체계도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비전은 선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해 조금씩 현실로 옮겨질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지나간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드는 일은 이제 그만두자. 다음 버스는 데이터와 에너지라는 이름으로, 이미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그 버스에 누가 먼저, 그리고 누가 더 준비된 모습으로 올라타느냐가 앞으로 30년의 대구를 결정할 것이다. 비판은 출발점일 뿐, 대안이 종착점이다. 탄식의 시간은 끝났다. 이제는 대안을 내놓고, 그 대안을 행동으로 옮길 때다. 30년의 정체를 딛고, 대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이름이 ‘데이터와 인공태양의 도시’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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