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자문위원
필자는 금년도 경부고속도로 건설(1970.7.7) 제56주년을 맞이하여 역사적 관점에서 세종대왕의 한글창제와 박정희 대통령의 경부 고속도로 건설을 비교하는 이색적인 시도를 해 보았다.
사실 우리는 흔히 반만년 역사를 가진 우리민족의 유구함을 얘기하고 있지만 우리민족의 자랑스런 치적에 대해 비교 역사학적 관점에서의 평가를 통해 현재와 미래로 그 정신을 살려 나가지 못함으로써 역사의 단절속에 살아가고 있는게 아닌지 하는 의구심속에 이러한 비교발상을 하게 되었다고 할수 있겠다.
이에 따라 필자는 1443년 12월 세종대왕의 한글창제와 1970년 7월 박정희 대통령의 경부고속도로 완공은 그 배경, 과정, 성격과 역사적 의미 등을 비교해 볼 때 단군이래 가장 놀라운 데칼 코마니 내지 일란성 쌍생아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놀라운 유사점이 있음을 발견하였음을 말씀드린다.
첫째, 국가건립 초기의 국가적 프로젝트 사업이라는 것이다. 한글은 조선건국 51년째인 1443년에, 경부고속도로는 대한민국 건국 22년째인 1970년에 만들어져 체제의 기반을 다지고 미래성장 동력인 인프라의 구축 의미가 있다 하겠다.
둘째, 국가 지도자의 의지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역사의 흐름을 바꾼 게임 체인저형 두 지도자의 결단력과 추진력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하겠으며, 국가의 명운을 걸다시피 한 프로젝트 사업에 두 지도자는 직접 사업에 뛰어들었으며, 현장 프로세스에 항상 참여했다고 할수 있겠다.
셋째, 애민정신과 민족주체성 함양의지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고 하겠다. 국민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우리도 할수 있다는 자신감 고취 정신이 강하게 베어 있음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이다.
(세종은 집현전에서 밤늦게 일하다 잠든 신숙주에게 어의를 직접 벗어 덮어 주었으며, 박정희는 청와대 보고 도중 졸다가 깨어나 죄송하다는 정주영 회장에게 내가 오히려 일을 너무 많이시켜 미안하다고 했다는 일화는 애민정신이 깊이 베어있는 자애로운 리더의 품성이라고 할수 있겠다.)
넷째, 기득권의 강한 반대에 직면했다는 점이다. 최만리를 비롯한 집현전 학자들이 중국에 대한 사대관계에 반한다며 한글창제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으며(갑자상소), 경부고속도로에 대해서는 야당 정치권과 언론 등 여론주도층에서 집단적 반대를 했음 또한 주지의 사실이다.
다섯째. 무에서 유를 창조한 강한 도전정신이다. 세종과 박정희는 우리가 이제껏 한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과감히 나섰으며, 이것은 0에서 1을 만드는 시도였으며, 구질서와 구시대에 대한 강한 반동이었다고도 할수 있겠다.
여섯째. 국민 대소통의 쾌거였다는 점이다. 한글창제는 시대흐름과 함께 서민세상의 대소통을 가져온 문화 고속도로 역할을 다 했으며, 경부고속도로는 전국이 일일 생활권으로 변모하고, 인적·물적 교류와 정보의 교환을 통해 수도권과 지방간 소통 뿐만 아니라 전국민을 하나로 묶어주는 정서적·심리적 대소통을 창출해 내었다고 하겠다.
일곱째, 홍익인간의 이념을 실현하면서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양 프로젝트 사업의 배경을 알수 있는 훈민정음 서문과 국민교육헌장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훈민정음 서문은 백성이 표현하고자 할바 있어도 그러지 못하고 있는데 대한 안타까움과 이를 해소하기 위해 28자를 만든다고 하고 있으며, 국민교육헌장 또한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인류공영에 이바지 할 때다', '경애와 신의에 뿌리박은 상부상조의 전통을 이어받아'라는 표현에서도 홍익인간 정신을 확인할 수 있겠다.)
여덟째, 천문학적 부가가치의 창출을 들수 있겠다. 한글 28자(이후 24자)와 경부고속도로 428km의 위력은 상상을 뛰어넘는 국력배양과 국가경제적 부의 창출을 이루어 내었으며, 이러한 효과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고, 미래 진행형이라고도 할수 있겠다.
아홉째, 양대 사업 모두 국가적 경축일로 자리매김하면서 민족 자부심의 상징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10월 9일 한글날과 7월 7일 도로의 날을 통해 우리는 커다란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한글창제와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유사성을 확인 하면서 역사의 영속성 및 민족정신의 함양과 이땅의 지도자 정신의 근원에 대한 연구와 고민이라는 측면과, 나아가 국가 미래 지도역량의 확충이라는 차원에서도 우리민족의 치적사업에 대한 역사적 관점에서의 비교관찰 노력이 절실히 필요함을 필자는 주장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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