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 KT맨' 박윤영, 보안 신뢰·AI 전환 동시에 풀어야
31일 공식 출범…해킹 수습·임원 30% 감축 '쌍끌이' 개혁
박윤영 KT 대표이사 내정자. 사진=KT
[포인트데일리 손지하 기자] KT 신임 수장 박윤영 대표이사 후보자가 31일 정기주주총회와 이사회를 거쳐 공식 취임합니다. 임기는 2029년까지 3년입니다. 2대 주주인 국민연금(지분 7.05%)은 선임에 찬성하기로 했습니다.
박 후보자는 KT 기업사업부문장 등을 역임하며 B2B 사업과 디지털 혁신을 이끈 인물입니다. KT에서 30년 이상 재직한 '정통 KT맨'으로, 연구직에서 출발해 사장 자리까지 오른 전형적인 내부 성장형 리더입니다. 그가 차기 대표로 낙점된 배경에는 단순한 능력 평가 이상의 맥락이 있습니다. 최근 KT가 해킹 사고와 경영 공백을 동시에 겪으면서 조직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내부 인사가 수습에 더 적합하다는 판단이 작용했습니다. 외부 인사 선임을 둘러싼 '낙하산' 논란을 차단하고 조직 혼란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도 읽힙니다.
◇임원 최대 30% 감축·조직 슬림화
=박 후보자는 취임 직후 대대적인 조직 쇄신에 나설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 100명 안팎인 임원 수를 최대 30%까지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김영섭 전 대표 체제에서 임명된 임원들을 중심으로 물갈이가 이뤄질 전망입니다. KT는 이미 퇴직 대상 임원들에게 통보 절차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오승필 기술혁신부문장(CTO·부사장)은 사임 의사를 밝혔고 정우진 전략·사업컨설팅부문장도 교체 대상에 올랐습니다. 올해 1월에는 신동훈 전 최고인공지능책임자(CAIO)가 NC AI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외부 전문가 수혈도 병행해 경영 공백 기간 약화된 대외업무 역량을 보강할 계획입니다.
조직 체계도 손봅니다. 현재 7개 부문·7개 실·7개 광역본부로 구성된 체계를 슬림화하는 방향입니다. 광역본부는 7개에서 4개 수준으로 축소하는 방안이 거론됩니다. AI 관련 조직은 통합해 CEO 직속 부문으로 격상하는 방안도 검토 중입니다. 이는 AI 전환을 선언에서 실행으로 끌어내리기 위한 구조적 포석으로 풀이됩니다.
◇해킹 수습, 가장 무거운 짐
=조직 개편과 함께 박 후보자가 풀어야 할 가장 무거운 과제는 해킹 사태 수습입니다. 지난해 KT에서는 불법 펨토셀(소형 기지국)을 통해 가입자 368명의 정보가 유출됐고 2억 4000만원 상당의 무단 소액결제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민관합동조사단은 KT의 내부망 접속 인증 문제, 신고 지연, 악성코드 자체 처리 등 다수의 보안·관리 실패를 확인했습니다. KT는 2025년 9월 8일에야 침해사고를 신고해 법정 24시간 내 신고 의무 위반 논란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보안 사고가 아닙니다. KT가 사건 인지·은폐 의혹·고객 신뢰·규제 리스크를 한꺼번에 떠안은 복합 위기입니다. 정부는 피해자 위약금 면제 여부를 최종 조사 이후 검토하겠다고 밝혀, 보상 논의와 법적 책임 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박윤영 체제가 출범 첫날부터 불씨를 안고 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사회도 물갈이
=박윤영 체제를 뒷받침할 이사회 구성도 대폭 바뀝니다. KT 이사회는 김영한 숭실대 전자정보공학부 교수(미래기술), 권명숙 전 인텔코리아 대표(경영), 서진석 EY한영 대표(회계)를 각각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습니다. 사내이사에는 박현진 KT밀리의서재 대표가 선임됩니다. ESG 분야는 윤종수 김앤장 법률사무소 환경 고문이 연임을 포기해 당분간 공석이 될 전망입니다.
이번 이사회 재편은 단순한 인적 교체를 넘어섭니다. KT는 사외이사 평가제 도입과 투명성 강화를 내세우며 지배구조 전반의 재설계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누가 대표가 되느냐"만큼 "이사회가 어떻게 대표를 견제하고 지원할 것이냐"가 이번 체제 전환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배경입니다.
◇전임과 무엇이 다른가
=박윤영 체제를 제대로 읽으려면 전임 대표들과의 비교가 필요합니다. KT 역대 대표들은 공통적으로 경영 공백, 지배구조 논란, 사업 재편 압박을 안고 취임했습니다. 구현모 전 대표는 KT 내부 출신 첫 대표로 조직 안정에 강점을 보였지만 지배구조 이슈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김영섭 전 대표는 외부 수혈을 통한 재무 안정과 AI·클라우드 전환 드라이브로 체질 개선에 나섰지만 KT 특유의 내부 정치와 조직 결속력을 다루는 데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박윤영은 구현모처럼 내부 출신이지만 취임 환경은 훨씬 더 가혹합니다. 구현모 시절 최대 과제가 지배구조 논란이었다면 박윤영 앞에는 거기에 더해 해킹 사태와 고객 신뢰 붕괴가 겹쳐 있습니다. 김영섭이 '외부 수혈을 통한 정상화'였다면 박윤영은 '내부 수습을 통한 재건'에 가깝습니다. 혁신 드라이브보다 먼저 보안 통제와 조직 재정비, 임원 슬림화 같은 관리형 개편이 박윤영 체제의 첫 얼굴로 읽히는 이유입니다.
◇여전한 외풍 논란
=정치권 입김 우려도 남았습니다. KT의 정치권 입김 문제는 민영화 이후 20년 넘게 반복된 고질병입니다. 구현모·김영섭 대표 선임 때도 대통령실 브리핑과 후보 사퇴 압박이 공공연했으며 이번 박윤영 체제에서도 사외이사 '셀프 연임'과 정치권 인사 편중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특히 이사회가 인사·조직개편에 직접 개입하는 정관 개정은 "정치권 빗장 풀기"라는 비판을 샀고 국민연금 등 주요 주주와 여당의 이해관계가 얽히며 대표 선임이 경영 이슈가 아닌 정치 이벤트로 변질됐습니다.
박윤영 내부 출신 카드는 외풍 차단용으로 보이지만 사외이사 구성의 정치적 편향성과 이사회 권한 확대는 여전한 리스크로 남아 그의 리더십 시험대가 될 전망입니다.
◇실적은 좋은데 체력은 증명됐나
=KT는 2025년 연결 매출 28조 2442억원, 영업이익 2조 4691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숫자만 보면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다릅니다. 4분기 실적에는 유심 구입비 등 해킹 대응 관련 일회성 비용이 반영됐고 성장의 질을 따지면 구조적 체력 강화보다 일회성 효과가 섞여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KT는 AI·클라우드·데이터센터 중심의 전환을 계속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장은 이제 말이 아니라 실행과 반복 가능한 성장 모델을 요구하는 단계입니다. 박윤영 체제는 "실적은 개선됐지만 그것이 AI 전환의 성과인가"를 증명해야 하는 부담을 처음부터 안고 출발합니다.
◇안정이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나
=박윤영이 내부 출신이라는 점은 조직 안정에는 유리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정통 KT맨'이기에 오랜 관행과 내부 정치에서 얼마나 벗어날 수 있느냐는 의문도 남습니다. 그의 성패는 인사 개편의 폭보다 의사결정의 속도, 보안 통제력의 실질적 강화, 책임 구조의 명확화에 달려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KT 대표는 늘 위기 국면에서 취임했습니다. 그 위기를 수습하는 데 그칠 것인지, 수습을 발판 삼아 구조적 도약을 만들어낼 것인지가 박윤영 3년의 핵심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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