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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토마토가 붉게 물들인 식탁

특별히 농부의 옆자리에 앉아 식물과 기술, 그리고 소비자라는 다원의 가치를 기록해 나간다. 현재 ㈜팜텍에서 글로벌 마케팅에 역점을 두고 식물조명과 재배 환경 기술 등 애그테크 분야의 경영과 기획을 총괄한다. ]

토마토가 붉게 물들인 식탁

유년의 기억, 설탕파와 소금파의 논쟁

[박길선의 애그테크, 농부 옆자리에 앉다 17]

필자의 유년 시절을 돌이켜보면, 냉장고에서 갓 꺼낸 차가운 토마토를 투박하게 썰어 유리그릇에 담아내던 풍경이 선명하다.

당시의 토마토는 명확한 ‘과일’의 영역에 있었다. 재미있는 점은 그 위를 덮는 ‘양념’을 두고 벌어지던 귀여운 논쟁이다.

입안 가득 달콤함을 채우기 위해 설탕을 듬뿍 뿌려야 한다는 ‘설탕파’와, 토마토 본연의 맛을 끌어올리기 위해 소금 한 꼬집을 고집하던 ‘소금파’ 사이의 대립은 초등학교 시절 점심시간의 단골 논쟁거리였다. 설탕에 절여진 마지막 붉은 국물을 마시며 느꼈던 그 희열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 5월의 맛이다.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5월, 대지는 초록의 생명력으로 가득 차고 식탁 위에는 붉은 생동감이 넘쳐난다. 바로 토마토의 계절이다. 식물에 건강한 빛을 선사하는 ‘히포팜텍’의 관점에서 볼 때, 5월의 태양 아래 가장 역동적으로 반응하는 작물을 꼽으라면 단연 토마토다. 하지만 우리에게 토마토는 기술적 대상이기 이전에 깊은 향수를 자극하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5월의 햇살을 머금고 온실에서 건강하게 자라나고 있는 토마토. 남미 안데스 고산지대에서 시작된 이 작은 열매는 이제 전 세계 인류의 식탁을 책임지는 핵심 작물이 되었다. [촬영 히포팜텍]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토마토를 설탕 없이도, 혹은 요리의 중심 재료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샐러드의 탱글탱글한 방울토마토, 파스타의 깊은 풍미를 책임지는 소스, 햄버거 빵 사이에서 아삭함을 담당하는 슬라이스까지.

토마토는 어느덧 우리의 식탁 위에서 아주 조용하고도 강렬하게 그 지형도를 넓혀왔다. 이 변화는 단순히 식습관의 변화를 넘어, 인류가 작물을 대하는 방식의 진화를 상징한다.

토마토는 이제 샐러드와 파스타 등 다양한 요리의 풍미를 결정짓는 필수 채소로 자리 잡으며 식문화의 진화를 보여준다. [촬영 히포팜텍]

♤독초의 오명에서 신의 열매가 되기까지

토마토의 여정은 멀리 남미 안데스산맥의 고산지대에서 시작되었다. 16세기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유럽으로 건너간 토마토의 초창기 운명은 지금의 위상과는 사뭇 달랐다. 당시 유럽인들은 토마토의 강렬한 붉은색과 생소한 모양새를 보며 ‘독이 있을 것’이라며 경계했다.

실제로 토마토는 벨라도나와 같은 치명적인 독초가 포함된 ‘가지과’ 식물에 속한다. 이 때문에 유럽에서는 오랫동안 식용이 아닌 관상용 식물로 정원 구석에 머물러야 했다. 지역에 따라서는 그 정열적인 색 때문에 ‘사랑의 사과(Love Apple)’라 불리기도 했고, 이탈리아에서는 ‘황금 사과(Pomodoro)’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한편에서는 ‘악마의 열매’라는 무서운 이름으로 불리며 기피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인류가 이 붉은 열매의 안전함과 가치를 발견하고 식용으로 대중화하기까지는 무려 200년이 넘는 세월이 필요했다. 낯선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기술과 지식을 통해 수용과 찬사로 변한 농업사의 드라마틱한 반전인 셈이다.

특유의 산미와 감칠맛은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신의 열매'라는 찬사를 이끌어냈다. [촬영 히포팜텍]

♤식문화가 빚은 품종의 분화: 당도와 산미 사이

토마토는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며 각 지역의 기후와 식문화에 맞게 진화했다. 여기서 우리는 한국과 해외의 흥미로운 간극을 발견하게 된다. 한국에서 토마토는 오랫동안 ‘과일’처럼 소비되었다. 씻어서 바로 베어 물거나 주스로 갈아 마시는 문화가 지배적이었기에, 시장은 자연스럽게 당도가 높은 품종을 최우선으로 선택해 왔다.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스테비아 토마토’나 입안에서 톡 터지는 ‘대추방울토마토’의 고당도 경쟁은 이러한 한국적 식문화의 산물이다.

반면, 서구권에서 토마토는 완벽한 ‘채소’이자 ‘요리의 기초(Base)’다. 그들에게 토마토는 가열하여 소스를 만들거나 수프의 베이스로 활용하는 식재료로서의 가치가 더 크다. 요리에 쓰이는 토마토는 당도보다는 적절한 산미와 단단한 과육, 그리고 열을 가했을 때 풍미가 살아나는 특성이 중요하다.

해외 마트에서 만나는 토마토들이 우리 입맛에 다소 맹맹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것이 조리용으로 특화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토마토는 기후와 생활방식, 그리고 기술이 함께 빚어낸 인류 식탁의 거울과도 같다.

[박길선은 독일연방화훼협회(FDF)의 플로리스트 자격과 독일상공회의소(HK)의 플로리스트 마이스터 자격을 취득하고, 2015년과 2016년 인천기능경기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플로리스트 마이스터로서 꽃과 식물의 언어를 먼저 배운 뒤, 첨단농업의 현장을 꾸준히 관찰해 왔으며, 특별히 농부의 옆자리에 앉아 식물과 기술, 그리고 소비자라는 다원의 가치를 기록해 나간다. 현재 ㈜팜텍에서 글로벌 마케팅에 역점을 두고 식물조명과 재배 환경 기술 등 애그테크 분야의 경영과 기획을 총괄한다. hippofa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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