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4대 시중은행인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사진=각사
정부가 금융회사 임원진에 '포용금융 최고책임자(CIFO)'를 의무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금융당국이 포용금융을 금융사의 자발적 사회공헌이 아닌 지배구조 차원의 제도적 의무로 못 박겠다는 신호다. 상록수 채권 매각 압박, 중금리 대출 확대, 벤처모펀드 의무 출자에 이어 이번 CIFO 도입 검토까지 더해지며 금융권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지난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다음달 금융위원회에 '포용금융 전략추진단'을 발족하기로 했다. 추진단은 총괄·정책서민·금융산업·신용 인프라 등 4개 분과로 구성된다. 이 위원장은 "총괄 분과는 포용금융이 항구적 제도화가 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며 "금융회사 내에 포용금융 최고책임자를 지정하는 등 이사회와 지배구조 차원에서 진지하게 시스템 내재화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CIFO는 기업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 최고리스크책임자(CRO) 등을 두는 것처럼 포용금융 전담 임원을 이사회 레벨에서 공식 지정하는 구조다. 이 위원장은 포용금융 업무를 적극적으로 수행한 임직원에 대한 면책 제도 운영도 거론했다. 포용금융 종합평가체계를 마련해 평가 결과와 금융회사 인센티브·출연료를 연계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한국 금융 생태계를 3층 구조로 규정했다. 1층은 은행·저축은행 등 제도권 금융, 2층은 정책서민금융, 3층은 대안적 재기금융이다. 그는 "은행들이 초우량차주만을 받고 거기서 밀려난 분들이 생겨난다"며 "밀려난 분들을 누군가는 받아줘야 한다. 그 사람이 미래에 어떻게 될지 판별하고 관리하고 측정하는 것이 결국 금융기관의 역할인데 쉽고 편하고 안전한 쪽으로만 간다"고 금융권을 직접 질책했다.
이에 대한 금융권의 반발은 거세다. 포용금융 확대 취지 자체에는 공감하지만 CIFO 의무 지정은 민간 금융회사의 경영 자율성을 침해하는 과도한 요구라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회사를 사실상 공공기관이나 자선단체처럼 대해서는 안 된다"며 "결과 중심의 책임론을 들이대면 금융사는 리스크가 큰 포용금융 상품을 오히려 보수적으로 운영할 가능성이 커진다. 합리적인 면책 기준과 인센티브 제도가 함께 설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CIFO 의무 지정에 따른 시장 역설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포용금융 성과에 책임을 지는 임원이 지정되면 해당 임원은 오히려 리스크 관리에 더 보수적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감점을 피하기 위해 취약계층 대출을 최소한의 수치만 채우는 방식으로 운영하거나, 외형은 포용금융이지만 실질은 우량차주에 가까운 고객만 선별하는 눈 가리고 아웅식 대응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다. 면책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면 되레 포용금융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해외투자자들의 시선도 변수다. 4대 금융지주가 글로벌 기관 자금을 끌어들이며 밸류업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정부 주도의 포용금융 의무 강화가 수익성 훼손 신호로 읽힐 수 있다. 외국계 증권사 일부는 이미 "한국 금융지주의 비시장적 비용 부담이 반복될 경우 멀티플 확장에 한계가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은 바 있다.
금융권의 또다른 관계자는 "상록수 채권 소각, 중금리 대출 31조9000억원 확대, 벤처모펀드 8000억원 의무 출자, CIFO 지정에 이르기까지 올해 들어 금융권을 향한 정책 요구가 동시다발로 쏟아지고 있다"며 "금융사의 건전성과 공공성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야한다"고 우려했다.
이수호 기자 lsh5998688@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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