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메모리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AI 알고리즘 ‘터보퀀트(TurboQuant)’를 공개하며 반도체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구글 리서치가 최근 발표한 터보퀀트는 거대언어모델의 추론 과정에서 발생하는 메모리 병목을 해결하는 압축 기술이다.
◆ 반도체 슈퍼사이클 꺾이나…수요 피크아웃 논란
27일 업계에 따르면 터보퀀트가 데이터를 6분의 1 수준으로 압축해 성능 저하 없이 효율을 극대화하면서, 그간 폭발적으로 늘어났던 물리적 메모리 반도체 수요 증가세가 임계점에 근접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터보퀀트는 벡터 양자화 기술을 활용해 AI가 사용자와 대화 내용을 기억하는 ‘KV캐시’의 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구글은 엔비디아 H100 GPU 환경에서 연산 속도를 최대 8배까지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AI 모델 운영사들이 고가의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추가 도입할 유인을 크게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이에 중동 리스크에 이어 AI 메모리 수요 위축 우려가 확산되며 국내외 반도체 주요 기업들의 주가 급락으로 이어졌다.
자본시장은 이번 기술 공개를 ‘메모리 산업의 재앙’으로 인식하며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미국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5거래일 연속 하락하며 누적 낙폭이 17%를 넘어섰다. 전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삼성전자는 4.71% 하락한 18만100원을 기록했고, SK하이닉스는 6.23% 급락한 93만3000원에 장을 마감하며 충격을 고스란히 노출했다.
충격은 이날까지 이어졌다. 27일 12시 40분 기준으로 삼성전자는 전날 종가 대비 3.33% 하락한 17만4100원을 보였으며, SK하이닉스도 3.43% 줄어든 90만1000원으로 90만원대에 턱걸이 중이다. 하이닉스의 경우 장중 90만원을 밑돈 건 지난 13일 이후 처음이다.
국내 반도체 대장주의 급락은 코스피 지수 하락을 촉발했다. 전날 코스피는 3.22% 하락한 5460.46으로 마감했으며, 한미반도체 등 관련 밸류체인 기업들도 7% 이상의 낙폭을 보였다. 자본시장은 구글의 이번 발표를 단순한 기술적 진보를 넘어 메모리 업계의 ‘딥시크 쇼크’ 재현으로 받아들이며 극심한 공포감을 드러냈다.
삼성전자 HBM4 제품 사진. (사진=삼성전자)
◆ 혁신의 역설인가…시장 확대의 촉매제인가
증권가에서는 2027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됐던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조기 종료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키움증권 등 주요 기관들은 동일한 메모리로 더 많은 연산이 가능해짐에 따라 수요 둔화 내러티브가 강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동일한 메모리로 더 긴 대화를 처리할 수 있게 된 점이 '메모리가 덜 필요하다'는 부정적 해석으로 연결됐다”며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 하락에 대해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AI 투자의 핵심 동력이었던 메모리 부족 현상이 소프트웨어 혁신으로 해결되면서 공급자 우위가 흔들릴 것으로 전망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올해 HBM 설비 투자에만 조 단위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하지만 터보퀀트와 같은 효율화 기술이 상용화될 경우 과잉 설비 리스크가 현실화될 수 있으며, 이는 향후 신용평가사들의 기업 신용등급 전망에도 부정적이다. 자칫 ‘계륵’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HBM은 용량 확대를 전제로 한 증설 투자 비중이 높다는 점에서, 효율화 기술 확산 시 수익성 변동성이 더 커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면 효율성 향상이 AI 대중화를 이끌어 장기적으로는 수요를 촉진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창민 KB증권 연구원은 “터보퀀트 같은 저비용 AI 기술은 기업들의 AI 도입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며 “AI 생태계가 확장되면 결국 더 많은 연산과 메모리 탑재가 필요해져, 최대 수혜는 다시 메모리 업체로 돌아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종욱 삼성증권 연구원도 “지금은 AI 기업들이 비용이 아닌 ‘성능’으로 경쟁하는 단계”라며 “성능 경쟁이 멈추지 않는 한 소프트웨어적 최적화는 더 고차원적인 연산을 위한 도구일 뿐, 하드웨어 수요를 갉아먹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미국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도 낙관론을 폈다. 지난 26일 발표된 모건스탠리의 투자보고서에 따르면 “운영 비용이 6분의 1로 줄어들면, 그동안 비용 부담 때문에 AI 도입을 망설였던 수많은 기업이 시장에 진입하게 된다”며 이는 전체 AI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강력한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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