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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칼럼] 행복한 노예_책 먼지털이

책을 좋아한다. 정확히 책 사모으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그리고 책 정리하는 걸 즐겨한다. 분야별로, 규격별로, 서재는 책을 읽는 공간이 아니다. 책을 연출하는 멋진 공간이다. 책 읽기를 좋아하긴 하나 책 모으는 것을 넘지 못한다. 그래서 같은 제목의 책이 두 권 이상인 것도 있다.

[칼럼] 행복한 노예_책 먼지털이

시간의 문앞에서

안승현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문화산업본부장

책을 좋아한다. 정확히 책 사모으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그리고 책 정리하는 걸 즐겨한다. 분야별로, 규격별로, 서재는 책을 읽는 공간이 아니다. 책을 연출하는 멋진 공간이다. 책 읽기를 좋아하긴 하나 책 모으는 것을 넘지 못한다. 그래서 같은 제목의 책이 두 권 이상인 것도 있다. 한동안 책을 사면 리스트를 작성해서 정리했는데, 이젠 한계치를 넘어 포기했다. 방 하나는 관련서적, 방 하나는 소설, 방 하나는 시집과 수필, 방 두 개는 만화방이다. 부피가 크고 무거운 도록도 방 두 개를 채웠다. 거실도 점령당했다. 관련 전문잡지부터 분야를 구분하기 어려운 책까지 집안은 온통 책이다.

비교적 싼 값에 오랜 시간 책이라는 소품으로 인테리어를 했다. 있어 보이는 허세의 작렬이다. 책을 사들이고 읽지 않으면 지옥에서 읽는다는데, 지옥행이 자명하지만 책 만 보면, 가끔 책을 떠들어보면 마냥 좋다. 책을 드문드문 빼낸다. 몇 페이지 들썩이다 다시 꽂아 놓는다. 결국, 책 먼지 터는 일이 될 때가 많다. 잠시 흥미를 느껴 선택된 책은 거실에 눕는다. 오랜 시간 꼿꼿하게 서 있다 잠시 눕는다. 아랫단에는 그 전에 선택돼 내용도 잘 생각나지 않는 책이 있다. 윗단의 책에 짓눌려 숨이 막힐만하다 싶으면 빼내어 다독이며 몇 페이지 쓰인 글을 보며 시간을 보내준다. 이제 위로(?)하며 토닥거리는 시간을 모두에게 줄 수 있는, 감당하기에 힘든 양이 되었다. 욕심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제 ‘제발’이라고 다짐하지만, 사들인 책들은 아메바였다. 작은 연못은 모조리 개구리밥으로 뒤덮였다. 다른 연못이 필요하다.

책 욕심은 중고등학교부터였던 듯하다. 학교 다닐 때 문제집 사야 한다고 부모님께 웃돈(?)을 받는 아이들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문제집, 참고서를 사야 한다고 받은 웃돈(?)은 전자오락실기계로 들어갔다. 여럿이 몰려다녔는데, 나는 그 무리에 끼지 못했다. 문제집을 사고 받는, 문제집 값에 비례하는 유명연예인의 사진을 코팅한 책받침을 받지 못했다. 외국 유명 스타는 친구의 손에서 떠나질 않았다. 헌책방에서 파는 문제집에는 책받침이 따라오지 않았다. 간혹 책갈피를 받고는 좋아했다. 책갈피에는 책받침의 스타들 대신 시가 쓰여있었다.

학교에 다니며 신문을 돌릴 때, 집 앞에 내놓은 책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책인지 펼쳐보지도 않고 책같이 생긴 건 신문이 담겼던 바구니에 넣어졌다. 종이로 된 것이라면, 종이로 묶인 거라면 뭐든 자전거 손잡이 앞 바구니가 제 자리였다. 중학교 때 만났던 녀석이 아직도 어딘가에 있을 듯하다. 표지가 헤진 것은 덧대 책꽂이에 자리를 잡았다. 대학 때까지 계속된, 오랜 시간 많지는 않지만 오랜 벗이다. 책 먼지털이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지옥에 간다고 해도 지금은 형편이 여간 좋아진 게 아니다. 사고 싶은 데로 원 없이 살 수 있다. 돈이 없어 못사는 일은 없다. 지인들과 즐기는 술자리가 힘들 때가 있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듣지도 보지도 못한 책이 여럿 등장한다. 1년에 대한민국에서 방영되는 드라마가 150여 편이 넘는다는데 대략 배우, 작가들은 알만한데, 책은 잘 모르겠다. 술을 마시며, 눈치 봐가며 휴대폰에 입력하기 바쁘다. 젠장, 취해 오타투성이면, 뭔 책인지 황당하다. 그래도 행복의 수치는 높아진다. 가끔 내가 아는 책의 내용과 연결될 때이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행복감, 어떻게든 사들여서 내 소유의 책이 하나 더 늘어난다는 기대감이다. 내일 당장 ‘바로구매’로 이뤄진다. 새로운 친구가 들어온다. 몸집이 큰 친구도 있고, 홀쭉한 친구도 다수 들어온다. 홀쭉한 친구는 글자의 분량이 짧다. 내용이 어렵고 복잡한 생각들로 가득해서 책 속 밀도는 대단히 높을 확률이 높다. 어렵게 읽고 많은 고민 끝에 어렴풋하게 그런가 싶다, 다시 읽고 뭔가를 알 것 같은 희열을 주는 친구다. 분량이 많은 벽돌책은 우선 책꽂이로 들어간다. 미리 내용을 파악하고 맞아들였기에 이따금 만난다. 책에 둘러싸여 오도 가도 못 하지만 책 먼지털이를 거부하지 않는 대책 없는 노예다. 길게 드리워져 책의 등을 비춰주던 햇살이 서재를 비껴간다.

안승현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문화산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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