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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칼럼] 문과 길은 열어주고, 집만 지키라니

셋째, 금융위가 구축 중인 ASAP(Anti-Scam AI Platform)을 통신사·플랫폼의 필터링 시스템과 의무적으로 연동해야 한다. '금융권 범죄 DB – 통신망 차단 AI – 광고 심의 AI'가실시간으로 연결돼 계좌 동결·통화 차단·광고...

[칼럼] 문과 길은 열어주고, 집만 지키라니

보이스피싱 대응의 불균형을 넘어

▲ 서민금융연구원 안용섭 원장

보이스피싱은 이제 단순한 금융사기가 아니다. 국민의 생존권과 재산권을 위협하는 ‘범죄 생태계’로 진화했다. 그럼에도 대응 체계는 여전히 불균형하다. 범죄의 종착지라는 이유로 금융권에는 ‘무과실 배상’에 가까운 책임을 지우려고 하면서, 정작 문(플랫폼)과 길(통신망)을 열어준 기업들은 ‘규제의 사각지대’에 머물고 있다. 이익이 있는 곳에 책임이 따른다는 상식조차 무시된 구조다.

글로벌 스탠더드는 공동책임이다

호주는 ‘스캠방지기본법(SPFA)’을 통해 통신사와 플랫폼을 모두 규제 대상으로 삼았다. 사기 트래픽 차단을 법으로 의무화한 결과, 스캠 문자 신고가 97% 감소했다. 싱가포르는 ‘공유책임프레임워크(SRF)’를 도입해 통신사가 의무를 다하지 않아 피해가 발생하면 전액 배상하도록 했다. 영국은 ‘온라인안전법(OSA)’으로 거대 빅테크에 사기성 광고 방지 의무를 부과했고, 이를 위반하면 전 세계 매출의 1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미국 역시 ‘TRACED 법’을 통해 발신번호 위조를 원천 차단하는 STIR/SHAKEN 인증 기술 도입을 의무화했다. 이 모든 흐름은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사기 예방은 금융만의 책임이 아니다. 금융, 통신, 플랫폼이 함께 나서야만 범죄의 사슬을 끊을 수 있다.

한국형 공동책임 프레임워크(K-SRF) 도입을

이제 한국도 ‘보이스피싱 책임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선언해야 한다. 그 해법은 싱가포르의 모델을 본뜬 ‘한국형 공동책임 프레임워크(K-SRF)’다. 첫째, 법률에“금융회사와 통신사업자는 자사 인프라가 범죄에 악용되지 않도록 최선의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취할 의무를 진다”는 원칙을 명문화해야 한다. 둘째,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해 통신사의 ‘스캠 트래픽 식별·추적·차단’을 의무화하고, 정보통신망법을 개정해 플랫폼의 ‘불법·사기 정보 유통 방지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사기 광고로 수익을 얻은 경우에는 징벌적 손해배상과 과징금을 병행해 ‘불법의 이익보다 처벌의 비용이 더 큰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금융위가 구축 중인 ASAP(Anti-Scam AI Platform)을 통신사·플랫폼의 필터링 시스템과 의무적으로 연동해야 한다. ‘금융권 범죄 DB – 통신망 차단 AI – 광고 심의 AI’가실시간으로 연결돼 계좌 동결·통화 차단·광고 삭제가 동시에 작동하는 다층 방어 체계를 세워야 한다.

책임이 곧 혁신의 출발점

통신사와 플랫폼이 배상 책임을 피하려면 결국 예방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 경제적 유인이 곧 최고의 규제다. 정부는 금융위·과기정통부·방통위가 부처 칸막이를 넘어선 삼위일체(三位一體)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보이스피싱은 한 기관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신뢰 시스템을 흔드는 위협이기 때문이다.

균형의 시대를 향해

지금의 구조는 ‘집(금융)’만 지키고 ‘문(플랫폼)’과 ‘길(통신망)’은 활짝 열어둔 채 범죄자들이 드나들도록 허용하는 꼴이다. 이제는 불합리한 책임 구조를 바로잡고 모든 주체가 균형 잡힌 책임과 역할을 져야 한다. 통신금융사기에 대해 통신사, 플랫폼사업자 및 금융사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모든 이해당사자가 함께 문을 닫고 길을 차단하고 집을 단속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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