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벼농사 상징 우렁이의 역습?
[농산물품질관리사 김대성 기자의 ‘농사만사’]
생태계 교란 우려 커져 인기 시들…새로운 재배법 고민해야
2026년 08월 09일(일) 19:40
왕우렁이
한여름 논은 생명 합창의 장이다.
벼 포기 사이를 미꾸라지가 오가고, 잠자리는 허공을 맴돌며 개구리는 쉼 없이 울어댄다. 가끔은 ‘뚜루루루’와 ‘으악-으악’하는 새벽부터 먹을거리를 찾아 나선 학(두루미)이나 왜가리 울음소리가 정적을 깬다. 논은 벼만 키우는 곳이 아니다. 미꾸라지가 흙을 뒤집고, 개구리는 해충을 잡는다. 평화로운 풍경이지만, 논에서는 매 순간 생명이 생명을 먹는 일이 이어진다.
어린 오리를 논에 풀어 함께 벼를 키우는 ‘오리 농법’도 이러한 토양에서 개발됐다. 우리나라의 오리 농법은 1993년 충남 홍성 풀무학교와 정농회 농가들이 일본의 아이가모농법을 도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농약과 제초제를 쓰지 않고도 벼를 키울 수 있다는 장점은 곧 전국으로 퍼졌고, 전국 최대 친환경 농업지대인 전남도 예외가 아니었다. 장흥에서는 친환경 쌀 재배단지를 중심으로 오리를 논에 풀어 잡초와 해충을 줄였고, 순천과 곡성, 담양에서도 오리농법은 친환경 벼농사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다. 농민들은 “오리가 논을 가장 부지런히 일군다”라고 입을 모았다.
도입 시기는 조금 늦었지만, 오리 농법과 같은 친환경 벼농사의 대를 이어간 것이 ‘우렁이 농법’이다. 한때 봄이면 외국산 왕우렁이를 구하려는 농민들이 줄을 섰을 정도로 인기였다. 모내기를 마친 논에 풀어놓으면 잡초를 말끔히 없애 농약을 대신했다. ‘논의 제초부대’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친환경 벼농사의 상징이 됐다. 광주와 전남의 들녘에도 왕우렁이가 빠르게 퍼졌다. 농부들은 우렁이를 믿었고 소비자는 우렁이가 키운 쌀을 믿었다.
그러나 자연은 우리가 예상한대로만 흐르는 것이 아니다. 왕우렁이(학명·Pomacea canaliculata Lamarck)는 남아메리카 원산의 외래종이다. 국내에 도입될 당시에는 겨울 추위를 견디지 못해 자연적으로 사라질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기후변화는 이런 예상을 뒤집었다. 겨울이 따뜻해지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왕우렁이가 살아남아 이듬해 다시 번식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논을 벗어나 하천과 습지로 퍼지면서 생태계 교란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효자가 애물단지로 바뀐 것이다.
최근 강진을 비롯해 지자체마다 생태계 교란 예방과 친환경 농업 보호를 위해 ‘왕우렁이 일제 수거 기간’을 운영하느라 난리가 아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왕우렁이 관리지침에 따라 이앙 전과 중간 물떼기 시기, 벼 수확 후 등 단계별로 집중적으로 수거하고, 수거한 왕우렁이는 반드시 폐기하도록 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해남의 친환경 벼 재배 농가들은 왕우렁이 의존을 줄이기 위해 물 관리와 기계 제초를 병행하고 있다. 나주의 친환경 단지에서도 지속 가능한 농업을 위해 새로운 재배법을 고민한다. 친환경 농업도 자연을 거스르는 기술이 아니라 자연에 맞춰 끊임없이 고쳐가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오죽했으면 오리를 논에 풀면 왕우렁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허망한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오리가 사람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법. 하물며 오리는 어린 우렁이는 먹을 수 있지만 단단한 껍데기의 왕우렁이는 잡지 못한다. 잡초를 없애려고 오리를 들인 것이니, 그 이상은 기대하기가 어렵다. 오리는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대로 행동할 뿐이다.
생각해 보면 사람의 일도 다르지 않다. 편리함만 좇다 보면 언젠가는 그 대가를 치른다. 세상에는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일이 적지 않다. 그래서 농부는 자연 앞에서 쉽게 자만하지 않는 법이다.
우렁이를 먹지 않는 오리, 개구리를 먹는 오리. 여기에 자연의 이치가 숨어 있다. 자연은 선과 악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갈 뿐이다. 그 질서를 이해하려는 사람에게만 논은 풍년을 허락한다. 올여름도 논에는 개구리가 울고 우렁이가 오간다. 그 평범한 풍경 속에서 우리가 오래도록 지켜야 할 농촌의 미래가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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