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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취업 안돼요" 찬밥 신세더니…의예과 제쳤다 '대반전'

◇빅테크, 철학과 출신 CEO 포진 AI 기술뿐만 아니라 AI 윤리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산업계에서는 ‘철학자 모시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최근 구글 딥마인드는 헨리 셰블린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를...

"취업 안돼요" 찬밥 신세더니…의예과 제쳤다 '대반전'

"코딩만으론 부족해"

철학 강의실 찾는 공대생들

AI시대, 철학과의 재발견

서울대 수시 경쟁률 인문대 최고

전공수업 30개 학과생 몰리기도

빅테크, 앞다퉈 철학자 모시기

AI시대 부딪힐 문제들 연구

12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 문과대학에서 학생들이 김종진 철학과 강사의 '비판적 사고와 논리' 수업을 듣고 있다. 필수로 들어야 하는 과목이 아니라 교양선택 강의임에도 이 과목에 수강생 172명이 몰렸다. /이솔 기자

권홍우 경북대 철학과 교수는 올해 1학기 전공과목으로 ‘과학철학’ 과목을 개설했다가 수강생 명단을 보고 깜짝 놀랐다. 교양 과목도 아닌 전공과목에 80여 명이 몰린 데다 학생들의 소속 학과가 30개가 넘어서다. 문과 계열 학생은 물론 컴퓨터학부, 전자공학부 등 이과 계열 학생도 상당수였다. 권 교수는 “철학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높아졌다”며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개별 프로그래밍 언어는 빠르게 변화하지만 철학을 통해 배우는 문제의식과 논리력, 통합적 사고력은 인공지능(AI) 시대에도 흔들리지 않는 ‘범용 역량’이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질문하는 능력 키운다

한때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의 줄임말)의 상징 학과와도 같던 철학과가 AI 시대를 맞아 재조명받고 있다. AI발(發) 직업 재편으로 프로그래머는 물론 회계사, 변호사 등 자격증 소지자의 영역까지 위협받는 상황에서 전문 지식 못지않게 AI에 ‘질문하는 능력’이 중요해지는 추세다. 이 때문에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고 비판적·논리적 사고력을 키우는 철학과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주요 대학 입시에서 철학과의 경쟁률이 급상승했다. 2026학년도 서울대 철학과 수시모집 경쟁률은 15.56 대 1로 인문대학 내에서 가장 높았다. 2020학년도(9.92 대 1)와 비교하면 경쟁률이 57% 상승했다. 알파고가 등장하고 네이버, 카카오 등 정보기술(IT) 기업이 인기를 얻은 2020학년도 서울대 컴퓨터공학부의 수시모집 경쟁률은 7.59 대 1에 달했다. 하지만 2026학년도 경쟁률은 4.31 대 1로 떨어졌다.

원하는 전공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 커트라인 최상위권 학과로 꼽히는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에서는 전통적으로 컴퓨터공학·전기정보공학·경영학·경제학부가 인기다. 이 와중에 올해 학과 배정에서는 철학·언어학·심리학·서양사학 등을 선택한 학생들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다른 대학도 상황은 비슷하다. 경북대에선 2026학년도 정시 철학과 경쟁률이 15.6 대 1로 전체 학과 중 가장 높았다. 계명대 철학과는 수시 경쟁률이 31.83 대 1로 2025학년도(7.75 대 1) 대비 4배 이상으로 급등하며 의예과(30.57 대 1)를 제치고 가장 높은 경쟁률 기록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문과 최상위 학과이던 경영·법학계열과 어문계열은 AI의 등장으로 위협받고 있다”며 “반면 철학과는 인문학 중에서도 AI와 결합했을 때 가장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학문인 데다 로스쿨 진학에도 유리해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빅테크, 철학과 출신 CEO 포진

AI 기술뿐만 아니라 AI 윤리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산업계에서는 ‘철학자 모시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최근 구글 딥마인드는 헨리 셰블린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를 ‘철학자’라는 직함으로 영입했다. 구글은 셰블린 교수와 함께 AI 시대에 나타날 철학적 문제들을 연구할 예정이다.

앤스로픽의 상주 철학자 아만다 아스켈은 ‘클로드 헌법’을 설계하며 ‘클로드의 영혼을 만든 철학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AI 플랫폼 기업 팰런티어의 공동 창업자 알렉스 카프 최고경영자(CEO)는 철학 박사 출신이다.

교육계에서는 과학과 철학을 적극적으로 결합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광주과학기술원(GIST)은 최근 과학기술 특성화대학으로는 이례적으로 미국 하버드대 철학 박사 출신 교수 두 명을 영입했다. 서울대 철학과에서 15년간 재직한 언어철학의 권위자 강진호 초빙석학교수는 ‘철학의 근본 문제들’과 ‘인공지능의 철학’ 등을 강의할 계획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인문학과 과학을 연결하는 ‘초학제(AXIS)연구센터’(가칭)도 설립된다.

김건우 GIST 인문사회과학부 학장은 “인간이 스스로 사고하고 주체성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해진 AI 시대에 철학의 의미가 재평가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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